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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PT 받을 결심을 하게 되었냐고?

by 책다람쥐

언젠가부터 나의 새해 다짐은 늘 독서, 영어공부, 운동이었다. 다짐이란 말은 다짐하지 않으면 멀어질 일에 붙일 때 어울리기도 한다. 나에게 독서, 영어공부는 잠깐씩 가까워지는 기간이 존재했기에 '우리 사이 멀어질까 두려워' 다시금 가까워지길 다짐하는 게 말이 되지만, 운동은 그렇지 않았다. 우린 단 한 번도 가까워진 적이 없다. 운동은 그냥 관성적으로 새해 다짐에 끼워 넣고 있을 뿐이었다.


꾸준함에도 레벨이 있다면 나는 '운동하지 않음'을 꾸준히 실천하는 데 있어서 상당히 높은 레벨을 자랑했다. 상위 레벨 유저만 입장 가능한 방이 있다면 나는 '운동하지 않음' 상위 레벨 방에 턱을 치켜들고 당당하게 입장했으리라. 순도 높은 '운동하지 않음' 플래티넘 레벨을 유지한 덕분에 나의 건강검진 결과지는 매년 '운동부족'이라는 표현을 디폴트 값으로 품고 있었다. 혹시라도 '운동부족'란 말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 결과지를 앞뒤로 팔랑거리며 '어? 다른 사람 거랑 바뀌었나?' 하고 대번 의심할 정도로.


누가 새벽 수영을 다니고 있다는 말을 하거나 필라테스를 몇 개월째 하고 있다는 말을 할 때도 그저 위인전에서 튀어나온 사람을 바라보듯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고, 수많은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 인증을 보면서도 '매일 운동을 하시다니, 정말 멋져요! 그럼 전 이만 복숭아를 마저 먹으러...' 하며 운동하는 이들을 나와는 다른 세상에 속한 것처럼 여기기만 했다.


중년에 접어들면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순간이 찾아와서 운동을 하게 된다는데 나에겐 아직 그 순간이 오지 않았던 걸까. '이대로는 안 되겠다!'에 근접한 '이대로는 안 될 텐데?' 정도의 순간이 몇 차례 있긴 했다. 병원에 갈 일이 늘어나고, 오래간만에 꺼내 입은 스커트의 지퍼가 올라가지 않고, 너무 쉽게 피로해지는 등등. 하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했던지 실제 운동으로는 이어지지 못하던 중이었다.


"엄마, 나 헬스장 다녀보고 싶어."

나를 움직이게 한 건 아이의 이 말 한마디였다. 자식이 뭔지, 엄마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보다 아이가 하고 싶은 것에 민감하게 반응할 때가 있다(항상 그런 건 아니다). 중학생 딸아이 역시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음을 토로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니는 학원이 별로 없어 밖에서 노는 시간이 많았던 초등학생 시절에 비해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신체 활동 시간이 현저히 줄었다. 엄마가 새벽 수영을 다니는 어떤 가정의 중학생 자녀는 체력 단련을 위해 저녁 식사 후 줄넘기를 하겠지만 우리집 모녀는 그쪽 계통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다.


"너 헬스장에 있는 운동 기구 사용법도 모르잖아? 혼자 다닐 수 있겠어?"

"아니, 엄마랑 같이 갈 건데?"

"너 혼자 갔을 때와 나랑 같이 갔을 때 예상되는 차이점은... 어떻게 할 줄 모르고 우두커니 서 있는 사람이 한 명인 것과 두 명인 차이점 정도?"

"그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알고 운동하는 거야?"

"유튜브 보면서 운동했던 사람들도 있을 테고, 헬스장에 있는 트레이너에게 개인레슨 같은 PT를 받아서 알기도 하고.. 그럴걸?"

"우리도 PT 받으면 되겠네."

"야! 그게 얼마나 비싼데! 게다가 우리 둘이 받으면 돈이 두 배나... 아니다. 둘이서 같이 받으면 좀 싸게 해주지 않을까?"


그렇다. 하나에 3만 원 하는 건 비싸서 못 사겠다고 하다가 4만 원에 두 개 준다고 하면 이런 횡재가 어딨냐며 덥석 사는 사람이 나다. PT 비용은 우리집 생활비 규모를 감안했을 때 아주 큰 금액이다. 하지만 둘이 같이 받으면 각각 따로 받을 때보다 훨씬 저렴해진다. 게다가 운동 따윈 귀찮다며 침대에 드러누워있는 편이 더욱 자연스러운 십 대 여학생이 먼저 운동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일이 어디 흔한가. 자고로 현명한 엄마라면 애가 하겠다고 할 때를 놓치지 않고 지원해줘야 한다. 이 순간이야말로 지금까지 '현명한 엄마' 카테고리에 들지 못했던 나를 가엾게 여기던 신이 잠시나마 현명한 엄마 코스프레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회가 아닌가. 덤으로 나까지 그 비싼 PT를 받을 수 있고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딸라빚(달러빚라고 쓰면 왠지 그 맛이 안나는 딸라빚)을 내서라도 등록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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