억지로 한 효도
밤샘 철야를 밥먹듯이 하는 일을 그만두면서 일에서 해방되었다는 기분과 동시에 결혼준비와 결혼식을 하면서 또 다른 삶이 시작되었다.
얼마 모아놓은 돈은 없지만 최대한 결혼비용은 합리적이고 절약하면서 부담스럽지 않은 결혼식을 하는데 아내와 나는 서로 동의했고, 남들에게 보여주는 허례허식은 대부분 생략하였다.
그래서 내가 모은 돈 1천만 원 남짓으로 결혼식과 신혼여행을 할 수 있었다.
돈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너무 막막하지 않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삶을 아내와 함께 헤쳐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든든함도 있었던 것 같다.
어머니는 신혼집 아파트를 구하는데 2억에 절반정도 되는 금액을 도와주셔서 분양을 받았다.
월급에 절반을 10년 가까이 모아도 모을 수 있을까 하는 큰돈이었고, 세상에 공짜는 없기에 돈 빼고 몸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을 말하자면 신혼집은 내가 살던 집이었고 어머니와 함께 살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신혼집으로 살기 위한 집은 절반정도 돈이 중도금으로 들어가 있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지어지지 않은 상태로 계속 남아있고, 돈을 넣고 이자를 내면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단톡방에는 지금도 사람들의 울부짖음과 포기 섞인 말들이 아우성치고 있다.
어머니가 교회를 다니면서 함께 다니는 분에게 아파트를 소개받았고, 그곳에 가서 저렴한 가격에 멋진 아파트가 생긴다는 부푼 꿈과 희망을 가진 체 계약서에 싸인을 했다.
이런 집을 이 정도 가격대에 살 수 있구나!
이 아파트가 바로 원수에게도 소개해주지 않는다는 '지역주택조합'아파트이다.
이렇게 위험한 아파트라는 걸 계약하고 몇 년이 지나고서야 알았고, 1억 가까운 돈을 넣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삽 한번 퍼보지 못한 상태이니 이 마음고생은 해본 사람만 알 것 같다.
부모님이 도와주신 돈과 함께, 절반은 열심히 일하면서 갚기 위한 플랜을 짜면서 인생계획을 꿈꿔왔고, 그 시기가 계속 흐르면서 신혼인 우리 부부는 집도 없이 벌써 결혼 8년 차가 되어버렸다.
다시 한 푼 두 푼 모아서 다시 시작해 볼까?
근데 그렇게 큰돈을 지금부터 다시 모으려고 해도 10년은 걸릴 거 같은데,
그럼 우리는 평생 부모님 집에 얹혀살아야 하나?
이건 계획에 없었는데...
아 억울해!!
어차피 내 돈은 들어가지 않았어서 별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겠지만, 감사하는 마음을 항상 가지려 노력하면서 하기 싫은 경조사나 집안행사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해 온 모든 것들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돈이 없으니 몸으로라도 때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버지의 빈자리를 장남, 장손인 내가 항상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어머니를 주말마다 매번 함께해야 한다는 강박적인 루틴과 함께 그것을 돈으로 보상받기 위해 해온 것 같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 언젠가 독립을 하는 그날을 꿈꾸며 신혼집에 대한 집착도 그만큼 커져갔던 것 같다.
이 정도 하면 꽤 열심히 효도한 것 같은데,
남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까워!
돈을 바라면서 한 나의 모든것들이 부끄러우면서 다양한 감정이 나를 휘감았고, 감정적으로 격해지는 날들이 많아졌다.
어머니와 사이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는데, 나의 성장보다는 어딘가에서 떨어지는 콩고물을 얻으려 내 생각보다는 나에게 보상을 주는 사람들의 기분과 생각 그리고 그들의 틀에 박힌 관념을 억지로 흡수하여 내 것으로 만드는 습관을 만들었다.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첫째는 사춘기가 없었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니셨고, 나는 어머니가 가족모임에 다니는 족족 옆을 든든하게 지켰다.
그렇지만 나에게 돌아온 건 결국 아파트 분양사기로 날린 돈과 함께 부모님의 도움 없이는 혼자 살아남을 수 없는 나약한 아들이자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의 남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