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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리셋 Sep 05. 2024

부모가 된다는 것, 그리고 어른이 된다는 것

오랜만에 아들과 아내를 태우고 아들의 어린이집 등원을 도왔다. 요즘 왜 이렇게 바빴던 걸까? 아내가 며칠 전 힘들다고 했던 말이 떠올라 마음에 걸렸다. 그 말속에 얼마나 많은 감정과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었을까. 오늘 아침엔 서둘러 씻고, 아들을 준비시켜 셋이 차를 타고 나섰다. 날씨는 맑았고, 기분도 좋았다. 그동안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가족과 함께하는 이 짧은 시간이 이렇게 소중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그동안의 바쁜 일상 속에서 나는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었던 걸까?


그런데 차 안에서 아들이 듣고 있는 이야기가 자꾸 귀에 거슬렸다. 귀신, 영혼, 괴물, 무당 같은 단어들이 나오는 이야기라니, 대기업에서 만든 콘텐츠라 해도 어린아이가 듣기엔 너무 어둡고 불건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아들의 좋아하는 콘텐츠라 넘기려 했지만, 그 내용이 부정적이고 어두운 것 같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내에게 몇 번이나 틀어주지 말라고 이야기했었는데, 또다시 그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니 갑자기 화가 났다. 하지만 아내를 원망할 수는 없었다. 아내도 나처럼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나마 아이를 즐겁게 해주려 했을 뿐이었으니까. 그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아이에게 어떤 것이 좋은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이에게 차분히 말했다. "이제 이건 들을 수 없어. 앞으로는 다른 좋은 것을 들어보자." 아내에게도 말했다. "이 이야기는 앞으로 틀어주지 말아줘." 아내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아들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왜 안되냐며 심하게 울기 시작했다. 그동안 즐겁게 듣던 것을 갑자기 못 듣게 되니, 아이의 마음도 많이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좋아하던 것을 더 이상 듣지 못하게 된 상황에 아들의 그러한 반응은 당연했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 아들의 혼란을 이해하면서도, 부모로서 아이에게 무엇이 진정으로 좋은지를 가르쳐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조금 진정되었을 때, 아이에게 다시 설명해 주었다. "아빠는 너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어. 나쁜 것은 주고 싶지 않아. 특히 해가 되는 것은 더 줄 수 없지. 이 이야기가 너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거라면 아빠는 듣게 해줄 거야. 하지만 그게 너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해가 되는 것이라면 아빠는 줄 수 없어. 아무리 네가 배가 고프다고 해도, 그 음식이 상했다면 아빠는 줄 수 없어. 네가 아무리 원해도, 듣는 것, 보는 것, 먹는 것, 모든 것에서 너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은 게 아빠 마음이야. 그러니까 때로 안 되는 건, 널 위해서 줄 수 없는 거야." 아들은 한참을 듣더니 조금씩 수긍하는 듯했다.

그 순간, 아들이 아직 무엇이 옳고 그른지 구분하는 능력을 배우고 있는 과정임을 깨닫고, 부모로서의 책임감이 더욱 무겁게 다가왔다.

어린이집에 도착했을 때, 아들은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한 말이 여전히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울고 있는 아들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이 또한 성장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었고, 나는 그런 아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도와주려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근처에서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근처 편의점에도 들러 간식을 사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 동안 아들의 마음이 조금씩 진정되었고, 마침내 어린이집에 데려다줄 수 있었다.

하지만 나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스스로를 다독이면서도 아들의 눈물을 떠올리며 마음이 무거웠다. 아들에게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가르쳐야 하는 순간,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부모로서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중요한 가르침을 주는 일이, 때로는 이렇게도 마음 아프고 복잡한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아들을 등원시킨 후, 고객사 미팅을 위해 가는 길에 문득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아들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행동했지만, 나는 과연 나 자신에게도 좋은 것들로만 채우고 있나? 나는 좋은 영상과 콘텐츠만 접하고 있나? 혹시 나도 모르게 해롭고 불건전한 것들에 나의 눈과 귀를 내어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일상의 소음 속에서 나 또한 부정적인 것들에 물들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그동안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아들을 걱정했던 것처럼 나 자신에게도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바닷가의 모습이 떠올랐다. 파도가 끊임없이 바위에 부딪쳐 모난 부분을 깎아내듯 나도 인생의 파도 속에서 조금씩 다듬어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겠지. 아들이 좋아하는 것들 중 일부를 제한해야 했던 것처럼 나 역시 내 삶에서 해로운 요소들을 분별하고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아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긴다.


이러한 순간들이 쌓여가며 나를 더욱 성장하게 만드는 것 같다. 오늘 아침은 아들에게도, 나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기를 바라본다. 좋은 것들로 삶을 채워가는 과정에서 겪는 작은 충돌과 눈물은, 결국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아들과 나,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가 이런 경험을 통해 더 건강하고 단단하게 성장해 가기를 기도하며, 오늘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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