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에세이를 쓰며 큰 도움을 받은 개념이 있다. '달리는 문장'과 '멈추는 문장'. 아래 글을 읽어 보자.
배우 윤여정에게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을 안겨준 영화 <미나리>를 보았다. 영화는 이민자 가족의 생활을 잔잔하게 보여주며 진행됐다. 도입부가 꽤 지루했다. 심지어 영화 시작한 지 한참이 지나도 배우 윤여정은 나오지도 않았다. 그만 볼까 망설여졌지만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 영화가 각종 상을 휩쓸었을까 궁금해서 끝까지 보았다. 보는 내내 느꼈던 지루함은 영화의 후반부 한 장면으로 모두 상쇄되었다. 나는 심장이 약한 손자가 윤여정 배우, 즉 자신이 가족들에게 피해만 주었다 생각하며 떠나는 할머니에게 달려가는 장면을 보며 오열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잃은 밤, 허름한 마룻바닥에 온 가족이 함께 나란히 누워 잠든 모습이 깊은 여운으로 남았다.
위의 글을 읽고 내가 영화를 보고 그랬던 것처럼 오열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이다. '아, 글쓴이가 영화를 보고 감동했고 울기까지 했구나.' 정도가 다일 것이다. 그 이유는 위의 문장들은 '달리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달리는 문장'이란 이야기에 흐름에 있어 상황과 맥락을 독자가 파악할 수 있도록 꼭 필요한 부분만 요약해서 쓰는 문장이다. 두 시간짜리 영화를 십 분 정도로 요약한 유튜브 영상을 본 적 있는가? 요약 영상은 아무리 감동적이고 슬픈 영화라고 해도 감동과 슬픔이 온전히 전해지지 않는다. 요약에는, 그러니까 '달리는 문장'에는 디테일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영화 <미나리>를 보고 깊은 감동을 받고 오열까지 한 것은 지루하다고 느낀 그 부분들을 세세히 다 보았기 때문이다. 그 부분들을 요약본으로 봤다면 감동의 크기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작았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지루했다던 그 장면 하나하나는 소설로 치자면 디테일한 '묘사'다. '묘사'는 '멈추는 문장'이다. 멈추는 문장에는 디테일한 감정 묘사, 사건의 전말이 모두 들어있다.
글을 쓸 때는 '달리는 문장'과 '멈추는 문장'을 적재적소에 넣어 잘 활용해야 한다. 내가 무릎 인공관절 수술 전문 병원에서 일할 때 쓴 <중요한 일>을 예로 들어보자. 보호자 분이 매번 바쁘다며 무릎 수술을 해 거동을 못하는 환자를 직원인 우리에게 맡기고 자리를 뜨는 일이 많았다. 개인병원의 여건상 매번 한 환자만 붙잡고 치료해 줄 수 없었기에 실장님은 그 보호자에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로 바쁘다는 건데요?"
환자분이 답했다.
"지금 소고기 타임 세일을 해서요. 우리 엄마 소고기 미역국 끓여주려고요."
어처구니없는 이유를 듣고 실장님은 정색하며 말했다.
"어머니, 지금 중요한 일이 무언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 대화를 들으며 나는 '중요한 일'에 포커스를 맞추어 글 한편을 썼다. 이 글에서 달리는 문장은 내가 물리치료사로 일하는 것, 환자가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하고 왔다는 것 등이다. 이런 문장에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내가 어떤 과정을 통해 물리치료사가 되었는지, 무릎 인공관절 수술은 어떤 수술인지 따위는 필요 없다는 말이다. 그 부분들을 멈추는 문장으로 쓴다면 소위 말하는 TMI(Too much information)가 된다. 이 글에서 '멈추는 문장'은 실장님과 보호자의 대화, 그 대화에서 내가 깨달은 점이다.
영화 장면도 따라가다 보면 별 의미 없이 스윽 지나가는 장면이 있고 잠시 멈추어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장면을 확대해 보여주기도 한다. 이 말인즉슨 그 장면에 의미가 있다는 말이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의미를 두는 부분을 스윽 지나가지 말고, 달려가지 말고 잠시 멈추어 좀 더 확대해서 보여 주어야 한다. 세세히 묘사하고 친절히 설명해 주어야 한다. 그럴 때 독자는 글쓴이가 느낀 감정과 최대한 유사한 감정을 느낄 것이고 글쓴이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할 것이다. 달릴 것인가, 멈출 것인가. 그 점에 주목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