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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경심 May 28. 2021

5-5 사소한 일이 우리를 위로한다

사소한 일이 우리를 괴롭히기 때문에

어깨가 아파 매일 오는 환자분이 있었다. 환자분의 삐뚜름한 어깨 높이가 오랜 시간 어깨질환을 앓았다고 말해주는, 허름한 옷차림에 체격이 왜소하고 마른 분이었다. 그분은 치료 중에 기침을 많이 했다. 유난히 기침을 많이 하던 날 환자분이 말했다.

 “진폐증 때문에 기침하는 거예요. 옮는 거 아니에요.”

 아마도 그간 오해를 많이 받아서 이런 말씀을 하는 거 같았다. 내가 말했다.

 “아, 네. 힘드시겠어요.”

 기침이 잦아들자 환자분이 말했다.

 “내가 40년이 넘게 공사장에서 일을 했어요. 그랬더니 진폐증이 오더라고요.”

 “그렇게 오래도록 일하셨으면 그래도 돈은 많이 벌어 놓으셨겠어요.”

 “돈이요? 돈은 하나도 안 남았어요. 남은 건 골병뿐이죠.”

 남은 건 골병뿐이라는 말씀에 환자분의 깡마른 어깻죽지가 유난히도 도드라져 보였다. 사실 이 환자분은 물리치료의 의미가 그다지 없는 분이었다. 어깨를 싸고 있는 힘줄들이 이미 많이 손상되어 수술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수술을 하면 좋으련만 환자분에게는 수술비가 모자랐다.     

  그렇게 수개월을 물리치료로 버티다가 드디어 수술비가 마련되었는지 수술하러 가셨다는 말이 들렸다. 그리고 얼마 후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환자분이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수술로 인한 것인지 아닌지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폐기능이 많이 안 좋아져서 돌아가셨다고 했다. 충격이었다. 믿기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환자분이 그 삐뚜름한 어깨를 하고 나타날 것만 같았다. 수십 년간 노동으로 고생하고 그 대가로 고통받고, 이제야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했는데 결국 그렇게 끝이 나고 만 것이다. 사람의 목숨이란 질기고 질긴 것 같다가도 이럴 때 보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 환자분의 소식을 듣고 나니 살아가면서 살고 죽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그야말로 한 치 앞도 모른다. 내가 언제 어떻게 죽을지 누가 알겠는가. 내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사소한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란 책 속 등장인물 할아버지의 말이 생각났다.       


 ‘참 묘한 일이지만 늙어서 자기가 사랑했던 것들을 떠올리게 되면 좋은 점만 생각나지 나쁜 점은 절대 생각나지 않는다, 그게 바로 나쁜 건 별거 아니라는 걸 말해주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나쁜 건 별거 아니라고 말했듯 지금 내가 나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별거 아닌 일일지도 모른다.

 한편 프랑스의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은 이런 말을 했다. ‘사소한 일이 우리를 위로한다. 사소한 일이 우리를 괴롭히기 때문에’

 사소한 일에 괴로워 말아야겠다. 사소한 일에 기뻐하고, 감사하고, 위로받는 내가 되어야겠다. 죽음이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듯 나에게 일어나는 외부적인 일이든 내부적인 일이든 멀리 바라볼 줄 아는 내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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