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드득 떨어지면서 터져버리고 말았다.
감정선이란 게 있다.
멀리서 보면 직선인 거 같지만,
가까이 서보면
사실은 잔 가지들이 어마하게 옆에 붙어있다.
여러 가지 생각들,
여러 가지 대화들,
여러 가지 행동들,
여러 가지 반응들로 결국 쭈뼛거리며
이리로 갈까, 저리로 갈까
번지듯 감정선을 이어가려다
망설임과 되뇜에 주저흔을 남긴다.
그런 주저흔의 잔가지들 중
어렵게 용기 내어 결정한 감정 라인 하나에
굵게 힘을 주어 결국 뻗어 나간다.
드디어 감정을 이어간다.
당신은 까맣게 모르는
찬란하게 비루한 감정의 시작이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당신을 좋아하게 되어버렸다.
내 방의 창문 바깥쪽엔 나무들이 많이 우거져 있다.
한창 여름 때는 창문을 열어두면,
온갖 벌레들이 날아들기도 하고,
시원한 매미 소리가 바로 귀 옆에서 들리기도 한다.
바람이 많이 불 때는 나뭇잎들이
“촤르르~ 촤르르~” 하며,
멀리 있는 나무의 나뭇잎부터
내 방 창문 앞 나무의
나뭇잎까지 파도를 타며
바람의 흐름을 일정한 리듬으로
소리로 알려준다.
나는 이것을 나뭇잎 풍경이라고 부른다.
비가 많이 오는 날 새벽은
무척 설레 인다.
비가 온다 싶으면, 잠들기 전 일부러
내 방의 창문을 약간 열어 놓는다.
그리고 스르르 잠이 들기를
양이나 별을 세며 기다린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인가 잠이 들어버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비가 오는 새벽엔 잠에서 깨버린다.
마치 내가 깨기만을 기다렸다고 말해주듯 들려오는
그 빗소리…
고요하고 적막한 어두운 새벽에
오직 빗소리만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후드득.. 후드득..”
내 방 창문 앞 울창한 나뭇잎
하나하나 마다 떨어지는 빗방울의 소리는
내 마음과 정신과 모든 것을 울컥하게 만드는..
감동적이면서
너무나 아름답고, 아름답고,
또한 아름답다.
여느 때와는 달리 오늘 새벽의 비는 더욱 나를 감동시키고 있었다.
빗방울 하나하나마다 터져 나오는 소리들이 내 마음을 두드리고,
그 울림의 파장 속에서 나는 서연을 생각해 버리고 말았다.
믿기지는 않지만,
서연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알싸하게 단전 깊이에서 끓어오르는 벅차오름이 있다.
그냥 그녀와 같은 나라에 살고 있다는 거,
같은 인종이라는 거,
같은 도시,
같은 빌딩,
같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고,
가끔 회사 내에서 지나치면서 눈을 마주칠 수 있다는 거..
어떻게 보면,
평범하고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겠지만,
나에게는 이 모든 것이 행복하다 란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의미가 되고 있었다.
서연을 처음 보았을 때의
그 두근거림을 내 심장은 아직도 기억을 하고 있나 보다.
오늘 누군가 서연에 대한 지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그때 서연 씨가 말이야…” 하면서
누군가 말하는 서연의 이름을 들었을 때
나는 얼굴이 빨개지면서,
심장이 서연을 처음 보았을 때처럼 쿵쾅쿵쾅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단지 어느 사람의 이름만으로도,
나의 가슴을 이토록 뛰게 하는 한다는 것은,
그동안 전혀 경험해 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서.. 연..’
어떻게 보면, 참 흔한 이름이다.
서연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은 전국에서 백 명, 아니 천명도 넘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서연’ 이란 두음의 글자를 보거나 들으면,
생각하는 사람은 그 천명도 넘는 사람 중에 단 하나의 얼굴이자,
단 하나의 느낌이다.
그것이 나에겐 소중하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겐 경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