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 대견함, 희망이 3교대로 돌아가며 왔다. 도대체 어떤 상황에서 이런 3교대가 가능하냐고?
40대 엄마와 중학생 딸아이가 헬스장에서 같이 PT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시티드 로우를 하는데, 딸아이 다음으로 내 차례가 되자 선생님이 중량을 낮춘다. 내가 얘보다도 힘이 없다니!(좌절) 하지만 곧바로 엄마의 시선이 추가된다. 먹이고 재우고 입혀가며 키우는 동안 내가 보살펴야 하는 약한 존재로만 여겼는데 이제 엄마보다 힘이 센 나이가 되었구나!(대견함) 그러다 금세 정신을 차린다. 나라고 내리막길만 있겠어? 이제 운동을 시작했으니 점점 더 힘이 세질 거야!(희망)
자리를 옮겨 랫풀다운을 해도 내 차례가 되면 선생님이 중량을 낮춘다. 그럼 또다시 좌절-대견함-희망이 3교대로 돌아간다. 레그 프레스에서도, 레그 익스텐션에서도 그 3교대는 계속 이어진다.
랫풀다운 한 세트를 마치고 숨을 헉헉거리고 있을 때였다. 내가 일어선 자리에 딸아이가 앉고 선생님은 중량을 올렸다. 3교대 중 '좌절' 순번이 돌아왔다. 나도 모르게 선생님에게 따지듯 물었다.
"제가 얘보다 몸무게도 더 많이 나가는데 왜 힘은 더 약해요? 이래도 되는 거예요?"
누가 들으면 선생님이 내 근력을 빼앗아가기라도 한 줄 알겠다. 아무 잘못이 없지만 친절하신 우리 선생님은 괜히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무래도 나이의 영향이 있겠죠."
나보다 중량을 올린다고 해서 딸아이가 엄청나게 무거운 중량으로 운동하는 건 아니다. 내가 5kg로 할 때 애는 10kg로, 내가 10kg로 할 때 애는 15kg로 하는 수준이다. 헬스장에 있는 대부분의 운동기구에서 5kg이 첫째 칸, 10kg이 둘째 칸이다. 우린 둘 다 비등비등한 초보자 레벨이다. 레벨 20까지 있는 게임에서 나는 레벨 1, 딸아이는 레벨 2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럼 그렇게 오십 보 백보인 와중에 딸을 이겨먹으려고 그러는 거냐고? 나는 단지, 몸무게에 비례해서 힘이 좀 세지는 게 아닐까, 그래서 몸무게가 더 많이 나가는 내가 좀 더 세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을 뿐이다. 사실 엄마 입장에서는 어떤 분야에서든 애가 나보다 잘하면 기특한 마음이 든다(3교대 중 '대견함' 차례).
대부분의 운동에서 나는 애보다 부족한 능력을 보였다. 중량을 낮추거나 횟수를 줄여야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운동만큼은 내가 더 잘했다. 이 운동은 다른 운동들과 달리 움직임이 없다. 움직이지 않는데 운동이 된다고? 무슨 운동이길래? 팔꿈치를 바닥에 대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일직선을 만든 다음, 그저 가만히 버티는 운동이다. 미동도 없이 버티면 선생님께 잘한다는 칭찬을 들을 수가 있다. 이 운동의 이름은 플랭크. 움직임이 없어도 전신 근육, 특히 코어 근육을 강화할 수 있는 운동이다.
플랭크를 하는 동안 선생님은 시간을 잰다. 40초가 넘어가면 애 몸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바로 옆의 나는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추구하는 시몬스 침대처럼 흔들림이 없다. 1분이 넘어가면 애는 소금산 출렁다리와 경쟁하듯 출렁인다. 곧 무너지기 직전이다. 2분 언저리에 애는 철퍼덕하고 배를 바닥에 붙인다. 나는 그대로 계속 버틴다. 3분이 될 때까지.
내가 생각해도 좀 이상했다. 나는 왜 유독 플랭크만 딸아이보다 잘하는 걸까? 운동역학과 근섬유 유형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그 이유를 분석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에게 그런 능력이 있을 리가. 그저 플랭크를 하며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생각 조각들이 다시 떠오른다.
덤벨이나 바벨을 드는 것은 내 몸에 새로운 무게를 추가하여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활동이다. 하지만 플랭크는 외부에서 새로운 무게가 추가되지 않는다(등 위에 외부 중량을 추가하는 플랭크가 있기도 하지만 내 수준에서 그런 운동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오로지 내 몸무게만 이용한다. 더불어 움직임이 추가되지도 않는다. 그저 가만히 버텨내는 것이 전부이다. 내가 가진 것 안에서 꾹 참고 견뎌내고 버티는 것. 이건 내가 살아온 방식과 비슷하다.
플랭크를 하는 동안의 나는 아무런 움직임도 만들어내지 않지만 엄청나게 애를 쓰고 있다. 그저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은 내 생활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워킹맘으로 바쁘게 종종거린 결과는 그저 고만고만한 일상의 유지일 뿐이다. 내 무게를 버텨 자세를 유지하는 플랭크처럼 나는 밥벌이의 고단함과 육아의 어려움을 견뎌내고 일상을 유지한다. 겉으로 봐서 큰 변화가 보이지 않는 이 일상을 유지하는 데에만 해도 나에겐 버티고 견뎌내야 하는 요소가 많았다. 머리 위로 덤벨을 번쩍 들어 올리는 운동처럼 직장에서나 가정에서 뛰어난 성과를 번쩍 들어 올리는 건 꿈도 꾸지 못하는 이유다.
"3초, 2초, 1초, 그만!"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면 플랭크를 해보라더니, 정말이지 플랭크를 하는 동안에는 시간이 매우 더디게 간다. 목표한 시간에서 3초가 남았을 때, 카운트 다운을 하는 선생님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반갑다. 3분을 다 채웠다는 사실에 기분 좋게 철퍼덕 바닥으로 무너진다.
시간을 재며 응원을 해주는 트레이너 선생님이 헬스장 밖 내 삶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철퍼덕 바닥으로 무너지지 않고 일상을 유지해 온 내가 아닌가. 이 정도 일상 유지 능력(?)이면 우렁찬 목소리로 '하나, 둘, 셋'을 세며 이끌어주는 선생님의 도움까지 받는 상황에서 이루지 못할 것이 무엇이랴. 좌절-대견함-희망의 3교대 중 희망 차례임을 잊지 말자. 내 골격근량이 '표준이하'에서 '표준'으로 가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내 근육들은 강한 존재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단 한 가지, 운동하다가 힘들다 싶으면 "이거 하다가 죽은 사람은 없겠죠? 저 한 세트 더하다가 죽으면 어떡해요?" 따위의 소리를 하는 몹쓸 버릇만 좀 없애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