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에 일본 출장을 앞두고 있었다. 몇 주 전에 미리 팀원들과 함께 지낼 호텔을 예약해 두었는데, 위치를 확인하려고 들어가 보니, 예약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이었다. 출장 일정이 코앞이라 방도 거의 남아있지 않았고, 남은 호텔들은 예약 가격이 이미 두 배나 오른 상태였다. 당황스러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급하게 예약을 다시 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고, 순간적으로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심지어 출장 일정이 끝난 후, 가족들이 일본에 와서 함께 휴가를 보내기로 했는데 그때 묵을 숙소도 예약해 두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중요한 것들을 미리 챙기지 않았는지, 스스로에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자책감이 나를 더 답답하게 만들었다. 다 그만두고 그냥 자러 갈까 생각했지만, “그래도 예약은 해놔야 하지 않을까? “라는 아내의 말에 결국 훨씬 비싼 금액을 지불하고 나서야 겨우 예약을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침대에 누웠지만, 머릿속은 복잡했다. 해결한 것 같으면서도 남은 불안과 후회가 뒤섞여 잠이 오지 않았다.
아침이 되어 운동을 나가려고 준비하는데, 어제 일이 여전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호텔 예약에 두 배 가까운 돈을 더 내게 된 것도 짜증이 났지만, 더 큰 문제는 그런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냈다는 점이었다. 몇 주 전에 미리 준비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왜 그렇게 미리 챙기지 않았는지 자꾸만 자책하게 됐다. 얼마 전 아들의 가을 옷을 사려고 쿠폰까지 동원해서 몇 천 원을 아끼려 애썼던 내 모습도 떠올랐다. 쇼핑할 때는 그 돈을 아끼겠다고 쿠폰을 찾고, 할인 혜택까지 챙겨서 겨우 몇 천 원을 절약했던 노력이 지금 생각해 보니 허무하게 느껴졌다.
감정을 추스르려고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운동을 하면 기분이 좀 나아질 거라 생각했다. 원래는 8킬로미터 정도 달리려고 계획했지만, 5킬로미터쯤 지나자 도저히 더는 뛰고 싶지 않았다. 짜증이 나서 달리는 것이 의미 없게 느껴졌다. '좀 뛰면 기분이 풀리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숨도 차지 않았고, 몸도 피곤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에 얽힌 짜증이 가시지 않았다. 오히려 그 답답함이 점점 커져만 갔다.
결국 나는 더 이상 뛰는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에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운동을 하면서도 기분이 이렇게 나아지지 않는 건 처음이었다. 평소에는 운동을 하면 머릿속이 정리되고, 마음도 차분해지곤 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운동이 마음을 가라앉혀 줄 거라 기대했지만, 무거운 마음을 그대로 안고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집에 와서 옷을 벗고 샤워를 마친 뒤, 놀랍게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다음에는 실수하지 말자. 내가 잘못했으니 인정하자. 돈이 더 들어가더라도 그건 어쩔 수 없어. 회사에서 비용 처리가 안 된다면, 그냥 내가 감수하자.”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니 모든 게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마음이 편안해지니 해야 할 일들도 훨씬 쉽게 해결됐다. 여유 있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고, 평소에 짜증 났을 문제들도 하나씩 차분하게 풀어나갈 수 있었다. 평온한 마음이 찾아오니 아침의 복잡했던 감정들이 사라지고, 생각도 훨씬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운동을 하고 나서 이런 변화를 겪으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운동을 하면 몸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 마음도 정리된다는 걸 확실히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지만, 운동을 마친 뒤엔 내 마음의 짐도 덜어지고 있었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온 아침, 상황은 그대로였지만, 그 문제를 바라보는 내 시선은 분명 달라졌다. 출장 문제도, 미리 준비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자책도, 이제는 차분하게 하나씩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몸을 움직였을 뿐인데, 머릿속의 혼란과 짜증이 함께 풀려나갔다.
달리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화가 풀리지 않아 내내 답답했고, 5킬로미터를 달렸을 때는 더 짜증이 났다. 운동이 내 기분을 더 나쁘게 만드는 건 아닌가 싶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나니,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지고, 복잡했던 생각들이 정리되었다. 그 변화가 너무 놀라웠다.
이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운동은 단순히 몸을 위한 게 아니라, 마음을 정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해 준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큰 스트레스를 받아도, 몸을 움직이면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특히 감정이 잘 컨트롤되지 않거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때, 운동이 그걸 풀어주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는 걸 다시 느꼈다.
그동안 운동이 마음의 치유에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여러 번 들어왔지만, 이번에는 그 효과를 내 몸과 마음으로 직접 체험했다. 운동이 주는 힘은 단순한 체력 그 이상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