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장면인데도 매번 눈물이 나던 이유

<사운드 오브 뮤직>, 즐거운 장면인데도 매번 눈물이 나던 이유

by 허경심

내면 아이 치유를 경험하면서 수년 전에 본 영화 <겟 아웃>만큼 내면아이를 이야기하기에 재격인 영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 받은 내면 아이는 ‘분노’와 ‘슬픔’으로 우리들의 의식으로 불쑥불쑥 올라온다. 이 두 가지 감정이 의식으로 올라오는 것이 <겟 아웃>의 명장면에 고스란히 연출되었다.


인종 차별을 이야기하는 영화 <겟 아웃>은 흑인인 주인공 크리스가 백인 여자 친구인 로즈의 집에서 겪은 기괴한 일을 다룬 영화다. 여자 친구의 집에서 뭔가 석연찮은 기운을 느낀 주인공 크리스는 그 기운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아내고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탈출한다. 그 실체란 여자 친구의 가족들이 행하는 엽기적인 수술이다. 그들은 신체가 건강한 흑인을 납치하거나 꾀어서 최면을 걸어 기절시킨다. 최면에 걸리면 그 사람의 의식은 깊은 침잠의 방에 갇히게 된다. 이때 다 죽어가는 백인 노인의 뇌를 꺼내서 최면에 걸린 젊고 건강한 흑인에게 심는다. 그러면 백인 노인은 새로운 몸을 얻어 건강하게 더 오래 살 수 있고 최면에 걸린 사람은 자신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남이 자신의 몸으로 살아가는 걸 침잠의 방에서 허우적대며 지켜보는 운명을 맞이한다.


분노

내면 아이의 감정 ‘분노’는 주인공 크리스가 흑인 로건을 핸드폰 카메라로 도촬 하는 장면에서 나온다. 여자 친구 로즈의 집에서 처음으로 본 젊은 흑인 남성 로건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몸짓과 말투를 가졌다. 이것을 의아하게 생각한 크리스가 친구에게 보내주려고 몰래 사진을 찍는데 의도치 않게 플래시가 터진다. 그러자 로건은 순간적으로 표정이 싹 바뀌고 코피가 주르륵 흐른다. 그리고 외친다.

“겟 아웃! 겟 아웃 오브 히어! 겟 아웃!”

이건 우리가 ‘욱’하는 반응과 비슷하다. 마치 카메라의 플래시가 터져 반응하듯 우리는 0.0001초 만에 아이에게, 가족에게 ‘욱’하고 화를 낸다. 그것은 감정을 억압받은 상처 받은 내면 아이가 반응하는 것일 확률이 높다.


내가 가장 ‘욱’했던 일 중 하나는 우리 아들이 물이나 음료수를 엎질렀을 때이다. 그럼 나는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소리를 지른다.

“조심하라고 했지!”

이 반응은 내가 그 어떤 판단을 내릴 틈도 없이 즉각적으로 나오는 반응이다. 나는 왜 이런 실수를 극도로 싫어할까. 그건 내가 그런 실수를 했을 때 우리 부모님의 반응에서 얻은 감정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수는 곧 화라는 감정과 이어진다는 게 나의 무의식에 입력되어 있을 것이다. 아마도 타임머신을 타고 어린 시절 내가 우리 아들과 비슷한 실수를 했을 때 영상을 찍어 본다면 지금 내가 우리 아들에게 하고 있는 상황과 같은 영상이지 않을까 싶다. 지금 ‘욱’하고 분노를 터트린 것이 아이가 한 실수에 준하는 강도의 분노인지 살펴볼 일이다. 혹시 내가 받은 과거의 상처가 자극된 건 아닌지 늘 인지하려 노력해야겠다. 그런 연습이 쌓일수록 우리의 ‘욱’은 조금 줄어든다.


슬픔

내면아이의 감정 ‘슬픔’이 의식으로 올라오는 것은 흑인 가정부 조지나가 주인공 크리스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볼 수 있다. 뭔가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크리스가 조지나에게 말한다.

“당신도 알다시피 백인들이 너무 많이 있으면 긴장되곤 하잖아요.”

이 말을 듣고 조지나는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흐르는 눈물과는 상관없이 밝게 웃으며 이야기한다.

“No, no, no, no, no, no, no, no, no, no,.....”

많은 관객들이 이 장면에서 조지나 역을 맡은 베티 가브리엘의 연기에 소름이 돋았을 것이다. 표정은 밝지만 눈빛은 슬프고 눈물까지 흘리는 명연기란!


그런데 가정부 조지나는 왜 눈물을 흘렸을까? 그것은 침잠의 방에 갇혀버린 진짜 조지나가 크리스의 말에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다. 너무나 두렵고 외로운 자신의 마음을 건드렸기 때문에. 그러나 백인의 차지가 된 표면적 자아, 가짜 조지나는 자신이 왜 눈물을 흘리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 안의 침잠의 방에 갇혀버린 진짜 조지나를 알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진짜 조지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침잠의 방에 갇힌 조지나가 바로 내면의 아이다.

나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며 가짜 조지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사운드 오브 뮤직>에는 아주 마음이 따뜻해지는 장면이 있다. 천둥 번개가 무섭게 내리치던 날 밤, 아이들은 무서워서 새로 온 가정교사 마리아 수녀의 방으로 하나 둘 들어온다. 어린 막내는 그렇다 치고 다 큰 아이들마저 겁먹고 들어올 때 관객은 웃음이 나온다. 일곱 아이들 모두가 마리아 수녀의 방에 모였다. 천둥 번개로 두려움에 떨던 아이들은 마리아 수녀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로 두려움을 물리친다. 그리고 마리아 수녀와 함께 노래하며 행복한 밤을 보낸다. 그 어디에도 슬픈 장면이 없건만 나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볼 때마다 이 장면에서 눈물을 흘린다. 그런데 왜 눈물이 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이 영화를 다섯 번째로 봤던 날이다. 아들이 물었다.

“엄마, 엄마가 나한테 저렇게 못해준 거 같아서 우는 거야?”

“아니, 그건 아마도 엄마의 어린 시절이랑 관련이 있을 거 같긴 한데... 그런데 엄마가 너한테 마리아 수녀님처럼 못 해준다고 생각해?”

“아니, 나는 엄마가 충분히 그렇게 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들의 말에 감동을 받아 또 눈물이 흘렀다. 그날 밤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내가 왜 슬프지도 않은 그 장면에서 매번 눈물이 났는지. 그건 바로 상처 받은 나의 내면 아이가 우는 것이었다. 조지나가 크리스의 말에 자극받아 눈물을 흘린 것처럼 말이다.

나도 저렇게 위로해줘. 저렇게 격려해주고, 안아 줘. 나 좀 안아 줘. 내면아이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실 나는 어린 시절 나의 부모로부터 그러한 피드백을 받아본 경험이 없다. 두려움과 슬픔, 화, 분노 등 부정적인 감정을 수용받아 본 경험이 전무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내가 나의 내면아이를 알아차렸을 때 한없이 눈물이 났다. 그 가엾은 아이가 혼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두려웠을까. 나는 그 아이를 안아주고 위로해주고 격려해 주었다. 아마도 다음번에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본다면 매번 울던 그 장면에서 이제는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이미 내면의 아이를 마리아 수녀가 일곱 아이들을 안아준 것처럼 안아주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내면의 아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걸 알아차리기 힘들다. 내면아이는 무의식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맥락이 크게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상황이나 분위기에서 슬퍼지거나 눈물이 흐른다면 그 지점을 잘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내면아이가 어두운 구석에 웅크리고 울고 있는지 모른다. 그 아이를 찾아내 안아줘야 한다. 그것이 바로 상처 받은 내면아이 치유다. 나를 사랑하는 길로 가는 문이다.



브런치에 연재한 글이 감사하게도 종이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제 글이 여러분께 공감과 위로를 주고

나아가 치유까지 이어지는 시간을 드리면 좋겠습니다:)


자세한 책 소개와 구매는 아래 링크를 눌러주세요:)

http://www.yes24.com/Product/Goods/102923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