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베리를 직접 키우고 싶다는 얘기를 한 동안 입에 달고 산 적이 있다. 시골에 살면서 블루베리를 키워 잼도 만들고, 생으로도 먹고 남으면 사무실 언니들한테 보내주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게 벌써 2년 전이다. 물론 으레 재밌는 얘기나, 일에 찌든 동료의 현실성 없는 상상 정도로 치부되곤 했다.
코로나19의 위세가 비교적 뻗지 않은 시골에는 봄이 오고 있다. 논, 밭에 할머니들도 슬슬 나오셔서 밭을 살피고 계시고 주말에는 마을 사람들이 집 밖에서 이리저리 부산스럽게 움직인다.
그리고 나도 마침내 블루베리 한 그루를 키우기 시작했다.
블루베리는 직접 마당에 심을 수는 없어 큰 화분에 옮겨 심고, 재미 삼아 상추도 조금 심었다. 더불어 텃밭 한 고랑을 쓰라는 허락을 옆집 할머니의 호쾌한 허락이 있었기 때문에 날이 점 더 따듯해지면 고추, 방울토마토, 파 등을 심을 예정이다. 블루베리 한 그루, 텃밭 한 고랑- 포부에 비해 너무 작은 규모가 아닌가 싶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으니 차차 늘려가야지.
누군가는 사 먹는 게 빠르겠다고하겠지만 관심을 갖고 돌봐 열매 맺게 할 일련의 과정 자체가 나를 설레게 한다.
시장에가서 씨앗도 사고, 적당한 흙을 나무 위에 도닥도닥거리면서 매일 햇빛 아래에서 물을 주는 행위가 어째서 이렇게 마음을 따듯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올 초 내려와 처음 향한5일 장에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적은 수의 좌판만 덩그러니 있었고, 읍내하나로마트에는 바나나가 없었다. 바나나란 자고로 일 년내내 언제나 집 앞 마트나 하다못해 길 가의 트럭에서도 살 수 있는 과일이 아니었던가? 당황스럽고 이렇게 선택의 기회가 작아지는 건가 싶었다.나물 한 주먹 구하기도 어렵고 말이다.시골살이의 첫 위기였다.
후, 정말 도시 출신임을 증명한 셈이다.날씨가 풀린5일 장은 겨우내 조용했던 것과 달리 별천지였다. 겨울엔 좌판 수 자체가 적다는 걸 몰랐던 것이다.
여기는 과일 트럭(바나나도 많았다), 저쪽은 묘목 좌판. 군것질거리, 생선 좌판, 야채와 나물도 산더미. 사람도 바글바글.오랜만에 느끼는 활기에신나서 화분 하나를달랑달랑 입양해왔다.
사실 4계절 제철음식이 뭔지 잘 모른다. 학창 시절 시간에 '사람은 제철 음식을 먹고살아야 한다'라는 주제의 반대 입장으로 토론을 한 적이 있었다.그때 나는 기술의 발전으로 재료의 저장기간이 길어지고 사시사철 같은 품종을 재배할 수 있는데 굳이 제철 재료로만 음식을 해 먹어야 한다는 것은 불필요한 고집이며, 가을에 추수되는 쌀을 다른 계절에도 먹는 것이 찬성 측에서는 맞다고 생각하는가? 이런 알량한 논지로 주장을 폈고, 토론에서는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제철음식과 재료를 모르는 도시 학생끼리 해봤자 의미도 깨닫지 못하는 주제다. 항상 집 앞 마트에 가면 소포장된 야채와 열대과일들을 집어 장바구니에 넣을 수 있었고,그리고 원하는 음식이 있으면 식당에 가서 외식을 하면 됐으니까.그나마 엄마가 챙겨 먹였던 봄나물 정도가 내가 아는 제철 음식의 전부다.
그런데 봄바람과 함께 쑥이 마당 여기저기 올라온다. 처음 발견했을 때는 작고 아담하게 나더니, 일주일이 지나니 그새 군집을 이룰 정도로 많아졌다. 놀라고 신기한 마음에 하루 날 잡고 호다닥 나가나름 열심히 캤다.(본가에 놀러 오는 김에 쑥을 챙겨 왔는데, 엄마가 보자마자 너 진짜 쑥 못 캔다며 웃었다.)그 외에도 뭔가 먹을 수 있을 것 같이 생긴 초록 식물들이 여기저기 쑥쑥 올라오고 있지만, 정체를알 수가 없어 채집은 보류 중이다.
또 옆집 할머니가 지난 주말 상추를 심는 우리를 보고 한 소쿠리 주고 가신 버섯(집 뒷마당에 버섯을 키우신단다.)은 이런 게 방금 딴 식재료의 저력인가 싶을 정도로 부족한 요리 실력으로 아무렇게나 먹어도 맛이 좋았다. 탱글함이 살아있어 버섯 처음 본 사람처럼 신기해서 손으로 만져보게 된다.
시골이라고 모든 것을 제철 재료로 자급자족하기는 어렵겠지만,철 따라 되는 대로 맛있게 먹으면 그걸로 되겠지. 토론 때는 굳이 언급하지 않았지만 쌀도 햅쌀이 맛있으니까 말이다.
그럼 블루베리의 제철은 언제인가? 파랗게 잘 익었을 때 호로록 따 먹으면 그게 제철이 되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