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돈의 노예 바로 나.
결혼을 하고 33살이 되던 해 결혼을 하고 독립을 시작했다.
대학교 기숙사나 근처 자취방을 1년 남본 해 본 경험이 전부였고, 이렇게 내가 김포에 위치한 10평 남짓 원룸 작은 공간에 월세와 전기세 그리고, 당연하게 쓰고 있던 인터넷과 기타 생필품 당연히 주방 찬장에 있는 조미료들까지 모두 하나하나 구매하면서 점점 현실적으로 다가온 것 같다.
뭐 이렇게 비싸.
어차피 먹으면 다 똑같으니까 싼 거 사자.
정해진 돈에서 사용을 해야 하니 짠돌이인 내가 더 짠돌이가 되는 기분이었고, 하지만 내가 선택해서 내가 채우는 모든 것들이 애정이 가고 재미마저 느껴지기 시작했다.
결혼을 하며 직장을 그만두고 반년남짓 여러 다양한 도전을 해 보았지만 그렇게 단시간 내에 나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수준까지 돈을 벌 수 있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조급함이 나를 더 예민하게 만들었고, 결국 영상편집일을 다시 잡아 김포에서 서울로 출퇴근하기 시작했다. 작은 경차가 있었지만 서울에 차를 가지고 출퇴근을 한다는 건 미친 짓에 가까웠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가면 한 시간 반 정도 걸려 회사에 도착했다.
나이는 대리급 이상이어야 하지만 나는 33살에 경력이 조금 있는 신입이었고, 나의 선배들은 나보다 어린 20대였다. 눈치를 볼 상황은 없었고 배워서 빨리 성장해야 월급을 더 받고, 작은 빌라 전세라도 들어가자는 희망 섞인 핑크빛 미래를 꿈꾸며 일을 배웠다.
남 눈치는 잘 보는 편이라 곁눈질과 이것저것 부끄러움 없이 질문해 가면 스펀지처럼 흡수했고, 다행히 전 회사와 다르게 야근이 크게 많지 않아 즐겁게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어린 나이의 선배(?)들은 꿈과 희망을 찾아 1년 남짓 다니면 여기저기 옮겨 다니느라 바빴고, 나는 항상 그 자리에.. 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뭔가 바쁘게 왔다가 사라지는 영상처럼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칼퇴를 하려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했고, 야근비가 없으니 당연히 잔업을 하게 되면 모두 스트레스로 돌아왔다. 그러려면 협업을 잘해서 퀄리티를 낮추지만 너무 짜치지 않게 잘 통과될 수 있게 요령껏 영상을 만들어야 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성장은 더디게 요령은 빠르게 성장하며 나의 나무는 곁가지만 무성한 사람이 되어갔다.
그리고 어느덧 2년 정도 지났을까 나에게도 뭔가 변화가 필요했고, 다른 곳으로 이직하고 싶은 마음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몸은 편하고 쉬울 수 있으나 정체되어 있는 느낌이 싫었고, 다른 곳에서 좀 더 칼날을 갈고 싶었지만 나의 지금의 월급과 야근 없이 하는 편의를 봐줄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도 나는 결심을 하고 그만두겠다고 대표에게 말을 했다.
대표는 나를 커피숍으로 함께 가자고 했고, 그곳에서 나는 설득당하기 시작했다.
내가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이유가 월급을 올려달라는 이야기를 돌려 말한다고 생각을 하셨는지, 다른 곳에서 이 정도 금액을 받으면서 일하기가 과연 가능할까 싶은 딜이 들어왔다.
나는 성장을 꿈꾸면서 뛰기 좋은 러닝화를 신고 싶었지만
나에게 돌아온 건 안락한 안마의자와 팀장이라는 직함이었다.
이게.. 아닌데.. 거부할 수 없어..
이 정도 월급을 받는 영상회사에 팀장이라면 어디 가서도 조금은 당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겉은 그렇게 보일 수 있겠지만 이렇게 요령만 피우며 성장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다가는 언제가 도태될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어느 정도 두 명 이상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월급을 받아야 집도 전세라도 옮기고 나중에 매매라도 할 텐데 하는 가려운 부분을 정확히 집어 긁어주었고,
나는 성장이라는 두렵지만 꼭 필요한 첫 목표를 돈과 맞바꾸었다.
그래!
조금 더 하다가 그만두더라도
퇴직금도 더 올려 받을 수 있고,
나에게 이득이 더 될 것 같아.
잠시 회사가 원하는 사람으로 맞춰주다가
상황 봐서 나가야겠다.
이 회사에서 1년을 더 다녀 총 3년을 다니고, 이제 옮겨볼까 하는 시기가 다가왔다. 하지만 삶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 나는 가족과 사회에 인간관계의 회의감을 느끼는 다른 복병이 찾아왔다. 부족한 내가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협업하고 이해관계를 서로 상의해야 하는 상황의 팀장직은 나이는 팀장 할 나이일지는 몰라도 나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그러면서 집안에서도 여러 문제가 겹치면서 일을 하기보다는 스트레스를 받고 멍 때리면서 생각하고 고민하느라 업무를 소홀히 하게 되었고, 남들보다 일찍 요즘 유행하는 번아웃을 겪게 되었다.
일을 잘하지 못하고 돈값을 못하니 나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줘야 하는 사람이 되었고, 나는 또 퇴직금과 실업급여라는 짭짤한 돈에 설득되어 또 결혼 3년 만에 쉬게 되었다.
그리고.. 코로나가 터졌다.
아 맞다! 성장, 근데 할 힘이 없어….
난 이제 지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