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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말을 안 듣고, 운동 이름은 어렵고

by 책다람쥐

엄마와 딸, 2명 그룹 PT로 20회를 등록했더니 결제 금액이 결코 적지 않았다. 애써 침착한 척했지만 결제를 하며 가슴이 콩닥거렸다. 그 순간 심박수를 측정했다면 유산소 운동 30분을 하고 난 뒤와 비슷하지 않을까. 역시 헬스장은 좋은 곳이다. 아직 운동은 시작도 안 했는데 이렇게 심박수가 올라가게 하다니.


지출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헬스장에 다녀본 적이 없는 우리는 실내용 운동화가 없었다. 바깥에서 신던 운동화를 실내에서 신으면 헬스장 바닥과 기구가 금방 더러워질 테니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려면 실내용 운동화가 있어야 했다. 또 운동할 목적으로 구비해 둔 옷도 없었기 때문에 운동복도 사야 했다. 비싸지 않은 걸로 적당히 샀지만 PT 비용에 운동화, 운동복 구입 비용이 추가로 더해지니 훨씬 더 큰 지출처럼 느껴졌다. 차마 월 1만 원인 신발장 이용료까지 더할 순 없어 신발장은 무료 이용 가능한 우리집 신발장을 사용하기로 했다. 우리집 신발장에 운동화를 넣어두고 운동하러 올 때 매번 가지고 오는 것이 번거롭긴 하겠지만 월 1만 원을 아낄 수 있다면야.


운동화 및 운동복까지 구입 완료했으니 이제 열심히 운동하는 일만 남았다. 첫 수업일, 딸아이와 나는 자못 긴장한 표정으로 헬스장에 들어섰다. 트레이너 선생님은 우리 둘 앞에 서서 간단한 스트레칭 시범을 보였다. 나는 최대한 선생님과 비슷한 모양새가 나오도록 양팔과 두 다리를 이리저리 펼치고 돌렸다.


"이제 사이드 스텝을 한번 해볼게요. 여기 단 위에 한 발을 올렸다가 다시 다른 발을 올렸다가 하실 거예요. 옆으로 뛰면서 발을 옮기면 돼요. 이렇게요. 자, 시작해 보겠습니다."


훗, 첫날이라고 쉬운 것부터 하는 건가. 무시무시해 보이는 운동 기구들로 바로 직행하는 줄 알았던 나는 야트막한 단을 중간에 두고 옆으로 왔다 갔다 하기만 하면 되는 이 운동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생각이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


"헉, 헉.. 선생님! 몇 번 남았어요? 저 오늘치 운동 벌써 다한 것 같은데요?"


선생님은 '이제 시작이거든요? 헬스장 문 열고 들어온 지 아직 10분도 안 된 사람 입에서 그게 나올 소리인가요?'라고 말하고 싶었겠지만, "더 할 수 있어요! 조금 더 힘내겠습니다!"를 크게 외치며 전문가다운 면모를 보였다.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 취득 과정에서 저질체력의 엄살쟁이 회원을 다루는 방법이라도 배우신 걸까. 그 후로 나조차도 '이 정도도 안 된다고?', '벌써 지쳤다고?', '이걸 못한다고?' 싶은 순간이 끊임없이 찾아왔으나 선생님은 <구령의 정석> 인간 버전인 것처럼 "계속하세요!", "할 수 있어요!", "자세 똑바로!" 등을 힘찬 목소리로 외쳤다.


사이드 스텝을 마치고 스쿼트, 랫풀다운, 체스트프레스, 데드벅이 이어졌다. 겨우겨우 50분을 버텨냈다. 평소 쓰지 않던 근육을 일깨우며 낑낑거리는 동안 내 몸의 근육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녀석들은 안온하기만 했던 그들의 삶에 갑자기 닥친 시련을 믿을 수가 없다는 듯, '우리한테 왜 이래? 이런 적 없었잖아?'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근육들의 웅성거림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는데 운동 이름들마저 처음 들어보다 보니 너무 혼란스러웠다. 랫풀다운이라... 풀다운은 pull down인 것 같은데 랫은 뭐지? 사역동사 let을 쓴 건가? Let me think 할 때처럼? 그럼 '나로 하여금 아래로 당기게 해 주시오'라는 뜻의 Let me pull down인데 거기서 me를 생략한 건가?


익숙치 않은 공간에서 쓰지 않던 근육을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든데 그 와중에 들리는 어휘마저 생소한 상황. 선생님은 내가 덤벨과 바벨이 뭔지도 몰라서 어리둥절하고 있음을 파악하고 "이렇게 생긴 게 덤벨이고, 저렇게 생긴 게 바벨이에요."하며 친절하게 알려주셨지만 내 머릿속은 또 바빠졌다. 덤벨과 바벨이 bell인가? 전혀 종처럼 생기지 않았는데? 따위의 의문으로.


수업 목표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내 꼴이 우스웠지만 새로운 세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탓이라 여겼다. 조금 익숙해지면 이런 잡생각(?)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겠지. 그러니 당분간만 이 궁금증을 해결해 보면 어떨까. 어차피 주말이면 도서관에 들르곤 하는데 청구기호 800번대를 잠시 벗어나 590번대 앞을 훑어보면 될 일이었다. 체력 증진을 위해 거금을 들여 PT를 받기 시작했다면 주말에도 늘상 가던 도서관이 아니라 헬스장에 나가 조금이라도 더 운동량을 채우는 게 맞겠지만, 뭐 어쩌랴. 인간이란 이렇게 종종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존재이거늘.


결국 나는 지금까지 한번도 들춰보지 않았던 운동 분야의 책을 찾아보기에 이르렀다. 운동하기 싫은 자의 몸부림이 이상한 형태로 발현되었다고 할 수도 있고, 공부하기 싫을 때 책상 정리부터 하는 유구한 역사를 가졌기에 운동하기 싫을 땐 덤벨의 역사부터 찾아보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어떻게 설명을 하든 운동하기 싫은 마음을 숨길 순 없으나 덤벨의 역사는 생각보다 꽤 재미있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다음 장을 꼭 읽어야 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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