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

by 허경심

도서관 신간 코너를 구경하다가 그림책 <7층>을 발견했다. 표지그림이 강렬했다. 어린이실이 아닌 문헌 정보실에 웬 그림책일까 궁금했다. 흑백의 색으로만 그린 단순하고 투박하고 명료한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어떤 내용인지 전혀 모르고 봤다가 적잖이 놀랐다. <7층>은 저자 오사 게렌발이 졸업 작품으로 쓴 작품으로 자신이 직접 겪은 데이트 폭력의 피해를 다룬 것이었다. 끔찍한 데이트 폭력의 현장을 작가 특유의 담담함으로 너무나 잘 담아냈다. <7층>은 2015 부천 국제 만화대상에서 해외작품상을 받은 작품이기도 했다. <7층>이 너무도 강렬했기에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그녀의 또 다른 작품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를 알게 되었다.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는 <7층>이 그랬듯 저자 오사 게렌발의 자전적 이야기를 그래픽 노블로 다룬 작품이다. 책을 다 읽고는 밀려오는 감동에 나도 모르게 책을 가슴에 끌어안았다. 오사 게렌발을 알게 되어 감사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잘 살고 있는 주인공 제니는 끊임없이 밀려오는 자멸감과 불안, 우울증으로 힘들어한다. 부모로부터 감정을 충분히 수용받지 못한 어린 시절부터 <7층>에서 다룬 데이트 폭력 경험과 현재까지 겪은 일들이 제니를 통해 담담히 이어진다. 제니는 끊임없이 무너지는 자신을 보며 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고 싶어 이런저런 병원을 전전하다 드디어 자신의 문제를 딱 꼬집어 말하는 치료사를 만난다. 제니는 자신이 평생 지고 살아온 모든 불안과 근심의 원흉이 바로 ‘정서적 방치’로 인한 것이란 걸 알게 된다. 제니는 자신의 문제를 알고 난 뒤 상처 받은 내면 아이를 치유한다.


이 책을 통해 ‘정서적 방치’를 처음 알았다. 어쩌면 나도 어린 시절 ‘정서적 방치’를 경험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서적 방치란 양육자가 아이의 정서적 욕구에 충분히 반응해주지 않는 것을 말한다. 아이가 기쁠 때 함께 기뻐해 주고, 슬플 때는 위로해주고, 힘들어할 때는 힘이 되어주는 등의 감정의 수용을 해주지 않는 것을 말한다. 정서적 방치는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기에 외부의 개입이나 도움을 받기 힘들다고 한다. 또 물리적인 학대보다 아이에게 악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방치하는 것이 노골적인 학대보다 더 해로울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많다고 한다.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에 내가 공감 가는 부분이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주인공 제니가 타인들이 생각하는 부모님상과 자신이 생각하는 부모님상이 너무 달라 어리둥절해하는 부분이다. 어린이 건강 검진센터에 갔을 때 의사가 별 문제없냐는 질문에 제니는 밤에 아이가 깨서 잠을 충분히 못 자는 게 힘들다고 말한다. 그러자 의사가 말한다.

“부모님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해보지 그래요? 낮에 오셔서 아기 데리고 산책이라도 나가주면 그 시간에 좀 잘 수 있지 않겠어요?”

제니는 부모님에게 도움을 요청하라는 의사의 말에 자신이 잘못 들었나 귀를 의심한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친구들을 만난 자리에서 아이를 주말 동안 부모님이 봐주기로 해서 기쁘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는 어떻게 그렇게 끔찍한 소리를 할 수 있는 걸까 하고 놀란다. 제니에게는 부모님이 아이를 돌본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엄마를 생각하며 눈물짓는 친구를 보며 뺨을 한 대 갈겨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부분을 읽으면서 공감하고 있는 내가 잘못된 걸까? 완전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사실 살아가면서 나도 이런 경험을 했었다. 이러이러하니까 엄마에게 이러이러하게 부탁하지 그래?라는 지인들의 조언에 나는 그저 웃음으로 때울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많았다.


우리 엄마는 보통의 엄마들과는 다르다는 걸 뱃속에 아이를 갖고부터 알게 되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반대였다. 더욱 서운하고 화가 났다. 엄마에게 어리광 부리고 엄마라면 무조건 좋던 나는 안 보이던 것이 보이면서, 느껴지면서 엄마와 다투는 일이 잦아졌고 엄마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엄마와 관련한 이야기를 할 때 공감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내가 아는 지인들은 지극히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엄마를 그린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울었다고 했지만 나는 눈물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이야기를 ‘이해’는 할지언정 ‘공감’은 되지 않았다.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에서 내가 두 번째로 공감했던 부분은 친구와 숲에서 놀다가 뱀을 만난 날의 이야기다. 제니의 친구 사라는 뱀을 보고 너무 놀라 집으로 달려간다. 반면 제니는 전혀 놀라지 않는다. 제니가 사라를 뒤따라 달려가 보니 사라가 엄마 품에 안겨 엉엉 울고 있다.

“엄마아! 엄마아! 으앙! 뱀이 나왔어!”

“저런, 이리 온, 우리 아가!”

제니는 그런 모녀의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사라는 엄마 품에 꼭 달라붙었고 사라의 엄마는 사라가 두려움이 가실 때까지 실컷 울도록 가만히 안아주었다. 제니는 이런 식으로 대처하는 부모가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이 부분을 읽는데 굉장히 비슷한 느낌의 나의 경험이 떠올랐다. 명절 때였다. 내가 작은 엄마와 설거지를 하고 있었는데 친척동생이 와서 작은엄마에게 응석을 부리며 말했다.

“엄마~ 00이가 나를 보더니 울어. 속상해~”

이제 갓 돌이 지난 조카가 예뻐서 안아주려고 했는데 낯가리는 조카가 울자 속상해서 하는 말이었다. 작은 엄마가 친척 동생 엉덩이를 토닥이며 말했다.

“어이구~ 우리 딸내미가 얼마나 아기를 잘 보는데. 00이가 그걸 몰라주네.”

모녀가 저런 식의 상호작용을 할 수도 있구나. 나는 작은 엄마와 친척동생의 모습을 보며 묘한 기분을 느꼈다. 굉장히 낯설었고 한편으로 부럽기도 했다. 나는 살면서 한 번도 엄마에게 저런 식의 응석을 부려본 적이 없었고 엄마가 저런 식으로 나를 보듬어 준 적도 없었다는 걸 그날 깨달았다.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를 읽고 내가 책을 가슴에 끌어안은 이유는 책 후반부에서 준 커다란 감동 때문이었다. 성인이 된 제니는 자신이 가장 힘들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어린 제니는 차 안에서 대체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지 말 좀 해달라며 엉엉 울고 있다. 이런 제니를 보고도 부모는 아무 반응이 없다. 성인 제니는 어린 제니를 그 차 안에서 가까스로 데리고 나온다. 그리고 꼭 안아준다.

“엄마 아빠 일은 그만 다 잊자. 이제부터는 너와 나 둘 뿐이야.”

어린 제니는 성인이 된 제니의 일부인 것처럼 성인 제니에게 꼭 매달린다. 제니는 어린 제니를 꼭 안고 들판과 숲을 헤치고 나아간다. 마을과 도시를 뚫고 지나갈 때 또 다른 누군가의 손을 잡아 데려간다. 이건 누구지? 하는 의문도 잠시 다음 장면에 여러 명의 어린 제니를 데려가는 성인 제니가 보인다.

‘집, 학교, 주방 식탁, 아파트, 침대, 병원, 폭력, 상처, 그리고 고독을 함께 거쳐 갔다. 그렇게 지나는 길에 있던 제니를 모두 데려왔다.’

성인 제니는 그간 상처 받았던 내면의 아이 어린 제니를 모두 끌어안은 것이다. 처음 ‘내면 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어렴풋이 다섯 살 정도 되는 아이 딱 한 명을 상상했었다. 그러나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를 읽고 난 뒤 내면의 아이는 단 한 명이 아니라 수십 명일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지금 시점으로부터 과거에 상처 받았던 나는 모두 상처 받은 내면 아이인 것이다. 어제 상처 받은 나 또한 내면 아이고 그 상처 받은 내면 아이는 오늘의 내가 안아주면 되는 것이다. 엄마, 아빠가 싸울 때 불안해하고 있던 나, 엄마에게 맞고 슬퍼하던 나, 유치원 선생님에게 상처 받은 나, 친구에게 상처 받은 나, 옛 애인에게 상처 받은 나, 직장 상사에게 상처 받은 나, 신랑에게 상처 받은 나. 이 모든 나를 지금의 내가 안아주면 되는 것이다. 이것을 저자 오사 게렌발은 이렇게 표현했다.

‘여럿의 제니가 이제 모두 나와 함께 있다. 모두가 우리이고 우리가 바로 나다. 나는 나다.’

책의 마지막 장에는 여럿의 제니가 숲 속에서 평온한 표정으로 쉬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쓰여 있다.

‘이제 내가 원하는 건 오직 휴식뿐이다.’


상처 받은 내면 아이로 힘든 이들에게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를 선물하고 싶다. 왜 책 제목이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인지를 알게 되는 순간의 가슴 아림을 함께 나누고 싶다. 상처 투성이었던 우리도 이제는 휴식을 취하면 좋겠다.

상처 받은 내면 아이로 힘든 삶을 살고 있는가? 이제는 그 내면 아이에게 가서 내가 위로해주고 안아주자. 나의 엄마가 해줄 거라고, 나의 신랑이 해줄 거라고, 나의 자식이 해줄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내 안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할 사람은 오직 나 자신이다.




브런치에 연재한 글이 감사하게도 종이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제 글이 여러분께 공감과 위로를 주고

나아가 치유까지 이어지는 시간을 드리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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