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무얼 하고 놀아줘야 하는지 몰랐다. 아이가 징징거리거나 떼쓸 때 가장 곤욕스러웠다. 나에게 그나마 쉬웠던 건 그림책 읽어주기였다. 아이는 책을 읽어줄 때만큼은 징징거리지 않았고 반짝이는 눈으로 집중했다. 아이 스스로 책을 읽기까지 수 천 권이 넘게 읽어주었던 것 같다. 아이가 네 살 때 내가 직장에 나가기 시작했다. 아이는 출근하는 나를 보며 엄마는 자신보다 직장을 더 좋아한다며 엉엉 울었다. 아이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 줄까 하다가 그림책처럼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주었다. 엄마가 직장에 나갈 때마다 마음 아파하던 아이가 어떤 판타지 인물을 만나 날아다니면서 아빠와 엄마가 일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이야기였다. 개연성 따위는 안 맞았지만 이야기를 듣고 아이가 말했다.
“나랑 똑같은 아이가 있네?”
아이는 내가 만든 이야기를 듣고 엄마가 자신보다 직장이 좋아서 일을 나가는 게 아니라는 걸 받아들인 것 같았다. 그때부터였다. 문득 나도 아이들을 위한 글을 쓰고 싶어 졌다. 검색을 하다가 ‘어린이책 작가교실’을 알게 되었다. 그곳에서 동화 쓰기 6개월 과정을 마치고 2년 여간 습작기를 가졌다. 운 좋게 두 번째 쓴 작품이 샘터상 동화 부문 가작으로 뽑히기도 했다. 그런데 동화를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의 어린 시절을 자주 떠올리게 되었다. 그중 떠올릴 때마다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기억이 있었다.
내가 다섯 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아빠 엄마는 직장에 나가시고 언니 오빠는 학교에 가고 나는 자주 집에 혼자 남겨졌다. 내가 ‘우리 집에는 매일 나 홀로 있었지.’로 시작하는 자이언티의 노래 ‘양화대교’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어린아이가 아무것도 모를 것 같지만 어른과 똑같이 온갖 감정을 느낀다. 나는 그때 매일 고독과 외로움을 느꼈다. 엄마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끝끝내 참을 수 없을 때 두 손 모아 기도했다.
“엄마가 빨리 오게 해 주세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가 기도를 끝내고 얼마 안 있어 언제나 엄마가 집에 돌아왔다. 이런 나의 어린 시절을 접목해 동화 ‘골목길’을 썼다. 엄마를 일찍 여위고 아빠와 단 둘이 살던 12살 난 주인공이 끝이 없이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을 나오자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의 현장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잊고 있던 엄마의 기억을 떠올리고 억압되었던 감정 ‘슬픔’을 마주하며 치유하는 이야기다. 당시 이 이야기를 쓰고 나는 실제 치유를 경험했다. 다섯 살 무렵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기도하던 날들을 떠올릴 때마다 그때의 고독과 외로움이 밀려와 가슴이 무겁고 아렸던 나는 이제 더 이상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그때 생각을 하면 ‘그래. 그때 그랬지.’ 정도로 끝날뿐이다. 참 신기했다. 글쓰기의 치유능력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수년이 지난 지금 그 치유는 바로 ‘상처 받은 내면 아이 치유’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부 싸움하고 시댁으로 도망 가 어머님께 ‘너도 소중 하단다’라는 말을 듣고 오열했던 것 또한 내면 아이 치유였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안에 크게 자리 잡고 있던 상처 받은 내면 아이를 하나하나 치유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던 것이다.
내면 아이란 우리의 정신 속에서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처럼 존재하는 아이의 모습이다. 사람은 누구나 보편적인 발달과정이 있다. 예를 들어 돌 즈음에는 낯가림이 생기고, 18~ 36개월에는 뭐든 자신 스스로 하려는 제1 반항기가 온다. 미운 네 살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 말이다.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는 사춘기도 온다. 이러한 각 발달단계에서 충족되어야 할 의존적인 욕구들이 충분히 채워지지 못하고 어른이 되면 미처 자라지 못한 내면 아이가 계속해서 그 사람을 미성숙하게 만들고 삶을 지배하며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그 욕구 충족은 대부분 주 양육자 부모에게서 받았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어린 시절 부모에게 충분한 인정과 칭찬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면 성인이 되어서 타인의 칭찬과 인정에 집착할 수 있다. 또한 충족되지 못한 욕구를 채우려다가 중독과 강박에 빠질 가능성도 높다. 존 브래드쇼는 <상처 받은 내면 아이 치유>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인간관계에서의 성공과 실패는 어린 시절의 각 단계들을 우리가 얼마나 잘 거쳤는가에 달려 있다.’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가 한 사람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어느 날 물건 정리를 하다가 내가 대학교 시절에 쓰던 다이어리를 발견했다. 거기엔 이런 내용이 꽤 많았다. 미칠 거 같다, 나는 왜 이런 기분을 느끼지?, 왜 이렇게 우울하지?, 어른이 되어도 죽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질 않는다. 등등.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어서까지 나는 늘 감정적인 부분 때문에 힘들었다. 이런 나의 감정적으로 취약한 부분은 아이를 키우며 활개를 쳤다. 육아서적 수십 권을 읽고 실천해 보아도 심리 관련 서적을 읽고 마음을 안정시키려 노력해보아도 그때뿐이었다. 결국 또 나는 감정적으로 힘들어졌다. 그런데 상처 받은 내면 아이를 치유하고부터 나의 감정적인 부분들이 굉장히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가 해 온 노력은 깊이 곪은 상처에 겉으로 보이는 부분에만 약을 바른 거나 다름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 안에 깊이 자리하고 있던 상처 받은 내면 아이는 그대로였기 때문에 책을 읽고 실천해보고 양육태도를 바꿔보아도 결국 다시 힘들어졌던 것이다. 곪은 상처는 깊이에 있는 고름을 다 짜내어야 치료가 되고 새살이 돋는다. 내가 감정적으로 크게 힘들지 않게 살아가려면 깊이 곪은 상처, 즉 상처 받은 내면 아이를 치유해야 했다.
누구에게나 내면 아이가 있다. 눈을 감고 생각해보자.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 특히 마음이 아픈 장면이 있는가? 그때로 돌아가 내가 느낀 감정을 그대로 느껴보자. 그리고 글을 써보자. 내가 동화 ‘골목길’을 썼던 것처럼 이야기를 만들어 써도 좋고, 그 아이에게 편지를 써도 좋고, 내가 느낀 감정을 있는 그대로 써도 좋다. 글쓰기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글을 잘 쓰는 건 중요하지 않다. 개연성, 맥락, 맞춤법 다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에 집중해서 글로 쏟아내 보자. 내 안에서 웅크리고 울고 있는 과거의 아이를 만나자.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안아주고 위로해주자. 그것이 바로 상처 받은 내면 아이 치유다.
나의 졸작 동화 ‘골목길’을 탑재한다. 수정본보다 초고에 내면 아이 치유 기운이 더 많이 느껴져 수정 없이 그대로 싣는다.
골목길
말이 무척이나 없는 여자아이가 있어. 이름은 김소진. 소진이가 다섯 살 때 엄마는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어. 소진이는 그날 이후로 아빠와 단 둘이 살게 되었지. 그 충격으로 소진이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었어. 겨우 다섯 살짜리가 꼭 어른처럼 말을 잘해 주변 사람들이 혀를 내둘렀던 아이가 말이야.
그 아이가 커가면서 아이를 일컫는 말이 생겼어. 말없는 아이, 땅만 처다 보고 다니는 아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아이.
이렇게 말도 없고 조용한 탓에 소진이에게는 친구 하나 없었어. 소진이가 삼 학년으로 올라갈 즈음 살고 있던 아파트가 재건축을 하게 되었어. 그래서 옆 동네에 있는 주택가로 이사를 가게 되었지. 아파트를 새로 짓는 공사가 쉴 새 없이 이어졌어. 그러는 와중에 새로 이사 간 집에서 학교 가는 길에 아주 좁은 골목길이 생겼어. 그 골목길을 지나지 않으면 한참을 돌아가야만 학교를 갈 수 있었지. 그 주택가에 사는 아이들은 대부분 소망초등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골목길엔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았어. 소진이는 조금 무서웠어. 골목이 좁은 데다가 일단 들어서면 골목 폭밖에 안 되는 하늘 말고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으니까. 판으로 새워져 있는 벽 안쪽에서 공사하는 소리가 들리곤 했어. 가끔 뭐가 떨어지는지 큰 소리가 날 때면 소진이는 깜짝 놀라 심장이 쿵쿵 거리기도 했지. 그래서 소진이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다른 길로 학교에 가기 시작했어. 그 대신 아침에 이불속에 더 누워 있고 싶은 마음을 이불을 개듯 접어야 했지.
봄방학을 한 날이었어. 위층에 새로운 이웃이 이사를 왔단다. 소진이가 현관문을 살짝 열고 보는데 보람이가 계단으로 올라오고 있었어. 보람이는 소진이를 보자마자 얘기했어.
“안녕? 난 보람이라고 해. 너는?”
소진이는 보람이랑 눈도 못 마주친 채 속삭이듯 말했어.
“김소진”
“난 이제 3학년 올라가. 무궁초등학교 다니는데, 너는?”
보람이가 명랑하게 물었어.
“나도 무궁초등학교. 3학년 올라가.”
“그래? 그런데 왜 너를 한 번도 못 봤지? 아무튼 우리 친하게 지내자.”
소진이는 처음 보는 아이가 자신에게 친하게 지내자고 해서 무척 당황스러웠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지. 뒤따라오던 보람이네 엄마가 말했어.
“어머~ 잘 됐네. 우리 보람이랑 둘이 학교도 같이 가면 좋겠다.”
개학 첫날이야. 보람이와 소진이는 함께 학교로 걸어갔어.
“소진아, 어디가? 이리로 가야지.”
보람이가 골목길로 안 오고 돌아가려는 소진이에게 소리쳤지. 소진이는 조금 망설이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어. 보람이와 함께 걸어가면 골목길이 조금 덜 무서울 거 같았거든.
골목길에 들어서자 보람이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 보람이 노랫소리를 들어며 걸어가니 소진이는 훨씬 덜 무서웠지. 같이 따라 부르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어.
그 날 오후에 보람이네 엄마가 소진이를 초대했어. 아빠는 회사에서 야근을 해야 하는 날이었지.
저녁을 먹고 보람이 방으로 갔어. 소진이는 같은 또래 친구와 단 둘이 방에 있는 게 처음이었어. 어찌나 어색하고 마음이 불편한지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있었단다.
“소진아, 우리 화장품 놀이하자.”
보람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책상 서랍 깊숙이에서 로션 통 몇 개를 꺼내 왔어. 보람이네 엄마가 화장품 살 때 덤으로 받아온 조그마한 로션들인 것 같았지. 소진이는 보람이가 시키는 대로 침대 위에 누웠어.
보람이는 로션 뚜껑을 열고 손바닥에 탁탁 쏟아 냈어. 그러더니 소진이 얼굴에 묻혀 손바닥으로 빙글빙글 문질렀지. 소진이는 얼굴이 찌푸려졌어. 도대체 보람이가 무얼 하는 건지, 이 놀이가 재미있는 건지,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건지도 몰랐지. 그저 가만히 누워 있는데 로션 향기가 정말 좋은 거야. 그 향기를 맡고 있자니 무언가 생각이 날 듯 말듯했어. 결국 그 무언가는 생각나지 않았지만 소진이는 마음이 편안해졌어. 보람이와 노는 게 어색하지도 않았지. 그날부터 소진이와 보람이는 단짝 친구가 되었단다.
소진이는 보람이와 친해지면서 땅만 보고 다니는 아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아이라는 말은 안 듣게 되었어. 하지만 보람이 말고 다른 아이들 하고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어. 어른이나 낯선 사람과는 더욱 그랬지. 소진이가 오 학년이 되었을 때 보람이는 다시 이사를 갔어. 새로 지어진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된 거야. 하지만 그 좁은 골목길은 아직 육 개월은 더 있어야 큰길로 뚫린다고 했지. 그래서 소진이는 다시 아침 일찍 일어나기 시작했어. 한참을 돌아 학교로 가고, 한참을 돌아 집으로 돌아왔어.
땅속에서 잠자던 새싹들이 이제 막 올라오고 있는 따뜻한 봄날이었지. 보람이는 소진이에게 항상 얘기했어. 일요일에 같이 성당에 나가자고. 그런데 소진이는 이날 늦잠을 자버렸어. 시계를 보니 보람이와 약속한 시간이 삼십 분밖에 남아있지 않았지. 세수를 하고 이를 닦고 옷을 입으니 벌써 십오 분이 지나버렸단다. 소진이는 헐레벌떡 밖으로 나왔어. 골목길로 가지 않으면 약속시간에 늦을 게 뻔했지. 소진이는 누구보다 따뜻하게 자기를 대해주는 보람이와의 약속에 늦기가 싫었어. 그래서 용기를 내어 골목길로 가기로 결심했단다. 몇 년째 그대로인 골목길은 여전했어. 양쪽으로 막혀있는 벽 말고는 골목길 폭 만큼의 하늘밖에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 소진이는 점점 가슴이 뛰었어. 이래저래 무서운 생각이 마구 떠올랐지. 그때 전에 보람이가 노래를 부르며 걸었던 기억이 났단다. 소진이는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어. 그런데 뭔가 이상했어. 노래를 두 번 정도 부르면 골목의 끝이 보였는데 오늘은 그렇지가 않은 거야. 벌써 노래를 세 번이나 불렀는데도 골목길은 계속되고 있었지. 소진이는 가슴이 터질 거 같았어. 심장소리가 어찌나 큰지 골목길 안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것 같았어. 소진이는 있는 힘껏 달렸어. 그러면서 자기도 모르게 외쳤지.
“엄마!”
그러자 골목길이 끝나고 어느 낡은 집 앞에 다다랐어. 그 집 앞에서 어린 꼬마 아이가 막대기로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놀고 있었지. 소진이는 가뿐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어. 전에는 못 보던 건물들에 어리둥절해졌단다. 그러고선 다시 그 꼬마 아이에게 눈길이 갔어. 눈이 동그랗고 커다란 아이는 막대기를 내려놓더니 두 손을 모았어. 그리고 지그시 눈을 감았지.
“하느님, 엄마가 빨리 오게 해 주세요.”
어린 꼬마 아이 답지 않게 발음이 정확했어.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그 아이의 엄마가 왔단다. 꼬마 아이는 세상을 다 얻은 냥 엄마에게로 두 팔 벌려 달려갔어. 엄마는 아이를 안고 그 낡은 집으로 들어갔지. 그때 소진이는 갑자기 모든 게 떠올랐단다. 어린 시절 항상 엄마와 함께 기도를 하러 어딘가 갔던 기억, 낮 동안 혼자서 놀다가 엄마가 올 때쯤에 맞춰 엄마가 생각났는지도 모르지만 정말 신기하게도 기도를 하고 나면 엄마가 돌아왔던 기억, 이 낡은 집에 살았던 기억까지 모두 말이야. 엄마가 돌아가신 날 그날엔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았지. 기도를 아무리 해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어. 그때 소진이는 아빠가 돌아올 때까지 하염없이 울었던 기억도 났어. 그러자 소진이의 눈가가 뜨거워졌어.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려와 목까지 줄줄 내려왔어. 그리고 어깨가 들썩 거려졌어. 입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어. 이제 소진이는 아주 어린아이처럼 울었어. ‘엄마~ 엄마~’하면서 말이야. 소진이는 늘 가슴에 단단한 기둥을 가지고 있는 느낌이 있었어. 너무 오래된 느낌이라 누구나 다 그런 거라 생각했었지. 그런데 울면 울수록 그 기둥이 흐물흐물해지는 느낌이 들었어. 그러더니 기둥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까지 들었어. 태어나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에 소진이는 어찌할 바를 몰랐어. 그때 꼬마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어.
“언니, 왜 울어? 언니도 엄마 보고 싶어?”
꼬마가 소진이를 보며 또박또박 얘기했어. 소진이는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꼬마의 눈을 바라봤어.
“자, 이거. 엄마 냄새나. 그래도 보고 싶으면 엄마 빨리 오게 해달라고 기도해.”
소진이는 꼬마가 주는 걸 받아 들었어. 소진이는 고개를 숙여 자기 손위에 올려진 작은 로션 통을 봤어.
“김소진, 여기 쭈그려 앉아 뭐 하는 거야?”
보람이 목소리였어. 소진이는 훌쩍이며 주위를 둘러봤지. 꼬마 아이는 사라지고 없었어. 낡은 집도, 아이가 땅 위에 그린 그림도.
“어머, 야, 너 설마 골목길 무서워서 운 거야?”
소진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 보람이와 걸어가면서 자꾸 뒤를 돌아봤지. 로션 통을 손에 꼭 쥔 채로. 골목길 앞에는 나무들뿐이었어. 이제 막 여린 연둣빛 새싹이 올라오고 있는 나무들 말이야.
브런치에 연재한 글이 감사하게도 종이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제 글이 여러분께 공감과 위로를 주고
나아가 치유까지 이어지는 시간을 드리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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