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출간한 책에 대한 서평 중에서 마음에 걸리는 글을 발견했다. 평소에는 격려나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기에 솔직히 처음엔 조금 당황스러웠다. ‘조금 더 긍정적으로 봐줬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살짝 무거워졌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생각해 보니, 그 서평이 오히려 감사한 피드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마다 책을 읽는 경험, 상황, 그리고 감정이 다르기 때문에 느끼는 바와 반응이 제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책을 쓰면서 나의 의도를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독자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그들의 상황과 경험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사실을 다시 되새기니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 서평 덕분에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을 돌아보고, 다음에 더 나은 글을 쓸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생각을 바꾸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부족한 점을 채울 기회를 준 그 리뷰에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지난 주말에는 장모님이 오랜만에 집에 오셨다. 예쁘게 단풍이 물든 길을 따라 미술관에 가서 전시도 보고 근처에서 꽃구경을 하며 점심도 함께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장모님께서 집으로 돌아가시려는 순간 뜻밖의 일이 생겼다. 마침 광화문에서 대규모 시위가 있어 버스 운행이 중단된 것이다. 그래서 일단 장모님을 다시 우리 집으로 모시고 왔다. 저녁에 상황이 나아지면 돌아가시기로 했는데 시간이 늦어지면서 결국 하룻밤을 우리 집에서 주무시게 되었다.
처음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살짝 놀랐지만 금세 마음이 편안해졌다. 늦은 밤에 서둘러 돌아가시는 대신 집에서 하루 편히 쉬다 가실 수 있으니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원래 함께 가기로 했던 여행도 아내 출장으로 일정이 미뤄졌는데, 일이 이렇게 되니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모든 상황은 결국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다음 날 아침, 장모님께서 교회 가는 길에 버스를 타기 좋은 곳까지 모셔다 드리겠다고 했지만, 장모님은 혼자 가겠다며 아침 일찍 출발하셨다. 하지만 이번에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찾아왔다. 마침 그날 마라톤 대회가 열려 또 도로가 통제된 것이다. 장모님은 결국 고속터미널까지 가셔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아내가 전화를 드리며, “그러게 모셔다 드린다고 했잖아. 왜 그렇게 혼자 일찍 가셨어.”라고 말하자, 장모님은 웃으시며 “오히려 잘 됐지 뭐, 고속터미널 가는 길에 쇼핑도 할 겸 천천히 갈게”라고 대답하셨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을 즐겁게 받아들이시는 장모님의 여유로운 태도가 새삼 새롭게 다가왔다.
교회에 도착해 주차를 하려는데, 우리가 늘 주차하던 자리에 이미 다른 차가 있었다. 처음엔 아쉬웠지만 다른 자리에 주차하고 예배를 드리러 올라갔다. 그런데 예배 중에 주차 봉사를 하시는 집사님께서 차를 잠깐 빼달라고 나를 부르셨다. '주차를 잘해 놨는데 왜 예배 중에 부르실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좀 불편했지만, 일단 나가서 차를 옮겼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옆 차에서 짐을 꺼내 실어야 해서 내 차를 잠시 옮겨야 했던 것이다. 그 순간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우리가 좋아하는 넓은 주차 자리가 비게 된 것이다. 그 집사님이 그곳에 주차하라고 하시며 다른 차가 들어오지 못하게 길을 막아주셨다. 덕분에 원하는 자리에 주차할 수 있게 되니, 잠깐의 불편함이 오히려 기쁨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작은 상황에서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기분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서 우리의 마음가짐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인생은 언제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아무리 많은 지식과 지혜를 갖추고 있어도, 결국 우리는 5분 앞의 일조차 예측할 수 없는 존재다. 지금 당장은 이해되지 않거나 불편하게 느껴지는 상황이 생기더라도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경험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순간의 불편함을 잠시 내려놓고 그 안에서 작은 기쁨과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시각을 가진다면, 매 순간이 조금 더 가볍고 행복해질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지금의 상황에 기대어 미래를 섣불리 짐작하고 판단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을 결정하는 것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다.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인 기대를 가지고 바라보면, 예상치 못한 불편함조차도 새로운 기회와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 어려움이나 예기치 못한 일들은 피할 수 없지만, 그 속에서 배울 점을 찾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삶은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