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할 수 있는 놈이었구나.

by 새롭게 리플랜

이런저런 돈만주면 다 하겠다는 열정으로 다닌 회사들을 그만두고 국비지원을 받으면서 공부하는 첫날이었다. 30살이 되어서 무엇인가를 배우겠다면서 온 당산에 있는 영상을 배울 수 있는 작은 학원. 나는 이곳에서 다양한 영상 프로그램을 접하면서 하나씩 배워나가며 반듯하게 정장을 입고 하는 영업이 아닌 앉아서 일할 수 있는 꿈을 꾸었다.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쁨 조금, 설렘 조금, 두려움 가득한 상태로 시작을 했었던 것 같다.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했지만 전공을 살리지 못한 나는 컴퓨터와 나는 불편한 관계이다. 컴퓨터공학을 나오면 컴퓨터도 조립도 잘하고, 포맷도 능숙하게 하는 것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들은 못하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잘 모른다. 그런데 내가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돈을 벌겠다고? 그런 마음을 먹으면 먹을수록 점점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도 남들이 하지 말라고 하면 빠르게 식어버리는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몰랐지만 계속 찾아왔다. 하지만 이런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가족과 친척들이었다. 결혼도 하고, 자리 잡아 아이도 낳아야 하고, 집도 사고, 차도 사고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늘 제자리걸음이었고 더 이상은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안정이 돼야 그들의 신경을 더 이상 안 써도 될 것 같았고 나도 그러기를 바랐다.

이 지겨운 굴레를 벗어나려면 발버둥 쳐야 했다.

그래서 나는 30대가 되어 새로운 시작을 하기 위해 학원에 앉아있다.




학원 첫날 시작.

포토샵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아주 기초적인 도구들을 하나하나 켜보면서, 원을 만드는 방법, 선을 그리는 방법, 그 안에 공간을 빼서 교집합 부분에 색을 채우고, 나무를 그리고, 구름을 만들고, 색을 넣었다. 내가 지금 배우고 있는 것은 너무 기초적인 것이었다. 국비지원을 받으면서 40만 원을 타 먹을 나이 어린 친구들도 몇몇 앉아있었다. 그 친구들 한태는 이런 기초들은 유치원 그림 학원 정도의 수준인지 집중력이 유치원생 수준이고 딴짓하기 바빴다.



하지만 나는 간절했다.



너무 간단하지만 나에게는 모든 것이 서툴렀고, 알아가는 재미가 있는 나에게는 너무 즐거운 수업이었다. 내가 머릿속으로 그려오던, 만들고 싶었던 디자인들을 손으로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이니 재미가 없을 수가 없었다. 속성으로 가르쳐주다 보니 수업 진행 속도는 미친 듯이 빨랐고, 모르고 넘어가면 다시 복습하기도 어려웠다. 나는 따라가기 벅첬지만 열심히 했다.


수업시간에 질문이란 걸 해보지 않았던 나는 실습시간에 손을 들고 선생님을 불러 미친 듯이 질문을 쏟아냈다. 모르는걸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뒤가 없었다. 나는 이곳을 마치면 취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고, 그곳에 가면 나의 이런 기본적인 것을 물어보는 것은 실례고 쪽팔린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느덧 나는 그 수업의 진도는 모두 해결을 할 수 있었고,

주위에서 잘 모르면 어느 정도 알려줄 수 있는 정도까지 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모르는 부분은 어떻게 이 정도도 모르지 할 정도로 모르는 상태였다.)



아예 프로그램을 처음 접해보는 초보인 나. 배우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다음 커리큘럼이 기다려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나는 초중고를 마치고 대학교도 졸업했지만, 이렇게 공부를 재밌게 해 본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할 때는 집중력도 높아지고 잘한다는 것도 깨달은 순간이었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공부는 재밌었다.



1달은 포토샵, 1달은 일러스트 이렇게 비슷한 순서로 계속해서 속성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해나갔다. 드디어 내가 원하는 영상 프로그램인 프리미어와 애프터 이펙트 수업이 다가왔다. 평소에 영상에 관심이 많았다. 지금은 워낙 대중적이지만 6년 전만 해도 그렇게 많이 다룰 수 있는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그런 꿈에 그리던 수업을 무료로 듣고 돈도 준다니, 정말 나라에게 감사할 일이었다.


역시나 나는 스펀지처럼 빨아들였고, 힘든 수업이 즐거움과 기대감으로 가득 찬 나는 시키지도 않는 것을 선행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숙제를 내주면 집에서 늦은 밤까지 했고, 아침에는 절로 눈이 떨어져서 학원을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다시 말하지만 열심히 학원 가서 수업 듣는 그때 나의 나이는 30살이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것이 이런 기분이구나.



처음에 다 안다고 깝죽거리던 동생들과 어느 정도 비슷한 위치가 될 수 있었다. 이기고 싶었다. 거기에 플러스로 배움에 목말라 있었던 것 같았다. 이렇게 다양한 프로그램을 추가적으로 배웠다. 4~5개월을 배우고 나머지는 취업준비를 해야 한다. 취업을 위해서는 스펙이 중요했고 쌓는 방법은 바로 공모전을 나가서 상을 타는 것이었다.


공모전은 그들이 주제도 정해주고, 홍보해야 한느 브랜드의 상품이나 로고도 있었고, 뚜렷한 결과물의 정답이랄 것이 없었다. 아무거나 내가 하고 싶은데로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나의 아이디어를 샘솟게 만들었고, 즐겁게 만들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는 애프터 이펙트라는 프로그램을 주력으로 영상제작을 했다. 촬영도 중요했지만 나는 다른 친구와 함께 협업해서 모션그래픽 쪽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나는 이곳저곳 할 수 있는 모든 공모전을 모두 지원했고, 거짓말처럼 모두 입상과 장려상, 은상 등등 신청한 모든 공모전에서 상을 탔다. 상금도 받고 꽃다발과 상패도 받고, 태블릿도 받아 지금도 전자책으로 사용 중이다.


개근상 말고는 받아본 적이 없는 나는, 생전 처음 배워보는 영상이라는 분야에 30살이 시작된 겨울에 도전을 해서 여름이 다가오는 시기에 공모전에서 상을 받고 있었다. 모든 영상 프로그램을 배우고, 5~6개 정도 공모전을 입상과 수상을 하며, 어느덧 8개월이라는 시간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더 배우고 싶지만 이제 실전에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원래 이 과정을 거치면 보통 간단한 편집과 연출 등을 하는 PD로 가면 잘한 거였다. 하지만 나는 앉아서 컴퓨터만 하면 되는 모션그래픽 디자이너로 바로 취업을 할 수 있었고, 더 이상 영업을 뛰지 않고 앉아서 돈 벌고 싶다는 나의 꿈을 이루게 되었다. 인생에 잊지 못할 30살을 스스로 만들었고, 나는 생각했다.


나도 할 수 있는 놈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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