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글에 관한 해석 요청을 받았다. 일기와 기록은 어찌 다른지 물었다. 그러나 문장은 문장을, 단어는 단어를 담을 수가 없었고, 나는 지나치게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홀로 밝혀낸 실로 놀라운 증명법은 여백이 부족하여 적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읽는 에게 주석의 의무를 희사(喜捨)하기로 했다. 나의 답은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릴 것이기에.
2. 최근 한 블로그에 초대받았다. 수많은 책이 눕힌 채로 꽂혀있었다. 그 아래 내장이 없는 사슴의 머리처럼 진열된 장신구(裝身“句”)들이 발췌되어 있었다. 한 구절에 다다르기 위해 8개의 이야기를 써야 하는 나는 이를 견딜 수 없었다. 그 사람이 읽었다는 책이 어떤 생각과 추론을 시작하고 마쳤으며, 그 사람은 어떤 질문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환하게 차오른 표현을 담지 못해 중절(中絕)된 얘기의 부위들을 품에 안고 한 그믐을 울었다.
3. 나는 시 필사도 전문(全文)을, 서평은 책의 이야기들을 펼치며 시작한다. 말씀의 가감(加減)은 재앙을 불러오며 거룩한 몫이 사라질 것이다. 핏줄이 끊어진 글은 살아있지 못할 것이다.
내 글도 누군가의 장신구(裝身“句”)가 되어버릴까. 희소한 단어들이 솎아져 굽이치는 꼴로 다시 쓰이게 될까. 글쓴이들은 자기가 쓴 글이 겪어야 할 죽음의 공포를 어떻게 감당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