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벨이라는 이름이 어디서 나왔는지 찾아보다가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 나오는 '대성당들의 시대'를 재생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정말 몰랐다. 원래 삼천포로 잘 빠지는 스타일이라서 그런 거 아니냐고? 아, 물론 내가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딴 길로 잘 빠지는 편이긴 하다. 하지만 덤벨의 역사를 알게 된다면 그 누구라도 <노트르담 드 파리>의 콰지모도를 떠올리지 않을까.
<노트르담 드 파리>에는 꼽추 종지기 콰지모도가 나온다. 콰지모도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을 치는 종지기였다. 여기서 종지기들이 치는 종을 한번 떠올려보자. 그런 종들은 손에 달랑달랑 들고 칠 수 있는 작고 가벼운 종이 아니다. 성당의 종탑에 걸린 종은 그 무게가 수 톤에 이를 정도로 상당히 무겁다. 그렇게 무거운 종을 울리는 일이 쉬웠을까? 중세 시대에 전기 모터로 돌아가는 자동 타종 시스템이 있었을 리 만무하다. 그 아름다운 종소리는 온전히 종을 울리는 사람의 힘과 기술에 의존했을 것이다. 제대로 된 종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얼마간의 연습도 필요했을 테고. 그런데 말이 연습이지, 그렇게 멀리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연습한답시고 여러 번 울리고 있다면? 지금의 아파트 층간 소음으로 인한 민원 못지않은 동네 주민들의 민원을 예상할 수 있겠다.
그래서 소리를 내지 않는(dumb: 벙어리의, 말을 못 하는) 벨이 만들어졌다고 한다(덤벨을 번역할 때 아령(啞鈴)이라는 한자어가 쓰인다. 벙어리 아, 방울 령. 덤벨의 뜻을 그대로 옮긴 번역어이다). 종을 칠 수 있는 힘과 기술을 연마할 수 있지만 소리는 나지 않는 덤벨. 그런 덤벨이 오로지 신체를 단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그 후 이동 가능하며 운동 시 사용하기 편한 지금의 모양으로 진화한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덤벨과 (층간 소음 걱정 없이 연주할 수 있는) 사일런트 피아노에 공통점이 있을 줄이야! 노트르담 대성당의 무거운 종을 치던 콰지모도는 비록 에스메랄다의 사랑을 얻지는 못했지만 몇 톤짜리 종을 칠 정도의 복근과 광배근을 얻었음이 분명하다. (콰지모도의 근육 이야기는 자신의 존재를 감추며 겸손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나의 복근과 광배근에게는 하지 않기로 하자. 그렇지 않아도 존재감이 없는데 괜히 그런 이야기해서 기죽이는 거 아니다.)
나는 '대성당들의 시대' 재생을 멈추고 내 인바디 검사 결과로 눈길을 옮겼다. 골격근량 표준이하. 존재감 없는 나의 근육들은 '표준이하'라는 성적표를 받고 더욱더 의기소침해진 것 같았다. 내가 할 일은 이 근육들을 어르고 달래 가며 '표준'에 근접하게 만드는 일.
어느덧 5회 차 수업이었다. 사이드 레터럴 레이즈 위해 선생님이 건네주신 1kg짜리 덤벨을 받아 들었다. 공부라곤 해본 적이 없는 학생에게 '상위권은 바라지도 않을게. 반 평균 근처까지만이라도 어떻게 좀 안 될까?' 하며 쉬운 교재부터 들이미는 심정이 이와 비슷하리라.
무게별로 가지런히 정돈된 덤벨들 사이에서 가장 작고 가벼워 보이는 1kg 덤벨. 그걸 양손에 들고 옆으로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하는 사이드 레터럴 레이즈. 거울에 비친 나와 딸아이는 힘겹게 슬로우 모션으로 날개를 퍼드덕거리는 두 마리 비둘기 같았다. 나도 언젠가는 '표준'이 된 근육량으로 힘찬 독수리 날갯짓을 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한 순간,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자세가 안 나오는데, 덤벨 내려놓고 맨손으로 해볼게요."
근육량이 부족한 두 마리 비둘기는 1kg 덤벨마저 힘겨웠던 것이다. 우리는 선생님 말씀에 따라 얌전히 덤벨을 바닥에 내려놓고 날개 각도에 신경을 쓰며 더욱더 열심히 파드닥거렸다.
"손이 팔꿈치보다 올라가면 안 돼요! 팔꿈치를 저 멀리 날린다고 생각하세요!"
선생님의 안타까운 외침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인내심이 대단한 선생님은 몇 번이나 반복해서 우리 자세를 고쳐주셨고, '사이드 레터럴 레이즈 엉망으로 하기' 세계 챔피언 자질이 충분한 우리는 수정에 수정을 거쳐 다시 1kg 덤벨을 손에 쥘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었다. "이제 다시 덤벨 들고 해 볼게요."라는 선생님의 말이 내 귀에는 하버드대 덤벨학과 합격 소식처럼 들렸다.
콰지모도라면 덤벨학과 수석 졸업생이 되고도 남았겠지. 하지만 나는 콰지모도를 비롯한 헬스장의 수많은 능력자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기로 했다(애초에 너무 큰 간극이 있어서 비교가 불가능하다). 그들처럼 하려 들면 얼마 못 가 포기하게 될 테니까. 생소한 운동 이름들을 익히고자 운동 분야의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 책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게 묵직하게 전해지는 진실은 단 한 가지였다. 건강한 노년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운동을 해야 한다는 사실. '준비한 체력이 소진되어 여기까지만...' 하며 이것저것 그만두고 놓아버리는 노년은 내가 그리는 미래가 아니다. 그렇다면 좋든 싫든 운동에 발을 들이고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러니 가늘고 길게 꾸준히 운동하련다. 콰지모도가 아무리 무거운 덤벨을 들고 운동을 하더라도 나는 기죽지 않고 1kg 덤벨을 들리라. 그러다 보면 들 수 있는 중량도 늘고 골격근량도 '표준' 범위에 들겠지. 소리 나지 않는 벨을 들어 올리니 내 귀에만 들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여행 가방을 들기 위한 팔뚝을 위해) 뎅~,
(경치 좋은 곳을 걸어 다닐 수 있는 무릎을 위해) 뎅~,
(늙어서까지 나를 꼿꼿이 세워줄 척추기립근을 위해) 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