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아이 치유, 이 놀라운 치유 경험을 공유하고 싶었다. 지인을 만날 때마다 나의 대화 주제는 온통 내면아이였다. 나의 치유 경험을 이야기하자 지인이 물었다.
“그런데 나한테 내면아이가 있는 걸 어떻게 알아?”
나에게는 너무나 놀랍고 신선한 질문이었다. 어떻게 상처 받은 내면아이가 있다는 걸 모를 수가 있을까? 나는 내가 그랬듯 누구나 자신의 내면아이를 알아차릴 수 있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사실 나는 확연히 상처가 생길만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리고 평소 감정 문제로 마음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알게 되었던 것이었다. 지인처럼 평범한 집안에서 감정적으로 큰 문제없이 자란 사람은 모를 수도 있다는 걸 미처 몰랐다. 알아보니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면아이를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한다. 나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내면아이를 알아차릴 수 있었기에 내면아이를 만나는 방법 따위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알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인 질문에 답해보려고 생각해보다가 ‘초감정’이 떠올랐다.
초감정은 세계적인 가족치료 전문가 존 가트맨이 1996년 처음으로 정의 내린 개념이다. 초감정(Meta-Emotion)이란 감정 뒤에 있는 감정, 감정을 넘어선 감정, 감정에 대한 생각, 태도, 관점, 가치관등을 말한다. 초감정은 감정이 형성되는 유아기의 경험에서부터 형성된다. 이것은 무의식적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자신이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날 내가 술에 취한 신랑의 모습에 늘 격정적으로 화가 난 이유가 나의 초감정 때문이란 것을 알았다. 나는 신랑의 술 취한 모습을 보며 어린 시절 술 취한 나의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느꼈던 감정이 올라왔던 것이다. 그것은 나도 모르게 발현되는 것이기 때문에 즉각적이고 폭발적이었다. 나는 지인에게 말했다.
“그 초감정이 느껴지는 찰나를 잘 생각해 봐. 너도 모르게 ‘욱’하고 분노가 올라오는 그 시점을 잘 생각해보면 그 안에 어떤 사건이 있을 수 있고 거기에 너의 상처 받은 내면아이가 있을 수 있어.”
지인은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생각이 날 듯 말듯한데 또렷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며칠 뒤 지인을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인은 최근 신랑에게 자신도 모르게 ‘욱’해서 큰 소리를 쳤다고 했다. 마치 미치기라도 한 것처럼. 이후 감정이 좀 수그러 들었을 때 문득 내가 왜 그렇게까지 화를 냈을까 하다가 상처 받은 내면아이를 떠올렸다고 했다.
지인은 위로 언니가 세 명이 있다. 지인은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그것은 유독 더 잘하는 언니들 틈에서는 크게 인정받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지인은 이런 언니들 틈에서 엄마의 은근한 비교로 자신도 모르게 상처 받고 자랐다는 걸 알았다. 지인이 신랑에게 큰 소리를 친 날 지인은 신랑의 말속에서 자신의 엄마를 느꼈다.
“그런 게 있다고. 말해도 넌 모를 거야.”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이 말에 지인의 상처 받은 내면아이가 건드려졌던 것이다. 지인이 말했다.
“사실 그때 생각이 날 듯 말듯하다고 했을 때 뭔가 알겠더라고. 내가 어떤 부분에서 상처를 받았는지. 그런데 인정하기가 싫었어. 나는 그저 예쁨 받고 사랑만 받고 자란 막내딸이고 싶었어.”
지인은 이 말을 하면서 결국 눈물을 흘렸다. 지인은 내면아이를 대면한 것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지인이 말했다.
“이제 내면아이를 알아차렸어. 그럼 그 내면아이를 어떻게 치유해야 해?”
이번에도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계속 내면아이를 만났고 치유를 경험했다. 그런데 어떻게 치유를 한 거지? 생각해보니 상처 받은 내면아이 치유는 내면아이를 알아차리는 바로 그 순간에 이루어졌다. 상처 받은 내면아이를 알아차리는 순간의 깨달음으로 내가 살아온 여정의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면 내 감정의 뿌리를 알 수 있고 나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혹은 왜 눈물이 났는지 그 이유를 아는 순간 내 자신에게 연민을 느낀다. 나 자신을 안아주고 토닥여주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눈물이 나고 내가 나를 안아 줄 수 있다. 그리고 내 경우에는 그것을 말로 표현했을 때 내면아이와 더 가까이 만날 수 있었다. 나는 내면아이를 알아차릴 때마다 신랑에게 말했다. 그러면 여지없이 눈물이 났다. 아마도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내면아이가 나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인과 내면아이를 만나는 법을 이야기하다 보니 ‘초감정’과 ‘내면아이’ 이 둘의 개념이 굉장히 헷갈렸다. 뭔가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도 같은데 뭐라 딱 꼬집어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이런 결론을 얻었다. ‘초감정은 내면아이가 느낀 감정이다.’ 각계의 전문가는 그들 나름의 용어를 쓴다는 걸 알았다. 존 가트맨은 초감정이라는 말을 쓰지 내면아이라는 용어를 안 쓴다. 최근 알게 된 ‘스키마 치료법’의 스키마 또한 비슷한 개념이다. 결국 이러한 개념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 경험과 맞닿아 있다는 걸 알았다.
많은 부모들이 내면아이를 대면하는 걸 두려워한다고 한다. 그 아픈 기억을 떠올리는 게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상처 받은 내면아이를 만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처 받은 내면아이는 계속해서 우리를 자극할 것이고 우린 계속해서 미성숙한 모습으로 아이를 키울 것이고 계속해서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상처받은 내면아이는 고스란히 우리 아이에게 대물림될 것이다. 인간은 유전자뿐만 아니라 감정도 대물림된다고 한다. 감정은 최소 5대까지 대물림된다는 말도 있다. 감정이 계속 대물림되는 것은 부모인 그들이 자신의 감정 패턴을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왜 내 아이에게 이렇게 화가 나는지 혹은 왜 늘 부정적인 생각을 먼저 하는지 등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배우고 알고 있는 것 안에서 최선을 다해서 아이를 키운 것이다. 그렇기에 자식들이 자신들을 원망하면 받아들일 수 없고 이해해 줄 수 없다. 그러므로 상처 받은 내면아이에 대해 부모에게 이야기할 때 부모가 받아들이고 우리에게 용서를 구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어느 날 지인이 자신이 어린 시절 느낀 수치심에 대해 엄마에게 허심탄회하게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지인의 엄마는 불같이 화를 냈다고 했다.
“얘는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러니!”
지인과 나는 빵 터져서 웃었다. 부모님이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고는 알았지만 그렇게도 유순한 지인의 엄마가 화를 내셨다니 더욱 웃음이 났다. 지인은 예전 같으면 같이 화가 났겠지만 그때는 전혀 화가 나지 않고 오히려 웃음이 났다고 했다. 내면아이 치유를 했기 때문에 더 이상 그 부분에서 서운하거나 화나는 감정이 없기 때문이었다.
내면아이 치유는 단시간에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다. 내면아이 치유는 달리 말해 나만의 생활 패턴을 깨는 것이다. 수십 년간 살아오면서 쌓아온 나의 습관, 생각, 경험, 지식, 행동 이 모든 것을 바꾸는 일이다. 나의 부모님 윗세대 혹은 그 윗윗 세대부터 이어져온 감정의 대물림을 깨는 일이다. 그러니 쉽지 않다. 끊임없이 나를 관찰하고 알아가고 공부해야 한다. 내 깊은 고통을 또다시 마주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나의 자식을 위한다면 꼭 해야 할 일이다. 내가 나의 대에서 감정의 대물림을 끊어야 한다. 내가 우리 아이에게 좋은 감정을 물려준다면 훗날 우리 아이의 자식들에게도 좋은 감정이 대물림될 것이다. 그렇게 계속해서 좋은 감정이 대물림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나는 이것을 진화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감정을 대물림 해주자. 우리 아이들만큼은 우리처럼 상처 받은 내면아이로 고통받는 어른이 되지 않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 그것은 곧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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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치유까지 이어지는 시간을 드리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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