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왕따를 당했을 때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이유

by 허경심

아이가 일학년 때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학교 가기 싫다는 아이를 나무라고 힐책했다. 뒤늦게 아이가 학교에서 놀림을 당하고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는 걸 알게 된 뒤 나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어린 시절 나의 마음을 너무도 몰라주던 엄마처럼은 절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했건만 결국 나도 우리 아이에게 똑같은 엄마가 되어있었다는 사실이 죽도록 괴로웠다.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싶었지만 시댁 살이 중에 그럴 수가 없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숨죽여 울었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자괴감에 몸부림치며 타일 벽에 나의 이마를 쿵쿵 박았다. 그런데 하나도 아프지가 않았다. 사람이 죽을 만큼 괴로울 때 감각마저 무감각해진다는 걸 그때 알았다. 나는 절망하며 차가운 타일 바닥에 웅크리고 누워 울고 또 울었다. 나의 감정은 더욱 격정적으로 치달았고 자괴감은 자기혐오로 바뀌었다. 그러자 욕지기가 났다.


나는 대체 그때 왜 그렇게까지 무너졌을까? 당시에는 그저 ‘우리 엄마처럼은 되지 말아야지.’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노력했는데 ‘결국 나도 똑같은 엄마가 되었구나.’라는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너무 커서 그랬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면아이에 대해 알아가면서 거기에는 상처 받은 내면아이가 자리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육아를 하며 아이는 끊임없이 부모의 내면아이를 자극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보편적인 발달 과정을 거치기에 각 발달과정에서 나오는 아이의 행동과 감정은 부모를 자극할 수 있다. 신생아 때는 말을 하지 못 하므로 자신의 의사를 울음으로 표현한다. 양육자는 아이가 배가 고프면 젖을 주고 놀랐다면 안아서 얼러주는 등의 적정한 반응을 해 주어야 한다. 신생아 때 울어도 적정한 반응을 얻지 못하고 방치되는 일이 많았다면 내 아이의 울음소리가 굉장히 힘들 수 있다. 나도 모르게 그때의 감정이 자극되기 때문이다. 미운 네 살이라고 하는 시기에 아이들은 뭐든지 스스로 하려고 든다. 그러한 욕구를 제지받고 나아가 꾸지람까지 받고 자란 사람이라면 내 아이가 그 시기에 하는 반응으로 내면아이를 자극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에 스스로 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가 수용해주지 않고 오히려 ‘욱’하고 반응했다면 자신도 그런 아이에게 똑같이 ‘욱’으로 반응할 수 있다. 부모의 ‘욱’하는 반응으로 혹은 욕구가 충족되지 못한 것으로 인해 당시 자신이 느꼈던 감정이 ‘분노’로 올라오는 것이다. 그것은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의 무의식에서 나오는 반응이다.


상처 받은 내면 아이의 반응은 ‘분노’로 표출되기도 하고, ‘슬픔’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아이가 왕따를 당했을 때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던 이유는 바로 나의 상처 받은 내면아이가 자극을 받아 깊은 ‘슬픔’으로 표출되었기 때문이었다. 아이와 비슷한 나이였던 나의 유치원 시절에 받았던 내 상처가 마치 예리한 송곳으로 가슴을 찌르듯이 자극되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 수줍음 많고 겁 많던 나는 낯선 사람이나 상황에 적응하기가 힘든 아이였다. 그런 내가 짧은 기간 동안에 유치원을 옮기게 되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한참 뒤에 들어가게 된 첫 유치원에서는 이미 서로 친해진 아이들 사이에서 소외감만 느꼈었다. 첫 유치원에 적응을 하기도 전에 이사로 인해 다른 유치원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소외감에 더해 같은 반 아이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아이는 참 영악한 아이였다. 학예회 꼭두각시 공연을 준비한 날 엄마가 내 얼굴에 빨간 립스틱으로 연지곤지를 그려주었다. 그 아이는 그 모습이 부러웠던지 공연 시작 전에 나에게 심술을 부렸다. 내 얼굴에 연지곤지가 예쁘다는 핑계로 내 볼을 만졌는데 빡빡 문지르며 연지곤지를 지웠다. 거울을 보지 못했지만 아마도 연지곤지가 번져 엉망이 되었을 것이다. 그 날 엄마에게 가서 그 이야기를 하자 엄마는 피식 웃었던 것 같다. 나는 너무 속상하고 슬프고 화가 나서 이야기한 건데 엄마가 느끼기엔 별일도 아니고 어린아이가 그랬다는 게 우습기도 했나 보다. 생각해보니 내가 우리 아이가 친구들이 코딱지라고 놀린다고 이야기했을 때와 정말 소름 끼치도록 똑같은 반응이었다.

그 영악한 아이의 괴롭힘은 그날 이후로 점점 심해졌고 급기야 매일 나는 그 아이에게 머리채를 잡혔다. 그리고 매일 울었다. 그때마다 유치원 선생님이 말렸지만 같은 일은 계속 반복되었다. 심지어 어느 날엔 선생님도 지겨웠던지 절규하며 도와달라는 나의 눈빛을 외면했다. 그때 나는 절망을 배웠는지도 모르겠다. 내 주위엔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어른은 없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엄마에게 말해보았자 소용없을 거라 생각했고, 선생님은 나를 지켜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지옥 같은 유치원 생활은 초등학교에 들어가며 끝났다.


아이가 왕따를 당하고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날, 화장실에서 머리를 쿵쿵 박던 날, 내가 혐오스러워 욕지기가 나던 날. 그날의 몸부림은 다름 아닌 나의 상처 받은 내면 아이의 몸부림이었다. 아, 내가 그래서 그랬구나! 그것을 깨닫고 나니 내 삶에 흐트러졌던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았다. 그러자 유치원 시절 또 하나의 사건이 생각났다.


매일 똑같은 간식에 질려버린 나는 선생님 몰래 먹다 만 빵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걸 본 같은 반 남자아이가 선생님에게 고자질했고, 선생님은 불같이 화를 내며 나에게 쓰레기통에 버린 빵을 다시 주워 먹으라고 했다. 선생님은 엄포가 아니었고 진심이었다. 끝끝내 내가 쓰레기통에 버린 빵을 다시 먹게 했다. 나는 엉엉 울며 쓰레기통에서 빵을 꺼내 억지로 먹었다. 아이들은 옆에서 더러운 걸 먹는다며 나를 놀렸다. 내가 초코빵을 그렇게도 싫어하던 이유를 알았다. 그리고 내가 왜 그토록 아이 학교 방문이 꺼려졌던지 그 이유도 알았다. 사실 학교에 방문해야 할 때마다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왔었다. 엄마라면 당당히 학교에 찾아가 우리 아이에게 생긴 문제를 선생님과 이야기하고 해결해 나가야 하건만 나는 그럴 자신이 없었다. 이런 나에게 “엄마가 자식을 위해 못 할 일이 뭐 있니.”라는 어머님의 말이 너무도 부담스럽게 다가와 숨이 턱턱 막히던 내가 왜 그랬는지 알았다. 그것은 유치원 시절 너무나 싫고 무서웠던 선생님과의 만남을 나의 상처 받은 내면아이가 거부하고 있던 거였다.


내 삶의 흔적들을 하나하나 돌이켜보며 퍼즐이 맞춰지는 순간 나는 죄책감에서 한층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엄마가 되어서 내 아이도 지켜주지 못하는 어리석은 엄마가 아닌, 아이의 아픔은 바라볼 줄 모르고 미친 사람처럼 벽에 머리를 쿵쿵 박고 욕지기를 하는 한심한 엄마가 아닌 너무나 깊이 상처 받아 힘들어하는 하나의 아이로 받아들여졌다. 그러자 눈물이 솟구쳤다. 그리고 화장실 바닥에 누워 울던 나 자신에게 연민을 느꼈다.

얼마나 힘들었니. 폭풍처럼 소용돌이치는 감정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얼마나 힘들었니. 그때 너는 아무것도 몰랐지. 네가 대체 왜 그렇게 바보같이 느껴지는지 한심하게 느껴지는지 전혀 몰랐지. 그저 모든 게 너의 탓이라고. 다 너의 잘못이라고만 생각하며 얼마나 괴로웠니. 그 차가운 바닥에 누워 얼마나 외로웠니.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픔을 못 느꼈던 나의 이마를 어루만져 주며 나는 한참을 울었다.


내가 나의 아픔을 어루만져주자 당시 힘들었을 우리 아이가 온전히 느껴졌다. 지인을 통해 자책은 아이가 아닌 나에게 초점을 맞춘 이기적인 감정이라고 깨달은 뒤 느낀 아이의 아픔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제야 비로소 언제나 내 앞을 가리던 안개를 걷어낸 느낌이었다. 모든 게 전보다 또렷이 보였다. 내면아이 치유는 그야말로 성장이고 사랑이라는 걸 느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자연스럽게 아이를 통해 내면아이를 자극받는다. 그러므로 부모는 치유하고 성장할 기회가 많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유난히 상처 받고 힘들다면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자. 내면아이 치유는 수십 년이 걸리기도 한다고 한다. 치유하면 성장하고 이제 더 이상 치유할 내면아이가 없을 것 같은데 또 어딘가 웅크리고 있는 내면아이를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나도 계속해서 그 과정들을 거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놀라운 경험을 꼭 하면 좋겠다. 더 이상 외로운 채로 내면 아이를 내버려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브런치에 연재한 글이 감사하게도 종이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제 글이 여러분께 공감과 위로를 주고

나아가 치유까지 이어지는 시간을 드리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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