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장모님께서 용인에서 우리 집까지 먼 길을 오셨다. 아내와 손주가 몸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혹시나 내가 집안일로 힘들지 않을까 걱정이 되셨는지 두 손 가득 반찬을 챙겨 오신 것이다. 물론 손주가 보고 싶어서 오신 것도 있을 것이다. 어머니 덕분에 온 가족이 오랜만에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 비록 평소 간헐적 단식으로 아침을 먹지 않지만, 이렇게 가족이 모여서 함께 하는 시간이 소중해 예외를 두기로 했다. 어머니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걸 보니 나도 덩달아 마음이 따뜻해졌다. 딸과 손주가 어머니의 손맛을 즐기며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행복하셨을까 싶었다. 아마도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일 중 하나는, 가족이 자신의 음식을 맛있게 먹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 아닐까.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고 난 뒤, 다시 버스 정류장까지 모셔다 드리러 나섰다. 그런데 가는 길에 아들이 갑자기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차 안에서도 계속해서 불만을 쏟아냈다. 처음에는 아들의 기분을 달래주려 했지만, 점점 반복되는 짜증에 나도 슬슬 얼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장모님께서 "그냥 버스를 타고 가겠다"고 하셨는데도 굳이 모셔드리려 했던 상황에서, 아들의 불평이 계속되니 짜증이 올라왔다. 아이에게 실망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동시에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제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운전 중에도 불편한 기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어머니를 정류장에 내려드린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아들의 짜증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나와 아내는 기분을 풀어주려 빙수를 먹으러 가자며 빙수집에 들렀지만, 아들의 짜증은 계속됐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그럼 차에서 내리지 말고 혼자 있어라"며 차 문을 닫고 나왔다. 잠시 후 차문을 다시 열어보니 아들은 울고 있었다. 그 순간 가슴이 무거워졌고, 아들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순간적인 감정에 아이를 힘들게 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팠다.
아들을 달래고 차분히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감정을 정리한 후, 함께 빙수를 먹으러 카페로 들어갔다. 아들이 다시 밝아진 얼굴로 메뉴를 고르고, 빙수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그제서야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집에 돌아와서는 같이 종이접기도 하고, 책도 함께 읽고, 알파벳 공부도 조금 하고, 나는 잠시 낮잠을 즐겼다. 아이는 TV도 보고, 하루를 꽤 여유롭게 보냈다. 해 질 녘에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아내와 아들과 함께 산책을 나갔다. 산책하면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고, 뛰어 놀기도 하면서 모처럼 긴 시간을 밖에서 보냈다. 산책 후에는 샤워를 시켜주려고 했는데, 이제는 아들이 혼자 샤워를 하고 나올 정도로 자라서 내가 해줄 일은 간단하게 마무리해 주는 것뿐이었다. 아이에게 로션을 발라주고, 머리를 말려주고, 옷을 입혀준 후에 함께 침대에 누웠다.
잠들기 전에 오늘 있었던 일들 중 가장 좋았던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아들은 망설임 없이 엄마, 아빠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가장 좋았다고 답했다. 그 말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종이접기를 했던 것도 재미있었고, 엄마와 아빠랑 함께 논 것도 좋았고, 저녁에 이렇게 다 같이 얘기하는 시간도 즐거웠다고 말한다. 그뿐만 아니라 TV 보는 것도 재미있었고, 오늘 하루가 너무 즐거워서 내일은 또 어떤 재미있는 일이 생길지 기대된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아들이 잠들기 전에 감사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니, 오늘 하루가 참으로 의미 있고 행복한 시간이었음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아들이 잠든 후, 나는 달리기와 짧게 운동을 하고 난 뒤 책상에 앉아 오늘 하루를 정리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문득 나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그 따뜻하고 편안한 순간들이 나에게는 가장 큰 행복이다. 그리고 일할 때 고객과 대화하고 미팅하며 새로운 시도들을 해보는 것에서 나는 짜릿한 희열과 성취감을 느낀다. 수영을 하면서 느끼는 물의 감촉과 자유로움, 달리기를 하면서 흘리는 땀과 함께 찾아오는 개운함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또한, 글을 쓰면서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서 좋다.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칼로리는 낮지만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즐거움 중 하나이다. 가격도 저렴하고 내 취향에 맞는 예쁜 옷을 찾으러 쇼핑을 다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니, 그 목록이 끝이 없을 정도로 많았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다 보니 마음이 설레기 시작한다. 내일도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일들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대가 된다.
한 가지에 몰입하는 것도 물론 좋다. 깊이 파고들어 그 분야에서 성취감을 느끼는 일은 분명 가치가 있다. 하지만 나는 다양한 것들을 조금씩 시도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더 즐겁다. 세상에는 경험해보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고, 그 중 하나만 붙들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게 느껴진다.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고, 낯선 경험에 몸을 던지다 보면 삶은 조금씩 더 즐거워진다. 매일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하루를 채워가며, 조금씩 다른 무언가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소소한 기쁨이 내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내일도 오늘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새로운 경험들로 하루를 채우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나만의 방식으로 해나가면서 매일 조금씩 쌓아가는 그 과정이 내 삶을 더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들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