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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항시인 Jun 08. 2024

불륜과 권력에 신의와 지력으로 맞서다.

파리시 뮤제 까나발레와  마담 세비니애 이야기

파리의 힙하고 핫한 마레지구에는 '파리시 뮤지움 - 뮤제 까나발레'가 있습니다. 이 박물관엔 17세기 파리 시민들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유물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작품만 걸린 미술관이 아니라 파리시의 역사와 을 보여주는 박물관 이라 특이하고 재밌습니다. 17~18세기는 파리가 극적으로 정비되고 아름다워진 시기였기 때문에 눈호강 가능합니다!


 귀족들이 살던 대저택을 "호텔"이라 부르는데 그런 호텔 파티큘리에들이 모여있던 곳이, 우리로 치면 사대문 안이였 던 시떼섬의  마레 지구입니다. 귀족들은 누가 더 크고 멋진 정원을 꾸몄는지, 집안 장식, 미술품이나 가구는 어찌 구비 해 놨고, 누구랑 어울리는지를 경쟁하고 과시하며 파리의 고급 살롱 문화를 형성해 갔습니다.

호텔 파티큘리애 내부

생계로부터 자유로운 귀족들이 모이다 보니 건축이 고급화되고, 음식 문화가 발달하고, 복식, 미술. 공연 등의 문화예술융성했죠. 더불어 왕권이 강화 되면서 다리짓고 베르사유 궁 만들고, 도시도 정비하면서 파리는 더 아름답고 화려해졌습니다. 왕은 말 8 필. 왕족은 6 필. 귀족은 4 필. 이렇게 마차 끄는 말의 수가 신분을 드러냈기 때문에 사람들은 마차가 지나갈 때마다 말을 세어보았데요.  이 포스팅의 주인공, 저명한 사람들이 모여든 살롱인 까네발레 저택에 거주했던 파리의 뇌색녀 세비니애 부인

(Marquise de Sévigné )을 소개합니다.

젊은 마담 드 세비니애

Marquise de Sévigné (마담 세비니애)는 까네발레 살면서 많은 문인, 예술가, 지식인들과 교류하여 프랑스 살롱 문화를 융성시킨 지식인이자 훌륭한 작가 였습니다. 부르고뉴 명문가 출신인 그녀는 여성으론 드물게 최고의 문학과 외국어 교육을 받고 자라나 파리 귀족 가문으로 시집갔지만, 잘생긴  남편은 바람기가 넘쳤습니다.  그녀가 딸 하나 아들 하나 낳아 정성으로 키우던 중, 방탕한 남편이 '애인'위해 결투에 나섰다가 (부인 아님. 애인!) 황당하게 죽어 버려서 25세에 과부가 됩니다.

귀족 응접실. 빈벽이 없는 과도한 화려함...

  박식함과 우아함, 뛰어난 재치가 돋보이는 말솜씨와 쉽고 솔직한 글을 쓰는 재주를 지녔던 세비니애는 파리 귀족계와 왕실의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살롱을 출입하며 당대 많은 저명한 인물들과 교류했고 살면서 청혼많이 받았지만 세비니애는 평생 남매의 엄마로만 남습니다. 신의를 지키는 그녀의 정의로운 면모는 정치적 사건에서도 드러납니다.

 책상으로 변하는 사비녜 부인의콘솔. 귀족들은 보석, 옷, 중요문서들을 저런 가구에 넣고 잠궈서 여행시에도 들고 다녔데요. 그 위엔 딸 초상화.

 푸케라는 재상이 루이 14세의 질투와 콜베르의 숙적 제거 목적의  정치적 계략으로 전 재산을 뺏기고 실각할 때, 세비니애는 끝까지 우정을 지키고 그를 지지합니다. [푸케의 이야기는 글 베르사유 궁전 편에도 등장합니다. https://brunch.co.kr/@resist/23]


거짓 증인들이 동원된 부정 재판으로 결국 감옥에서 죽은 푸케의 편에 선 것은 용감한 일이었으나, 권력의 눈치를 보던 귀족들은 세비니애 부인과 엮이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지요. 세비니애 부인의 딸은 아름다워서 한때 왕실에서 탐낼 정도로 인기가 많았었지만, 서른이 되도 혼처를 찾지 못해, 결국 나이 많은 귀족의 재혼자리에 들어가며 파리를 떠나게 됩니다.

늘 딸에게 편지를 쓰던 사비니애 부인

 사랑하는 딸이 프로방스로 가자, 그리움에 긴 편지를 쓰기 시작했고, 1700통에 달하는 편지들은 이후 책으로 출간 됩니다. <세비니애 부인 서간집>은 고전 문학의 일대 보고 이며, 17세기 파리의 생활상을 자세히 묘사하는 사료이자 18세기 서간문학의 유행을 낳았다는 높은 문학적 가치가 있습니다. 세비니애 부인도 다른 귀족들처럼 모함당한 푸케를 외면했다면 딸은 파리 귀족과 결혼할 수 있었겠지만, 이 놀라운 문학 작품은 세상에 없었겠죠.

그녀는 딸에게 편지를 보낼 때 마다 꼭 답장을 요구했었데요.

  까네발레 뮤제에는 당대의 재밌는 생활 도구들과 그림들도 많이 있습니다. 인상 깊었던 몇 가지.


지금은 파리 최고의 관광명소는 에펠탑, 루브르 이지만 17세기 최고 명소는 뽕네프 다리였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센 강에 다리가 다섯 개 뿐이였는데, 앙리 4세가 새로 지은 이 아름다운 다리를 보러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너도 나도 뽕네프를 그림으로 그렸다 합니다.

17세기의 뽕네프 다리

 그림에서 말 탄 왕의 동상이 보이시나요? 프랑스의  세종 대왕 격인 앙리 4세. 삼총사의 왕인 루이 13세. 태양왕 루이 14세의 동상은 원래 광장에 있었는데 혁명당시 루이 16세를 죽이면서 왕의 동상들을 다 부숴버리고 녹입니다. 동상이 파괴되는 과정에서 강에 그 일부가 떨어졌다가 오랜 세월이 지나 파편이 발견됐어요! 한 부분의 크기만 봐도 원래 동상이 얼마나 어마 어마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림에서 똥 싸는 중인 사람도 찾아보세요. 당시엔 길가에 그냥 배설했데요. 악취 가득 거리라 향수가 발달..^^ )

앙리 4세 동상의 말 다리 앞부분.
사혈 치료중인 루이 14세의 그림. 거대한 주사기와 피받는 그릇

17세기의 의술 중 하나인 출혈 치료법에 쓰였던 도구들. 팔에 상처를 내서 피를 흘리게 하는 방법(사혈)으로 귀족들에게 유행했던 치료법인데 루이 14세도 매주 사혈을 했을 만큼 효과가 있었다 합니다. 호화로운 생활을 하던 귀족들은 영양과잉으로 인한 고혈압이었을 가능성이 컸기에 당시에사혈은 고혈압에 대처하는 유일한 치료법이었겠지요. 우리도 사혈침이나 부황이 있는데, 문화권마다 사혈 치료법 이 있었다는 것이 새삼 놀랍습니다.

17세기 파리 거리의 상점 간판들

● 글을 몰라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도록 표현된 다양한 상점 간판들이 아름다우면서도 재미있어요. 튀어나온 간판들이 바람에 불어 떨어지면서 사람이 다치고 죽기도  해서 루이 16세 때부터는 벽에 붙이는 형태로 바뀝니다.

볼테르가 말년에 앉았던 의자. 책을 읽으며 글을 쓸 수 있게 설계!

 유명한 정치인. 시인. 예술가. 과학자의 물건들과 기록들도 가득한 이곳은 아름다운 정원 카페로도 유명하답니다. 정갈하고 푸르른 정원에 앉아 고풍스러운 호텔 파티큘리에 건물을 보며 파란 하늘 뚫고 나온 선명한 햇살을 맞으면 "아! 파리로구나~" 느끼게 되실 거예요.   볼거리 많은 파리 역사 박물관은 심지어 무료!

프랑스식 정원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정원.

 이 알짜베기 박물관 제 원픽비록 남편 복은 좀 없었지만,  명민하면서 쾌활했고, 예술과 귀족 문화를 사랑하면서도 품의와 신의를 끝까지 지켰던 까네발레 저택의 마담 드 세비니입니다!


 오늘의 한국에도 권력으로 오염된 증인들과 재판, 누명 쓰고 감옥에 갇힌 억울한 사람들이 있기에, 세비니애 부인의 이야기가 주는 울림이 있습니다. 나와 내 가족의 안위만을 위해 정의와 신의를 외면하지 않을 용기. 누구나 쉽게 이해 할 수 있도록 말하듯 글을 쓰며 의 어려움을 예술로 극복한 내공. 자녀를 깊이 사랑한 엄마면서, 파리 살롱 문화의 번영기를 이끌어낸  탁월한 문학가였던 세비니애 부인을 프랑스 파리의 마레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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