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에 관하여
1. 나는 공개 일기를 쓰는 것에 익숙하다. 과거의 장(章)에는 무차별적이고 절대적이며 부조리한 원망과 분노로 긁혀 있었다. 만일 당시에 푸르죽죽한 그 페이지를 펼치라 했다면 표리부동하고 욕망스러운 수치심이 악취를 풍겼을 것이다.
나의 소셜 미디어에 공개 영어일기 게재를 시작으로 여러 생각들과 교류하면서, 수양의 첫 발을 디뎠다. 당시 영어 실력 향상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올바르지 못한 생각과 올바른 통찰을 알고 싶었다. 그러나 이를 가르쳐줄 선생이 없어 삼인행 필유아사언(三人行必有我師焉 -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 / 논어 술이편)이라는 말처럼 셋이 넘는 사람들을 만나 검증과 반성의 과정을 거쳤다. 틀이 깨지자 깨치게 됨이었다.
사실 적시는 목적이 될 수 없다. 기록은 주관성을 벗어날 수 없으며, 확인을 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 될 터이다. 나의 생애는 차후 여럿의 아무개가 목격하고 교차검증을 통해 객관성을 달성하리라 본다. 그렇기에 나는 사실만으로는 적힐 수 없는, 사유와 감성을 위주로 일기를 채워두고 싶다. 다만, 추억으로 남았으면 하는 것들은 기록으로 남겨두려 한다.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기록의 방향성이 달라지리라 본다.
2-1. 논어 학이편에서는 증자의 이야기가 나오며, 이는 내가 실천하는 바와 같다.
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
공자의 제자 증자(曾子)가 말하였다. "나는 날마다 세 가지 일로 나 자신을 반성하니, 남을 위하여 일을 꾀하면서 진심을 다하지 않았는가, 벗과 사귀면서 진실하지 않았는가, 배운 것을 익히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2-2. 다산 정약용은 아들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으며, 이는 내가 실천하는 글쓰기의 방향과 같다.
‘열흘 정도마다 집안에 쌓인 편지를 점검하여 눈에 거슬리는 번잡한 것은 하나하나 뽑아 적어두고, 심한 것은 불살라버리고, 그보다 조금 덜한 것은 노끈으로 만들어 쓰고, 그보다 조금 덜한 것은 벽을 바르거나 종이상자를 만들어 쓰면 정신이 맑아지게 될 것이다.
편지 한장 쓸 때마다 두번 세번 읽어보면서 이 편지가 사통오달(四通五達)한 변화가에 떨어져 나의 원수가 퍼보더라도 내가 죄를 얻지 않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써야 하고, 또 이편지가 수백년 동안 전해져서 안묵있는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더라도 조롱받지 않을 만한 편지인가를 생각해본 뒤에야 비로소 봉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글자가 삼가는 바다.
내가 젊어서는 글을 너무 빨리 썼기 때문에 여러번 이 계율을 어긴 적이 있었지만, 중년에 화 입을 것을 두려워하여 이 원칙을 지켰더니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너희도 이 점을 명심토록 하여라 (1810년 봄 다산동암에서 쓰다.)’
3. 이제 구역에 따른 생(生)과 활(活)이 다르지 않으며, 새를 보고 수저를 들며 글을 쓰는 모습은 어디에 방생하여도 달라질 것이 없다. 내가 쓴 글은 어디서나 내 글로 남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