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술이 필요했다.
어느 회사를 다녀도 일 년마다 항상 퇴사에 대한 고민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자꾸 나오려고 했는지 너무 잘 알 것 같다. 나는 그저 사람인에 이력서를 쓰고 여기저기 뿌리고 다녔을 뿐이기 때문이다. 연봉만 어느 정도 되면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열정만 가지고 넣었고, 나를 뽑아준 회사를 위해 고마워서 열심히 다녔다. 하지만 그런 열정만으로는 3개월을 넘기 쉽지 않았다.
하나만 걸려라..
로또 걸리듯, 바다에 낚싯바늘 던지듯 마구 던졌다.
버스로 1~2시간 걸리는 곳이고,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로만...
그리고 나는 다행히 선택당했고,
그곳에 나의 청춘과 돈을 맞바꾸었다.
내가 잘할 수 있을만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다. 아는 것이라곤, 사람인에 몇 줄 적혀있는 '하는 일'만 보고 이력서를 보고 넣었을 뿐이었다. 나이는 점점 들고 뭐든 해야겠고, 집에 있는 것보단 열정 있고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을 때 나를 더 쥐어 짜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부모님이 원하는 전공을 지원한 나는 결국 나와 맞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서울 소재의 대학교를 졸업하였지만 전공을 살리지 못한 나는 마케팅이라는 두리뭉실한 키워드와 블로그용 카메라를 들고 포스팅을 하러 다녔다는 두 가지 무기를 가지고 서울에 존재하는 모든 회사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그 당시 블로그는 상업 포스팅의 맛을 들였다가 저품질이 걸려 회생불가였다.
하아...
일단 새로운 회사에 들어가서 생소한 것들을 배우는 것은 재미있었다. 이것저것 부딪혀가며 열심히 배웠다. 하지만 1년도 되지 않아 과연 나의 길인가라는 생각에서 모두 아니라고 결정을 하면서 모두 퇴짜를 놨다. 다는 또 새로운 곳을 찾아 나올 준비를 했다. 그렇게 3번의 회사를 옮기고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영업직 말고 앉아서 일하고 싶었다. 기술이 필요했다. 하지만 나는 서울소재의 대학교를 졸업했다는 것 말고는 기술이 없었다.
공부만 해서 대학교 졸업장만 있으면 취업된다는 말은
대학 가보지도 못한 그시대의 틀에 박힌 사람들의 예전 내 시대의 추억이면서 지금은 거짓말이었다.
나는 기술이 필요했다.
그리고 나이는 30이 되어갔다.
아직도 나는 무엇을 하며 먹고살 것인지 정해지지 않았었다.
30대가 돼서 기술을 배우겠다고 했지만 무엇을 배워야 할지 몰랐다. 그때의 여자 친구인 지금의 아내를 만나 연예를 할 때 내가 좋아할 만한 것을 함께 고민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국비지원 교육'을 알려주었다. 그 안에서 찾은 것이 모션그래픽 디자이너 양성과정이었다.
8개월의 과정을 마치면 취업을 해주는 프로그램이었고, 월 40만 원 정도의 돈도 나왔다. 그 당시에 나의 연봉은 1800만 원이었다. 하지만 이 마저도 아까워서 월급을 포기하면 마이나스가 되는 것처럼 생각을 해서 주저했다. 또 1년을 마치고 나가면 집에다가 말할 면목도 없었다.
이건가? 이게 나의 길인가?
...
정말 이제 그만 옮겨 다니고 싶었다.
마지막 배움이라는 생각으로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을 오래 가졌다. 학생처럼 8개월 동안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공부를 해야 했다. 그 안에서는 내가 제일 나이가 많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두근거리고 해보고 싶다는 열정으로 가득 찼다. 30살이 되고 이것저것 회사생활을 해서 지쳤다는 것보다는 빨리 나의 적성을 찾고 싶다는 의지와 뭔가 나와 맞겠다는 것이 결합되어 시너지가 났던 것 같다.
더 나를 움직이게 했던 건 이 일을 성공을 하면 더 이상 영업하러 나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능력이 없고 기술이 없으면 나가서 몸으로 때운다는 게 3년간 내가 영업직을 하면서 겪은 결과이고, 그것은 나와 맞지 않다는 것이 30살 그때의 결론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앉아서 돈을 버는 꿈을 가지고 나는 국비지원을 신청했다.
그것이 나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