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야 아이의 상처를 본다.

by 허경심



일요일 오전에는 늘 TV 프로그램 <동물농장>을 본다. 그중 문제 행동을 보이는 반려견을 전문가가 출동해 변화시키는 과정을 보여주는 코너를 가장 좋아한다.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반려견을 보면 내가 다 뿌듯하고 감동이 밀려온다. 오늘 본 동물농장에서는 목줄 메는 걸 격렬하게 거부하는 반려견 산들이가 나왔다. 목줄을 묶을 수 없어서 견주는 어쩔 수 없이 산들이를 놔두고 이사했다. 새로 온 집주인의 배려로 산들이는 이전 집에서 지낼 수 있었고 견주는 매일 산들이를 보러 9Km 거리를 오가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산들이가 처음부터 목줄을 거부한 건 아니라고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목줄 메는 걸 거부하기 시작했고 점점 더 반응의 강도가 심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강제로 목줄을 하려는 순간 견주가 얼굴을 물리는 사고까지 생겼다고. 대체 산들이는 왜 이렇게 목줄 하는 걸 싫어할까? 드디어 전문가가 등장했다. 어찌어찌해서 전문가가 산들이에게 목줄을 멘 순간 산들이는 그대로 뒤로 졸도했다. 금세 일어났지만 휘청 거렸고 온몸이 경직된 것 같았다. 전문가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얘는 목줄이 문제가 아니에요. 트라우마가 있어요.”

산들이가 쓰러진 것은 불안을 넘어 공포였고 일종의 공황발작이라고 했다. 세상에나. 개도 공황발작을 한다니! 자세한 사항은 나오지 않았지만 아마도 산들이는 누군가 올가미로 자신의 목을 묶어 안 좋았던 기억이 있을지도 몰랐다. 전문가가 내놓은 솔루션은 목줄 매는 건 둘째 문제고 산들이의 불안한 마음을 안정시켜 주라는 것이었다. 견주와 전문가는 산들이를 예전 집에서 데리고 나와 새로 이사 간 집으로 갔다. 산들이는 견주의 사랑이 얼마나 고팠던 걸까. 산들이는 견주 옆에서 아주 편안하게 잠들었다. 견주는 이리도 편안하게 잠든 산들이의 모습을 처음 본다고 했다. 전문가는 앞으로 산들이가 자다 눈을 뜨면 견주가 바로 옆에 있다는 걸 인식시켜주라고 했다. 그렇게 상처 받은 마음을, 불안한 마음을 보듬어 주라는 거였다. 일주일 뒤 전문가가 산들이에게 다시 찾아갔다. 견주에게 목줄 매는 걸 시도해 보라고 했다. 또다시 거부하며 으르렁 거리고 짖으려나? 아니었다. 산들이는 목줄을 거부하지 않고 얌전히 있었다. 주인과의 관계가 안정되고 돈독해지고 나니 문제행동이 사라진 것이다.

<동물농장>에서는 보통 감동적이고 슬픈 영상이 끝나고 나면 사회자들 또한 눈물을 짓고 있기 마련이었다. 산들이 영상이 끝나고 눈물짓고 있는 사회자들은 없었다. 사회자들이 모두 밝은 표정으로 박수를 치며 영상에 대해 코멘트하고 있을 때 나는 눈물이 솟구치고 있었다. 뜨거운 눈물 한줄기가 볼을 타고 내려오기도 전에 또 다른 눈물 줄기가 흘러나왔다. 내가 눈물이 끊이지 않던 이유는 산들이에게서 우리 아이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문제행동을 보였을 때 나는 겉으로 보이는 행동만 보며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 판단 내렸었다. 당시 아이가 친구들에게 보이는 공격성 때문에 몹시도 불안했다. 아이의 겉으로 보이는 그 문제행동은 사실은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 때문이었다. 강아지 산들이가 그랬듯 우리 아이의 문제행동 또한 엄마인 나와의 관계가 불안했기 때문에 나타났던 것이었다. 강아지도 주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불안감으로 그럴 진데 하물며 우리 아이는 오죽했을까.

수년 전 일이 떠올랐다. 외식 중 먼저 식사를 마친 아이가 식당 안 놀이방에서 놀고 있었다. 또 무슨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내심 불안했다. 아이가 잘 놀고 있나 가 보았을 때 아이 얼굴 한쪽이 새빨개져 있었다. 나는 자초지종을 물어보지도 않고 아이가 누군가와 싸우지 않았나 먼저 의심했다. 내가 어떤 말을 하기도 전에 아이는 반항적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아이는 내 눈빛을 보며 나의 마음을 알았으리라. 아이는 자신은 아무도 때리지 않았고 어떤 아이 머리에 부딪혀 얼굴을 다쳤다고 했다. 빨개진 정도를 보아 굉장히 아팠을 텐데 당시에는 나의 불안한 마음 때문에 아이의 아픔을 전혀 보지 못했다. 그저 아이가 다른 친구를 때리지 않아 다행이라고만 생각했더랬다.

아이의 문제행동이 커지면서 학교 담임선생님의 전화를 받은 날이었다. 잘 시간이 되어 아이가 옆에 누웠다. 나는 아이에게 느끼는 큰 실망감과 나 스스로 느끼는 불안감으로 괴로워 아이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이는 다 알았을 것이다. 엄마가 자신을 밀어내고 있었다는 것을.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전혀 알아주지 않는 엄마가 몹시도 미웠지만 한편으로 자신을 떠날까 봐 불안했을 것이다.

나의 상처 받은 내면아이를 치유하고 난 시점에서 <동물농장>의 산들이를 보니 당시에는 짐작 못 했던 우리 아이의 아픔이 너무나 생생히 느껴졌다. 겉으로 보이는 행동만 보며 아이를 나무라고 아이의 속마음을 몰라준 내가 너무나 야속했다. 힘들었을 우리 아이를 생각하니 또 가슴이 아팠다.

나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수년 전 우리 아이가 놀고 있던 놀이방으로 갔다. 얼굴 한쪽이 빨개진 아이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얼굴을 문질러주었고 꼭 안아 주었다. 그리고 쉽게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던 아이 옆으로 갔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봐 주었고, 가슴팍에 손을 가만히 얹어 아이가 잠들 때까지 토닥여 주었다.


<동물 농장>에서 강아지 산들이 이야기를 본 날, 내가 가슴 아파하는 그날들을 아마도 지금은 기억하지 못할 우리 아이를 오래도록 안아 주었다. 지금의 아이와 과거의 아이까지 함께 안아주었다. 미안해하며 가슴 아파하는 나 자신도 안아 주었다. 잘 커 준 아이가 너무도 고마웠다. 감사한 마음으로 충만해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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