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공황 발작이 두 번 있던 날이다. 공황발작이 무엇인지 정확히 몰랐던 때였다. 일요일 낮에 발작이 일어났을 때 신랑에게 응급실에 가자고 했다. 신랑은 가 봤자 특별히 해 주는 일 없다며 월요일에 병원 문을 열면 가자고 거부했다. 하루 종일 불안감에 시달리다 겨우 잠이 들려는 찰나 또 발작이 일어났다. 죽을 것 같은 공포에 못 견뎌 신랑에게 응급실에 가자고 애원했다. 신랑이 불같이 화내며 말했다.
“지금 가도 소용없다고!”
신랑에 말에 굉장히 큰 상처를 받았다. 그 상처가 풀리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실 이런 식으로 신랑이 나에게 상처 준 일은 왕왕 있었다. 신랑 욕을 하는 건 내 얼굴에 침 뱉기라고 하니 그걸 굳이 다 여기에 쏟아내진 않겠다. 결혼생활을 하며 신랑이 나에게 던져 비수가 되어 날아온 말들이 하나하나 내 마음에 쌓였고 공황발작으로 힘들어하는 나에게 역정을 내는 신랑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나는 신랑에게 마음의 문을 닫았다. 언제나 내가 힘들 때 진심 어린 위로가 아닌 당장의 해결책만 제시하고 윽박지르던 신랑을 내 마음속에서 지웠다.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이 사람은 나를 지켜줄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은 내가 믿고 의지할 사람이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공황장애를 극복했고 신랑과 그럭저럭 잘 지내게 되었다. 그러나 한 번씩 신랑이 나에게 다정한 말을 할 때면 ‘욱’하고 화가 났다.
“설거지 내가 할게. 나둬. 너 힘들잖아.”
“내가 다 죽어 갈 때는 소리 지르고 화내더니 지금 와서 왜 이래? 됐어!”
신랑이 다정해질 때면 우리는 언제나 싸우게 되었다.
“너 힘들까 봐 그러지.”
“차라리 그런 소리 하지 마! 너무 듣기 싫어!”
다정히 대해주는데 오히려 화를 내는 나에게 신랑은 언제까지 과거에 묻혀 살 거냐며 답답해했다. 신랑은 계속 반복되는 나의 반응에 진중하게 사과했다. 그리고 확실히 나의 마음을 돌리려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신랑이 이렇게까지 노력하는데 내가 마음을 풀어야지. 용서해 줘야지. 머릿속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에서는 여전히 상처가 사라지지 않았다. 도저히 신랑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런 시간을 이 년씩이나 보내다 보니 이런 내가 싫어졌다. 이런 나의 심정을 이야기하자 신랑은 용서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 말이 고맙기도 하고 가슴이 아팠다. 왜 나는 신랑의 마음이 받아지지가 않을까. 왜 나는 그토록 신랑을 용서할 수가 없을까.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옹졸한 걸까. 나도 내 마음을 알 수 없는 채 시간은 자꾸만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책을 읽다가 정말 머리를 쿵 하고 한 대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안타깝게도 그 책이 무슨 책이었는지 어떤 내용이었는지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분명한 건 내가 왜 신랑에게 마음이 풀리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알았다는 것이다.
아이가 감기에 호되게 걸린 어느 날 나에게 말했다.
“엄마, 미안해요.”
아픈데 미안하다니 이게 웬 말일까. 고열로 뜨거워진 아이 이마를 쓰다듬으며 내가 말했다.
“00아, 엄마한테 왜 미안해 해. 아픈 건 절대 미안한 게 아니야. 그건 너의 의지대로 되는 일이 아니야. 그러니까 엄마한테 전혀 미안할 일이 아닌 거야. 약 먹고 푹 쉬고 잘 나으면 되는 거야. 알겠지?”
어린 시절 내가 아플 때면 엄마는 화를 내며 나를 탓했다. 엄마는 속상한 마음을 화로 표현했는지도 모르지만 어린 나는 내가 아픈 건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플 때마다 엄마에게 미안했고 크게 아프지 않으면 굳이 말하지 않았다. 배가 너무 아팠지만 나아지겠지 하고 끙끙대다가 등교시간이 다 되어도 통증이 줄어들지 않아 엄마에게 겨우 말하고 함께 병원에 간 적도 있다. 그래서 그랬을까? 나는 나도 모르게 주변에 누가 아프면 얼마나 아플까 하고 걱정해주는 게 아니라 화라는 감정이 먼저 올라왔다. 아마도 우리 아이에게도 그랬나 보다. 겉으로 표현한 적은 없지만 아이는 엄마의 감정을 귀신같이 알아낸다. 내가 숨긴 ‘화’를 아이는 고스란히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는지도.
신랑이 나에게 사과하고 아무리 잘하려 노력해도 내 마음이 풀리지 않던 이유는 바로 신랑에게서 우리 엄마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아프고 힘든데 보듬어주기는커녕 아픈 사람을 탓하고 화내던 엄마의 모습. 그 모습이 신랑에게 투사되었던 것이다. 공황 발작으로 힘들어하는 나에게 소리치던 신랑의 모습으로 인해 나는 알지 못하던 상처 받은 내면아이가 건드려졌던 것이다. 그 상처 받은 내면아이는 내가 안아주지 않았기에 계속해서 신호를 보냈던 것이다. 나 여기 있다고. 나 좀 봐 달라고.
나에게 있어 위대한 발견과도 같은 이 깨달음을 신랑에게 이야기했다. 머리로 생각할 때와는 다르게 말로 표현하자 눈물이 마구 솟구쳤다. 신랑이 말했다.
“우는 건 좋은 거래. 많이 울어.”
평소 같지 않은 신랑의 반응에 나는 더욱 오열했다. 상처 받은 내면아이가 실컷 울고 난 뒤 비로소 나는 신랑을 용서할 수 있었다.
내면아이 치유 관련 책들을 섭렵하면서 나에게 큰 상처를 준 사람에게 받고 싶은 사과를 내가 편지로 나에게 써 보는 것이 상처 받은 내면아이 치유에 굉장히 큰 효과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사과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거나 절대 사과할 사람이 아니라면 내가 직접 그 사람이 되어 나에게 편지를 써 보는 걸 적극 추천한다.
사실 신랑이 나에게 사과를 했지만 진정 내가 원하는 사과는 아니었다. 내가 신랑에게 듣고 싶은 말을 내가 직접 써 보았다. 쓰는 내내 눈물이 났고 신랑 입장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그저 피해자라고만 생각했던 관점이 바뀌었다. 신랑의 입장을 고려했을 때 용서의 길로 나아갈 수 있었다.
내가 신랑이 되어 나에게 편지 쓰기
사랑하는 경심아.
진심으로 사과할게. 네가 공황장애로 힘들어할 때 오히려 화를 내고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를 해대서 미안해. 사실 그때 나도 너무 두려웠어. 네가 어떻게 될까 봐. 경심이 네가 내 곁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너무 컸던 것 같아. 그런데 이상하게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어. 진심을 표현하고 살아오지 못해 그랬던 것 같아. 내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잘 몰랐어. 그래서 너에게 본의 아니게 많은 상처를 주었구나. 미안하다. 경심아.
그런데 나도 사람인지라 가끔 네가 그렇게 너무 심하게 화를 내면 화가 나고 상처 받고 되갚아 주고 싶기도 하고 그랬어. 그렇다고 해도 아픈 사람에게 그러는 건 아닌데 내가 정말 어리석었다.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에게 힘이 되어주지는 못할망정 더 큰 상처만 주었구나. 내가 앞으로 어떻게 더 잘해야 할지... 매일 노력하고 있는데 잘 안 돼서 나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네. 나이는 점점 들어가고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직장도 불안하고. 내 마음이 불안하고 힘든데 너는 마음을 돌리지 않으니 너무 외로워. 경심아. 내가 요새 좀 외로워. 이제 그만 지난날 내가 잘못한 것들 용서해주면 안 될까? 내가 늘 표현을 너무 모지게 했어. 미안해 경심아. 내가 표현방법을 몰랐구나. 앞으로는 나의 마음도 너에게 보여주려 노력해 볼게. 평생 내 진심을 숨기며 살아서 나도 잘 안 되네.
경심아, 00이 잘 키워줘서 고마워.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꿋꿋이 일해서 안쓰럽고 고마워. 내가 앞으로 다 갚을게. 잘할게. 우리 경심이 고생한 거 다 갚아줄게. 많이 사랑해 줄게. 사랑한다. 허경심. 우리 00이, 경심이 내가 많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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