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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청거림을 막아주는 스미스 머신을 마냥 좋아해도 될까

by 책다람쥐

중학생 딸아이와 함께 헬스장에 다닌다고 하면 흔히 이런 물음이 돌아온다.

"아직 사춘기가 안 왔나 봐요?"

사춘기란 녀석이 각 가정에 꽤나 많은 횡포를 부리고 다녔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집에 사는 중학생도 엄마와 함께 헬스장은 다니고 있지만 중학생 시기는 사춘기와 함께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스스로 믿고 있다. 가끔은 강경파 사춘기와 결탁하여 부모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발언을 하기도 하고, 또 가끔은 온건파 사춘기와 손을 잡고 시시껄렁한 농담을 일삼기도 한다.


며칠 전, 신문을 읽다가 애한테 이렇게 말했다.

"이시바 일본 총리가 자진 사퇴의사를 밝혔대."

"왜? 사퇴 안 하면 안 돼? 나는 그 사람 좋은데..."

"네가 일본 정치에 대해 뭐 아는 게 있다고 이시바 총리가 좋아?"

"그 사람 이름이 좋잖아. 이시바. 우리반 애들 다 좋아할걸?"

(혹시 이시바라는 이름이 왜 좋다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는 분이 계신다면, 그 맑고 순수한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하시길 바랍니다.)


올해 삼성 스마트씽즈 앱을 처음으로 깔고 냉장고, 전기 쿡탑, 식기세척기 등과 연결했을 때도 이와 비슷한 분위기의 대화가 있었다.

"이야, 식기세척기 종료되었다고 폰으로 연락 오는 것 좀 봐. 완전 내 친구 식세기로구만."

"엄마한테 자주 연락하는 친구라면 이름도 붙여줘야지. 식세기니까, 식세 어때? 식세?"

(혹시 식세가 어떤 비속어를 떠올리게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분이 계신다면, 다시 한번 그 맑고 순수한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하시길 바랍니다.)


'이시바'와 '식세'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 중학생은 요즘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다. 또, 진로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큰 부담으로 여기기도 한다.

"아, 그냥 누가 정해준 대로 살고 싶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정해준 대로 살고 싶다니. 자기 힘으로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게 얼마나 멋져?"


나도 말은 저렇게 했지만 아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충분히 이해한다. 그 시절의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으니까. 앞이 보이지 않아 막막할 때, 그냥 정해진 경로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찾아온다.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지 않고 정해진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조금 더 수월하지 않을까 싶기에.


헬스장에는 이 생각을 구체화시킨 기계가 있다. '안 그래도 힘든데, 방향까지 조절해 나가려니 더 힘들지? 그렇다면 경로는 내가 정해줄게. 너는 그 경로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돼.'라고 말하는 기계. 바로 스미스 머신이다.


스미스 머신과 랙은 헬스장에서 아주 큰 존재감을 자랑한다. 천장에 닿을 듯 높이 올라간 뼈대는 위풍당당하다. 그 옆으로 주렁주렁 매달린 다양한 무게의 원판은 그 뼈대를 화려하게 치장한다. 가장 아래쪽에 있는 원판은 헤라클레스가 운동하러 왔을 때를 대비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거워 보인다.


스미스 머신과 랙은 큰 사각형 뼈대를 가진 모습이 비슷해 보이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정해진 경로의 유무가 그것이다. 랙에 바벨을 걸면 바닥이 아니라 어느 정도 높이가 있는 위치에서 바벨을 들 수 있게 된다. 랙에 올려진 바벨을 드는 순간부터 바벨은 랙과 완전히 분리된다. 바벨을 움직이는 건 온전히 운동하는 사람의 몫이다.


반면, 스미스 머신의 바벨은 기계에 딱 붙어 있다. 고정된 바벨을 위아래로만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놓은 것이 스미스 머신이다. 랙에서 바벨을 들어 올릴 땐 내가 휘청거릴까 봐 두려운 마음이 들지만 스미스 머신에서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기계에 딱 붙어 있어 위아래로만 움직일 수 있는 바벨은 휘청거림을 원천 차단한다.


초보자인 내가 보기에 랙보다는 스미스 머신이 나에게 친절하다. 바벨의 양쪽 끝에 엄청난 자유를 주어 동서남북 어디든 갈 수 있게 하는 능력이 출중한(한 마디로 휘청거리는 걸 잘하는) 나에게는 스미스 머신의 친절한 길 안내가 눈물이 날 정도로 따뜻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랙에서는 운동을 마친 뒤 다시 바벨을 얹어두는 일마저도 에베레스트 정상에 깃발을 꽂는 일처럼 부담스럽게 느껴지는데 스미스 머신에서는 손목을 살짝 돌려 고리에 걸면 그만이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나는 랙보다 스미스 머신을 더 좋아한다(랙한테는 비밀이니까, 절대 말하지 마세요).


그런데 어쩐지 우리 선생님은 스미스 머신보다 랙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나한테 잘해주는 스미스 머신이 선생님께 하대 받는 것 같아서 안쓰럽다. 너를 좋아하는 내 마음 변치 않을 테니 우리 계속 친하게 지내자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나도 알고 있다. '결국은 랙에서 운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아이에게 '정해준 대로 사는 것보다 자기 힘으로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 멋지다'고 한 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여전히 랙보다 스미스 머신이 편하긴 하다. 하지만 랙에서 바벨을 들어 올릴 때의 나는 헤라클레스 못지않은 마음가짐이다. 무한한 자유가 주어진 랙에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중력과 싸워 이기는 순간에는 헤라클레스가 아틀라스로부터 천구를 잠시 넘겨받아 들었을 때가 떠오른다. 비록 가벼운 원판 한두 장 끼운 바벨을 들어 올리는 것이 전부이지만 나는 이 정도에도 스스로 감탄한다. 빈 봉 신세를 면치 못하다가 원판 한두 장이 더해진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내 역사 속 영웅인데, 휘청거림과도 싸워서 이겨내다니, 그리고 이 모든 결과가 스미스 머신의 친절한 도움 없이도 이뤄낸 것이라니.


랙에서 이뤄낸 영광은 오롯이 내게 돌아온다. 스미스 머신에서는 더 많은 중량이 가능하지만 그 영광의 일부는 스미스 머신에게 돌아간다. '네가 아니었다면 난 이 정도 무게를 들 수 없었을 거야. 고마워'라고 말해야만 할 것 같다. 랙은 거친 중력과의 싸움에 나 혼자 출전하도록 하는 냉정한 모습을 보이지만 마침내 거머쥔 승리의 영광 앞에선 조용히 뒤로 물러선다. 그러면서 들릴 듯 말듯한 소리로 '내가 한 개 뭐 있다고. 다 네가 이뤄낸 거지'라고 읊조릴 것 같다.


'태풍은 좋겠다. 진로가 정해져 있어서'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진로가 정해져 있다는 이유로 태풍마저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그 막막한 마음을 어찌 모르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 자기 힘을 키우고 성취의 뿌듯함을 더 크게 느끼려면 인생의 경로를 자기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같은 이유로 스미스 머신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결국은 랙에서 운동할 수 있어야 하고.


아이가 스스로 진로를 결정하고 홀로서기를 할 날이 올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마찬가지로 나도 혼자 랙에서 운동하는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그래야만 한다!). 다만, 선생님 없이 자율 운동을 하는 날이면 스미스 머신이든 랙이든 바벨을 들고 하는 운동은 쳐다도 보지 않고 러닝 머신 위에서 조금 걷다가 쪼르르 헬스장에서 퇴장해 버리는 내 행각을 봤을 때, 그날이 오기까지의 여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다고, 지금까지의 나를 지켜본 스미스 머신, 랙, 러닝 머신 모두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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