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원망하지 않게 되었다

by 허경심

아이가 징징거릴 때마다 유난히도 참기가 힘들었다. 아이가 왜 징징거리는지 아이가 무엇이 불편한지를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아이의 징징거림으로 자극받아 스트레스 지수가 급격히 올라가고 가슴속부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린 시절 엄마가 나에게 자주 ‘욱’하고 화냈던 기억이 안 좋았기에 나는 결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꾹꾹 참았다. 참으면 참을수록 화는 더욱 커졌고 급기야 화는 용수철이 튀어 오르는 것처럼 분노로 표출되었다. 그렇게도 엄마처럼 되기 싫었건만 결국 나도 나의 엄마와 똑같은 상황을 만들곤 했다.


매번 씻기 싫어하는 아이와 대치하는 날들이 있었다. 어느 날 안 씻겠다고 끊임없이 징징대던 아이의 얼굴을 보며 따귀를 한 대 갈겨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마치 욕지기가 올라오는 것처럼 내 머릿속에 섬광처럼 일어난 충동이었다. 대체 내가 왜 이럴까 싶었다. 그 충동이 또 올라올까 봐 두려웠다. 그러다 결국 올라오는 충동을 이겨내지 못하고 아이 얼굴에 따귀를 갈겨버렸다.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었고 나는 자책하며 괴로워했다.

나는 왜 징징대던 아이 얼굴을 보며 따귀를 때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을까. 나는 대체 왜 아이가 징징거리는 걸 그렇게도 못 참았을까. 그 이유는 바로 나의 어린 시절에서 찾을 수 있었다.


초등시절 난생처음 TV 드라마에서나 보았던 노래방이란 곳을 갔다. 어떤 특별한 날이었는지 나와 동갑내기인 아들과 동생을 둔 이모네 식구들과 함께였다. 나는 노래방에서 노래를 불러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신났다. 그런데 막상 노래를 고르려니 도통 노래 제목이 생각나지 않았다. 반면 우리 오빠는 최신 노래를 척척 골라서 신나게 노래했다. 그러다 내가 정말 하고 싶던 노래를 오빠가 골랐기에 너무 반가웠다. 나도 꼭 그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오빠에게 내가 부르겠다고 말했지만 양보해주지 않았다. 나는 오빠가 들고 있는 마이크를 뺏으며 내가 부르겠다고 떼썼다. 엄마는 싸우지 말라며 소리쳤다. 오빠와 나는 계속 실랑이를 벌였고 오빠보다 힘이 약한 나는 마이크를 뺏지 못했다. 즐겁게 놀고 있는 친척들이며 엄마며 다 꼴 보기가 싫었다. 의자 구석에 앉아 분한 마음에 씩씩 거렸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점점 화가 가라앉는 걸 느꼈다. 그렇지만 내 화가 다 풀린 건 아니란 걸 엄마와 오빠에게 보여주고 싶어 계속해서 팔짱을 끼고 구석에 앉아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내 뺨에 불이 났다. 엄마가 나의 뺨을 몇 번이나 후려갈겼다. 구석에서 계속 화났다고 표 내고 있는 나의 모습에 엄마는 화가 머리끝까지 난 것이다. 조금만 더 그대로 놔뒀더라면 나는 스스로 화가 풀리고 다시 활기를 찾았을 텐데 엄마는 그걸 기다려주지 못했다. 나는 친척들 앞에서 엄마에게 맞고 우는 모습을 보이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쿵작거리던 노래 반주가 멈추고 나의 울음소리가 노래방 안을 가득 채웠다. 우리는 그 길로 노래방 시간을 다 채우기도 전에 밖으로 나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 또래 친척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내 자신이 너무 수치스러웠다.


지난날 안 씻겠다고 버티던 아이 얼굴을 보며 따귀를 갈겨주고 싶던 충동은 어린 시절 상처 받은 나의 내면아이가 자극받았기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징징대거나 떼를 쓸 때 엄마의 반응은 언제나 화와 분노 혹은 폭력이었다. 내가 불편한 심정을 징징거림으로 표현했을 때 엄마가 나에게 보인 부정적인 반응들은 상처가 되어 내 무의식에 차곡차곡 쌓였다. 그 상처들은 무의식에 있기에 모르고 지내다가 아이가 거울처럼 비춘 내면의 아이가 반응한 것이다. 마치 맑은 강물 밑에 가라앉은 흙을 막대기로 휘저으면 물이 탁해지는 것처럼 상처 받은 내면아이는 나의 아이를 통해 강물 밑바닥에서 올라와 나를 온통 휘어잡았다. 내면아이와 마주하는 횟수가 늘 수록 나의 육아는 끊임없이 나의 상처와 마주하는 일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의 상처를 해결하지 못했기에 아이가 1학년 때 왕따를 당했을 때, 문제 행동을 보였을 때 아이를 보지 못하고 내 감정에만 빠져있던 것이다. 나는 내면아이 치유를 위해 내가 엄마가 되어 나에게 편지를 써 보았다.


사랑하는 우리 막내 경심아.

우리 경심이가 그렇게 힘들었구나. 그렇게 무서웠구나. 그렇게 불안했구나. 엄마 아빠가 알아주지 못해 미안해. 엄마가 그땐 너무 힘들었어. 엄마가 힘들어서 너희에게 다 쏟아부은 것 같구나. 엄마가 참지 못했어. 조금만 참으려 노력했더라면 좋았을걸. 엄마도 엄마 감정이 조절이 안 돼서 많이 힘들었단다. 그걸 우리 경심이가 똑같이 겪었구나.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두려웠을까. 우리 경심이.

그런데도 잘 지나왔구나. 잘 견뎌냈구나. 장하다. 장하다 우리 경심이 장하다. 엄마도 가끔 그때를 떠올리면 너희에게 얼마나 미안한지 몰라. 가슴이 아프고 숨이 턱턱 막히고 너무 괴로울 때가 많아. 이제 다 지난 일이구나. 되돌릴 수 없다는 게 엄마는 마음이 너무 아파.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면 우리 경심이 엄마가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위로해줄 텐데. 엄마가 좀 참을 텐데. 엄마가 너무 몰랐다. 너무 몰랐다.

사랑하는 우리 막내딸. 우리 예쁜 막내딸. 경심이 엄마가 진심으로 미안해. 우리 경심이 엄마가 너무 미안하다. 사랑한다. 많이 사랑한다 우리 경심이 엄마가 너무너무 사랑해.


편지를 쓰는 동시에 편지 내용을 소리 내어 말했다. 내가 엄마가 되어 말했다. 엄마가 나의 마음을 알아주자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엄마의 입장을 생각할 수 있었고 엄마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랜 시간 눈물을 쏟아내자 엄마를 향한 서운함, 원망으로 막혔던 엄마와 나 사이의 장벽이 모두 걷어지고 어린 시절 순수하게 엄마를 사랑하던 내가 느껴졌다. 나는 다섯 살 아이가 되었다. ‘엄마~ 엄마~’하며 소리 내어 울었다. 어린 시절 포근했던 엄마 품에 안겨 펑펑 울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눈이 심하게 부어있었다.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퉁퉁 부은 내 눈을 보고 놀랐다. 그즈음 나는 내면아이와 자주 만났고 자주 부은 눈으로 출근했다.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직장 동료에게 그저 넌지시 기쁨의 눈물을 흘려서 그렇다고 말해주었다.


60~70세인 우리들의 부모는 전쟁 직후의 베이비 붐 세대이기도 하다. 우리 엄마는 칠 남매 중 셋째 딸이다. 밑으로 동생이 넷이나 있다. 이렇게 많은 자식들 틈에서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전쟁 직후 궁핍한 시절을 보냈기에 그야말로 먹고살기 바쁜 시절이었다. 그러니 우리 부모 세대 중 그들의 부모에게서 감정을 수용받고 자란 이가 얼마나 될까. 엄마가 나에게 제대로 된 사랑을 주지 못한 건 엄마 또한 그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엄마 또한 내면에 상처 받은 아이가 많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 세대는 부모 세대와 달리 경제적 혜택과 교육의 혜택을 누렸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부터 심리학에 대한 관심도가 커졌고 엄마들은 점점 아이들의 감정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우리는 부모세대와 달리 육아에 대한 지식이 많아졌다. 그러나 우리 부모에게서 배워 몸에 밴 것들과 지식으로 알게 된 것의 간극으로 힘들어하는 엄마들이 많아졌다.


내가 엄마를 원망했던 것은 언제나 나의 입장에서 나는 피해자 엄마는 가해자라는 등식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감정은 대물림된다고 한다. 그러니 알고 보면 사실 엄마도 피해자다. 엄마도 엄마의 엄마에게 감정을 대물림받은 것이다. 나의 엄마도 어린 시절 나와 똑같은 경험을 했을지 모른다. 엄마도 어린 시절에 징징거리거나 떼쓸 때 본인의 엄마나 아빠에게 늘 부정적인 반응을 받고 자라지 않았을까. 엄마가 나를 심하게 혼낸 뒤 울면서 나에게 사과한 것은 자신도 그러고 싶지 않은데 결국 자신도 본인의 부모와 똑같은 상황을 만든 것에 대한 죄책감에 그러지 않았을까. 어린 시절 엄마가 이런 말을 했었다.

“엄마는 외할머니가 아는 게 너무 없어서 창피했는데 엄마는 너에게 그런 엄마가 아니라 다행이야. 그러니 참 좋지?”

이 말을 떠올리며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어린 시절 못마땅했던 자신의 엄마 모습을 닮고 싶지 않아 노력했던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지도 몰랐다.

내가 엄마가 되어 나에게 편지를 쓰고 상처 받은 내면 아이를 치유한 뒤, 그리고 엄마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고 난 뒤 나는 엄마를 향한 원망을 떠나보낼 수 있었다. 그러자 엄마의 내면 아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두운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울고 있는 아이가 보였다. 그 아이를 내가 안아 주었다. 내가 엄마의 내면 아이를 안아주고 나니 문득 이런 게 ‘철들었다’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엄마가 나에게 실망스러운 말이나 행동을 해도 크게 화가 나지 않는다. 그저 엄마의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굉장히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여느 때와 같은 아침이었다. 그렇게 일찍 자라고 해도 늦게 자더니 아이를 깨우니 오만상을 찌푸린다. 일어나지는 않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거리며 징징거린다.

“학교 가기 싫어. 더 자고 싶어.”

다른 때 같았으면 올라오는 화를 참거나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엄마가 어제 일찍 자라고 했어, 안 했어!”

이번엔 달랐다. 전혀 화가 올라오지 않았고 그저 오롯이 아이의 피곤함이 느껴졌다.

“아이고, 우리 00이 어제 늦게 자더니 피곤하구나.”

나는 그렇게만 말하고 아이를 꼭 안고 토닥여 주었다. 그러자 아이는 징징대는 걸 그만두고 일어나 세수하러 화장실로 향했다.


‘욱’하고 후회하고 ‘욱’하고 후회하던 나는 이제 정말 사라졌다. 아이가 징징거려도 화가 나지 않는다. 정말 전혀 화가 나지 않는다. 아이의 감정에 자극받아 내 감정을 주최 못하던 나는 이제 없다. 올라오는 화를 억지로 꾹꾹 참아야만 했던 나는 이제 없다. 오롯이 징징대는 아이의 감정만 보일 뿐이다. 내가 징징대고 떼쓰며 울던 내 안의 상처 받은 아이를 안아주었기 때문이다. 엄마를 원망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엄마 이제 난 알았어요. 엄마가 나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 상처 주는 말을 했어도 그 안에는 언제나 나를 향한 사랑이 있었다는 걸요. 엄마가 나의 글을 읽고 상처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엄마가 이 모든 걸 인정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엄마가 나에게 다시 불같이 화내도 상관없어요. 그건 엄마 안에 상처 받은 내면아이 때문이니까요. 엄마가 어떻게 나오든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그대로라는 걸 나는 아니까요.

엄마도 이제 과거 상처에 묻혀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엄마도 엄마의 내면아이와 마주하고 실컷 울면 좋겠어요. 엄마의 내면아이를 오래도록 안아주면 좋겠어요.

언젠가 통화하는데 엄마가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죠. 엄마도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곧 죽어도 그 말을 하기 싫었죠. 엄마는 내가 엄마를 원망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을 거예요. 나는 그때도 엄마를 원망하고 있었거든요.

이제는 말할게요. 엄마, 사랑해요. 너무나 힘들었을 텐데 우리 버리지 않고 키워주어서 고마워요. 우리 이제 더 이상 과거에 머물지 말고 지금을 살아요 엄마. 우리도 이제 행복하게 살아요.




브런치에 연재한 글이 감사하게도 종이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제 글이 여러분께 공감과 위로를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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