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도 나를 돕는구나.
드디어 내가 좋아하는 영상제작이라는 기술을 가지고 모션그래픽 회사에 입사를 했다. 나의 집은 파주였고, 이 정도의 열정이면 서울에도 걸어서 다닐 수 있을 정도(?)로 파이팅이 넘쳐 흐르는 상태였다.
또 하늘이 나를 도왔을까?
운이 좋게도 파주 출판단지에 영상 회사를 다니게 되었다.
집에서 차 타고 20분 거리 정도였지만 대중교통으로는 1시간 정도 걸리는 애매한 거리였다. 대수롭지 않았다. 나는 부모님을 설득해 열심히 다니겠다고 호언장담을 하고 작은 중고차 하나를 구매했다. 이 작은 중고차는 6년이 지난 지금까지 잘 관리하며 타고 있다.
이전에 3년의 방황은 잊어버리고
30살에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첫 근무 & 첫 차
나는 평생 고민해야 할 진로에 대한 고민을 다 해결했다는 것과 인생은 30부터라는 생각을 가지고 앞으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계속했었던 것 같다. 월급은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이기에 조금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늘리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영상 프로그램을 가지고 앞으로 꾸준히 배워서 성장해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첫 회사는 그래도 분위기가 괜찮았다. 사람들도 활기차고 열정도 있어 보였다. 나이는 신입이지만 중간쯤이었다. 나와 같은 일을 해야 하는 친구들은 나보다 나이가 어렸고, 다행히 팀장은 나보다 몇 살 위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이것저것 흡수할 듯이 일을 주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뭐 첫날부터 일 하는 회사는 없었다. 나는 팀장의 옆에서 그의 살아온 발자취와 그가 만든 영상들을 보며,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그에게 마음껏 찬사를 보냈다. 나의 리액션은 진심이었고, 궁금증 투성이었다.
진심 멋져 보였다.(얼굴 말고)
그의 이야기는 끝날 줄 몰랐고, 나의 질문도 끝날 줄 몰랐다. 손끝에서 그런 작업물들이 나오는 것이 상상조차 되지 않기 때문에 더 멋져 보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대단한 회사 같아 보이지만 직원은 대표님 포함해서 5명이었다. 나머지는 외부에서 인력을 끌어다 쓰는 작은 스튜디오와 모션그래픽을 같이 하는 회사였다. 나는 너무 감사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이력서만 보고 뽑아준 고마운 회사였기 때문이다. '나의 잠재력을 인정해주고 키워주겠다는 마음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나를 뽑아주었다는 생각이 컸다.
구세주를 만난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오후에 대표님과 상담을 했다. 연봉과 식사, 야간근무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늦게 시작했다는 생각에 나는 돈보다는 성장이 우선시되었다. 나이 어린 친구들보다는 당연히 잘하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그러기 위해서는 토 달지 않고 열심히 해야 조금씩 돈도 모으고, 안정적으로 회사 생활을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었다.
행동보다는 말로써 나를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대답했다.
'저는 이 회사에서 평생 일할 생각입니다.'
'이 회사에 뼈를 묻겠습니다.'
진짜 진심이었다.(그때는)
그런 마음으로 다니고 싶었다. 나이 30살에 영상제작 일 말고는 다른 일을 또 도전해서 새롭게 시작한다? 말이 되지 않았다. 나의 손을 잡아준 회사를 몇 년 배우다가 때려치운다는 마음으로 왔으면 이런 말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매일 1년에 한 번씩 일을 그만두면서 느끼는 나의 자존감의 상처와, 안정감 있게 회사를 다니기를 원하는 부모님의 기대 모든 것을 이번 한 번에 털고 싶었다.
그 정도로 간절했다.
그 이후 나는 좋던, 안 좋던, 모든지 흡수하는 스펀지 같은 사람이 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다.
'아니요.'
'못하겠는데요.'
'못할 것 같은데요.'
'어려울 것 같은데요.'
'시간이 없는데요.'
'집에 가야 하는데요.'
...
..
.
이런 말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사치였다. 이런 말이 입 밖에서 나온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목표를 미루는 행위라고 생각을 했고, '급성장과 안정적인 위치'를 위해 그런 마인드로는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인정받기 위해 나는 '넵'충이 되었다.
인정받기 위해 나는 '넵'충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