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닝 포인트라는 것이 있긴 있구나.

너를 만나서 너무나 다행이야

by 새롭게 리플랜

나이 30에 회사를 그만두고 국비지원이라는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지금으로부터 한 5년 전이었다. 그대까지만 해도 영상이라는 것이 그렇게 대중적이진 않았다. 아프리카 TV에서 열심히 별풍선을 받던 BJ들이 사이드잡을 위해서 영상을 편집해서 유튜브에 업로드하던 시기니 말이다. 나는 뚜렷한 기술이 없기 때문에 영상을 만드는 방법을 알고 싶었다.


국지비원으로 영상을 배우기 위해서 파주에서 당산까지 8개월 동안 출퇴근을 해야만 했다.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의 나이에 내가 과연 8개월 뒤에 기술을 얻어서 나만의 직업을 찾을 수 있을까?라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일 뿐이었다. 면접을 보고 꼭 붙고 싶다는 의지를 불태웠으며, 열심히 하고 싶은 나의 열정은 눈에 가득했다.


그래서 뽑혔다고 생각한다. 경쟁률이 그렇게 쌔지는 않지만, 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은 할 수밖에 없었다. 나랑 같이 면접 보던 3명의 사람 중 합격된 사람은 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취업을 연계를 하는 국비지원 학원의 특성상 나라에 서주는 국비지원금을 받으려고 오는 사람인지 진짜 취업을 위해 오는 사람인지 보는 눈이 있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나는 놀러 오는 사람과는 마음가짐이 달랐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까지 나왔지만 전공을 살리지 못한 나는 그냥 세상에서 뭐든 것을 배워야 하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아깝고, 후회가 될 수 있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살 수만은 없는 거 아닌가? 나는 내 나이 30살을 뭔가 인생에 큰 변화가 있었던 첫 번째 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드디어 학원에 가는 첫날. 25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역시나 20대 초반부터 30대 중반까지 있었다. 다행히 내가 나이가 제일 많은 편은 아니었다. 동갑이 3명, 그리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 1명이 있었다.


빠른 년생으로 어딜 가도 어린 나이에 속했는데, 이제는 아무리 내려도 30살이고, 어딜 가도 나이가 제일 많았다. 여기저기 일을 해봤다는 사회경험은 있지만, 기술적으로는 20대 초반과 동급인 상태이다.



쪽팔리고 싶지 않았다.

꼭 잘 수료해서 영상회사에 취업을 하고 싶다는 꿈이 컸다.



하루하루 정말 열심히 다녔다. 하기 싫은걸 억지로 한다기보다는 정말 재미가 있어서 열심히 다녔던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전문 인력으로 뽑아야 하는 과정이기에 모든 과정은 속성이고, 핵심적이었다. 영상만 한다고 영상만 배우는 과정이 아니었다. 포토샵과 일러스트, 애프터 이펙트, 에디우스, 파이널 컷, 3DMAX를 하나씩 한 달 과정으로 배워나갔다. 깊이 있게 배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기초는 다질 수 있었다.



세상에 너무 재미있다.

공부라는 것이 재미있을 수 있구나 싶었다.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한 이유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같은 수업을 들어도 시험문제처럼 같은 답을 써 내야 정답이라고 말하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똑같은 수업과 완전 다른 결과물들, 그 사람의 성격과 성향에 따라 각자 개성 있는 결과물들이 나왔다.


그 결과물들 중에서도 나도 독창성이라는 것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고 즐겨하던 것이 나의 인풋이었고, 그것을 비슷하게 따라 하고 싶어도 따라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답게 내가 배운 내용 안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 프로그램이라는 붓을 통해서 나는 하얀 도화지에 내 마음대로 내가 배운 스킬을 마구 응용하고 표현했다.


남 눈치를 잘 보며, 따라 하는데 급급한 학창 시절의 학습습관과는 다르게, 나는 그 안 25명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널려있는 모든 영상 콘텐츠들과 경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나의 목적만을 위해 달려가는 학창 시절을 보낸 나는 잘난 친구들과 비교하면서 그렇지 못한 나를 '공부머리가 없어서 그런 건가?'라는 판단을 스스로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배우는 것에 열정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고 싶은 것을 30대에 찾았을 뿐이고 30년을 살면서 뭔가를 배우는 것에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을 30대가 되고서 알았을 뿐이었다. 학창 시절 다니던 학원과 과외 대학교 등록금과 기숙사 비용, 책 샀던 비용들이 지금 생각하면 너무 아깝긴 했다.



아니 아깝다. 너무 아깝다.

이과를 가지 않고, 미대를 갔었더라면

학원비를 비트코인이나 주식에 넣었더라면,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고민해서 미리 찾아서 그것을 위해 공부를 해왔으면 지금 나는 더 높은 곳에서 일을 하고 있거나, 더 나은 나의 모습을 그릴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후회가 있었다.


하지만 늘 선택을 해야 하고, 후회는 따를 수 있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내가 설마 지금까지 현명한 선택만 해왔다고 하더라도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을까? 지금이라도 나의 길을 찾고, 내가 좋아하는 적성을 발견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렇게 나는 30대를 회사가 아닌 국비지원 학원을 다녔고,

지금 생각해보니 그 30살의 나는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경험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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