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리 마을 음악감상실과 노을숲길을 다녀와서

-고요 속을 유영하는 음표들

by 안명옥


오월의 신록이 마을과 뒷산에 지천이더니 선물처럼 대학 선배가 왔다.나에겐 잘 산다는 건 좋은 사람과 맛있는 밥을 먹는 일이다. 함께 타사의 정원에서 점심을 먹었다. 타사의 정원에는 온갖 꽃들이 활짝 웃으며 환영해주었다. 이곳에서 식사를 마친 가족들이 꽃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코스 요리가 나오는 동안 두바이 다녀온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바이에선 내국인이 10 프로이고 외국인이 90 프로인데 외국인 노동자들의 임금은 30만원 혹은 80만원 100만원 미만정도받는다고 한다. 내국인과 임금 차이가 엄청나도 두바이 드림처럼 대기자가 12만 명이나 된다. 선배는 우리나라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 노동자들과 똑같은 조건의 임금을 받고 있다했다. 더구나 외국인 노동자 중에는 우리나라 여성과 결혼 후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이혼 후 본국의 처나 여자를 데려와 살기도 한단다. 브로커들에게 우리나라 오기까지 준 돈도 있지만 워낙 본국보다 우리에게 받는 임금이 크다 보니 돌아가면 부자로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도 공장에 일손이 워낙 부족한 우리의 현실이니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들어오고 네트워크도 잘 되어 노조처럼 만들어 “사장님, 월급 올려줘요.”하고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5월 연휴에도 국내 내수경기는 좋지 않아도 다들 외국 나가서 돈 쓰고 있다고 뉴스 이야기를 나누다가 난 뜨끔했다. 올해 정년퇴직 겸 생일 선물로 딸이 보내준 두바이 간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봄 햇살 받으며 헤이리 마을 내 황인용 음악감상실로 자리를 옮겼다. 선배는 커피를 나는 보이차를 시킨 후 자리에 앉았다. 이미 실내는 많은 이들이 앉아 음악을 감상하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뒷좌석밖에 자리가 없었다.

나에겐 이곳이 인연이 많은 곳이다. 결혼 초 이태원 시댁에 들어가 살 때다. ‘황인용 강부자입니다.’란 라디오 프로가 있었다. 난 그곳에 결혼 초보 시집살이 사는 새댁 사연을 글로 보낸 적이 있었다. 내 글이 채택되었고 생방송 중 전화 연결을 할 거라고 작가에게 전화가 왔다.생방송 중 황인용, 강부자 씨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선물로 이동용 가스렌지를 받았다.

두 번째는 기자 시절, 초창기 헤이리 마을을 취재할 때 여기를 취재한 적이 있다. 그때는 지금처럼 의자 배치가 이렇게 앞을 향해 있지 않았다. 오래전 이곳을 찾을 때만 해도 자신이 듣고 싶은 곡을 적어내면 들려주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3번째 헤이리 마을 인연은 내가 여름에서 가을로 갈 무렵이다. 군중들 앞에서 내 시집<칼 >시집과 <뜨거운 자작나무 숲>을 소재로 팬터마임(무언극) 공연과 시 낭송도 하고 사인하는 행사를 열어준 것이다. 그 시절 헤이리에서 근무하던 윤성택 시인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황인용 음악실 안으로 들어서자 Dobrinka Tabakova 음악이 흐르고 있고 오른쪽 천장인 통창으로 신록의 나무들이 보였다. 주문한 차가 나올 무렵 조지 거슈윈의 곡이 흘렀다. 숨결 위를 걷는 선율들이 춤을 추는 듯 했다. 알베니즈의 suite Espanola,op.47-3.Sevilla곡도 내 귀를 호강시켜 주었다. 평소 클래식을 들을 기회가 없어 곡에 대해 잘 모른 채 들었지만 마음에 신비로운 평화를 가져왔다. 선율에 따라 다양한 감정들이 피어올랐다 어떤 곡은 작곡가의 일생이 들어있는 곡처럼 느껴지고 어떤 곡은 작곡가의 사랑하는 마음도 느껴져 왔다.

한 음악이 끝나면 다음 곡을 작은 칠판에 적었다. 그 부분이 아쉬웠다. 젊은 세대들인 디지털 세대에겐 얼른 네이버 등에 검색해 볼 수 있지만 연세가 있는 분들은 멀고 작은 글씨가 보이지 않고 그냥 무작정 아무 배경지식도 없이 들어야 했다. 한 아들이 연세든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내 앞자리에 앉았는데 아들이 이런 곡이라고 핸드폰 검색해 보여주자 안 보인다고 그냥 들으셨다.

난 앞에까지 나가서 누구의 어떤 곡인지 보고 와서 자리에 앉아 들었다. 오늘 들려줄 곡들을 배경지식으로 종이에 인쇄해주는 건 차 한 잔 입장료에 바람이 큰 것인지 모른다.

어구스틴 바리오스 망고레(기타연주가, 1885-1944)의 곡은 시간의 틈에서 피어나는 소리같았다. 호아킨 로드리고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의 곡은 눈을 감고 들었다.빛도 발자국도 숨 죽이는 곡을 심장으로 느꼈다. 개운해진 눈으로 나뭇잎들을 올려다보니 초록 잎들도 클래식을 들으며 수런거리는 모습이 눈부셨다. 클래식과 보이차도 잘 어울렸다. 혼자 듣는 음악도 좋지만 여럿이 클래식을 들으니 다양한 표정들을 함께 볼 수 있어 더 재미있다. 한 모금 마시며 클래식을 들으니 세상 부러운 게 사라지는 순간이다. 젊은이들이 쌍쌍이 와서 서로 어깨를 기대고 듣는 모습은 사랑스럽다. 책을 가져와 읽거나 인스타그램을 넘겨보면서 듣는 이도 눈에 들어왔다. 머리가 희끗한 아버지와 고등학교 딸이 와서 같이 듣는 모습은 훈훈했다. 외국인 남자친구와 함께 듣는 한 쌍도 인상적이었다. 빈 의자가 없이 계속 나가고 다시 채워졌다.

프랑스의 까미유 생상스 곡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선율들이 내게 마음의 지도를 그려준다. 이젠 걷고 싶었다.모처럼 클래식을 듣고 나니 귀족이 된 걸음걸이가 나왔다. 귀가 청소가 된 듯하고 마음이 맑아진 느낌이다.

헤이리 예술인 마을 뒷산으로 오르니 헤이리 무장애 노을 숲길이 나왔다. 올라가는 길들이 데크로 깔끔하고 경사도 완만하게 잘 만들어져있다. 평소 제자들이 찾아오면 헤이리 예술인 마을의 건축물들을 보여주고 카페에서 대화도 나누다가 헤이리 예술마을 7번 게이트로 들어가 8 주차장 주차하고 노을 숲길을 산책하고 내려왔었다. 정상은 강력한 햇살 가림막이 더 크게 정자처럼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정상에 서서 한강과 조강(두 강이 만나는 곳),애기봉이며 강화도와 북한의 황해북도 마을과 임진강을 보고 이북 5도민 공동묘지도 보고 내려왔다. 선배가 떠나고 나는 아직도 귀에 고인 음악을 꺼내 들으며 투명한 울림을 느꼈다. 저녁이 오고 있었다. 하루의 끝에서 음악이 말을 걸었다. 선물로 클래식 음악을 선사해준 하루가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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