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말이야!

나는 말이야!

by 새롭게 리플랜

마음속에 화가 가득해진 시기에 나는 누군가가 옆에서 가볍게 던진 조언이나 의견에도 크게 마음이 요동쳤다. 내가 이러는 이유를 알지도 모르는 사람은 상처가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평소에 그런 모습을 숨기고 밝고 건강한 이미지로 살아서 그런지 이런 내 모습을 들키기라도 하면 모두 떠나갈 것 같아서 차갑게 반응이 나갔다.


너 원래 그런 사람 아니었잖아!

너답지 않아!


이런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 관계에 있는 사람은 내가 왜 이러는지 말을 해줘도 이해하지 못할까 봐 말도 못 하는 상태. 하지만 지금 돌이켜서 생각해 보면 남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할까 봐가 아니라 내가 나를 그렇게 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장손, 장남으로 남동생이 하나 있다. 완벽해야 하고, 잘해야 하고, 못하는 모습은 숨기고, 슬픈 모습이나 상황은 애 서 웃으며 상황을 모면하는 습관을 자연스럽게 가지고 있었고, 그게 내가 가지고 있는 나의 위치와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남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 그래야만 나를 바라봐주고 지켜봐 주고 그래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고, 당연히 가족의 일원으로서 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이 안에서 나의 감정이나 생각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릴 적 내 기억 속에 아버지는 항상 일을 마치고 저녁에 집에 들어오면 밥에 반주 한잔하고 티브이를 보다가 잠이 들으셨고, 일찍 출근해 함께 한 추억이 별로 없다. 깊이 있는 인생 이야기도, 편안한 오늘 하루의 일과도,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갈지도, 돌아기시기 전 아버지와 평생 함께 나눈 대화를 글로 적어도 A4용지 10장도 안될 것 같다.


엄마는 시어머니와 친척들의 갈등이 깊고, 연약하고 내가 피해보고 상처받고 있다는 생각에 항상 남 눈치를 보며 집안 살림을 했고, 교회를 빠짐없이 다니며 기독교인으로 살았다. 자신의 감정을 관리하느라 나보다는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내가 그 역할을 맡았다. 엄마에게 고민이나 힘든 점을 말하면 엄머가 아니라 성경의 구절이 대화를 이어갔고, 대화의 주도권은 거의 90%는 어머니의 것이었다. 엄마 주위에는 모두 악마들만 있다고 느껴질 정도로 세뇌당하는 상황에서 나는 감정쓰레기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나의 삶으로 돌아오는데 몇 년의 시간이 걸리고 지금도 후유증이 깊게 남아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람들 모두 다 자신만의 인생이 있고, 고민이나 걱정을 안고 묵묵히 자신의 방법으로 해결하거나 풀어가며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때는 부모라면 당연히 해야 한다는 여러 배움들을 마음에 새기며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했지만 그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부모님이나 다른 어른들도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 나도 그러지 못한 사람이기에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한다는 뜻이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그 사람을 위해 충고하고, 조언해 주고, 평가해 주고, 판단해 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맞은편에는 상대방의 모습을 하고 있는 나에게 하고 있는 말이라는 걸 깨달았다.



바로 내가 그러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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