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하게 공부 계획표를 건네며

진도율 10%를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

by 책다람쥐

| 도망가버린 의지력을 믿고 일을 벌이다니 |

인터넷에는 훌륭한 강의가 넘쳐난다. 의지력만 있으면 못할 공부가 없다. 다만 내 의지력은 어디로 도망가버렸는지 도통 찾을 수가 없다는 점이 문제다. 도망가봤자 멀리는 못 갔을 거라 생각하고 찾아봤지만 핸드폰 화면을 내리고 있는 손가락 끝에도, 자꾸만 바닥에 붙으려고 하는 등짝에도 없었다. 쉽고 재미있는 것만 보고 들으려는 눈과 귀, 진득하니 의자에 붙어있길 힘들어하는 엉덩이, 신발 신고 나가길 좋아하는 발 등등 구석구석 찾아봤으나 코빼기도 안 보였다. 애초에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게 아니냐는 상당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직장을 갖기까지 거쳐왔던 시간을 돌이켜보면 한때는 있었던 녀석이 분명하다. 그럼 내 의지력이 사라졌다고 실종 신고라도 해야 하나. 뭘 그렇게까지. 배고프면 기어들어오겠지. 그동안 나는 있지도 않은 애를 믿고 일을 벌이지만 않으면 되는데... 잠깐, 내가 코딩 공부를 시작하면서 저지른 잘못이 바로 여기 있었던 게 아닌가.


16분 46초 만에 찾아온 포기의 기운은 강좌 수강을 위해 결제한 육만 육천 원이 겨우 잠재워주었지만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생각보다 먹고살만한 형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육만 육천 원의 힘이 이 정도로 약할 줄이야. 한 번의 고비만을 넘겨줬을 뿐, 두 번째 고비부터는 맥없이 무너졌다. 덕분에 10%의 진도율은 한 달이 넘도록 앞으로 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나의 자아효능감은 끝도 없이 내려갔다. 내 의지력의 부재를 잊고 있었던 대가였다.



| 다른 데서 찾을 필요가 없었어 |

도망가버린 의지력을 망부석처럼 하염없이 기다릴 수는 없었다. 깔끔하게 의지력의 부재를 인정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무엇이 의지력의 역할을 대신해줄 수 있을까. 의지력의 역할이 계속해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면 그걸 대신해 줄 방법을 찾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계획한 분량의 공부를 매일 해나가고 있는지 확인받는 방법은 어떨까. 그렇다면 누구한테 확인을 받지?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오늘은 그것 때문에 못 했다는 소리를 할 때 부끄러움이 느껴지는 대상이어야 하는데... 그때였다. 전구에 불이 켜지는 모양으로 내 머릿속에 한 사람이 반짝 떠오른 것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해 준 사람이었다.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사람. 강의 영상을 클릭하려고 했지만 유튜브가 나를 유혹해버렸다는 고백을 그녀 앞에서 하고 싶진 않다. 그녀에게 나의 의지박약을 고스란히 내보이는 일은 너무나도 부끄럽다. 수치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공부하게 될 것 같았다. 가까운 사이이기에 나의 허술함은 진작에 파악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모든 핑계를 다 받아주는 사람은 아니다. 그녀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가방끈이 다소 짧다는 점인데, 요즘 세상에 어떻게 학력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시대착오적 발언을 함부로 하냐는 비난을 받더라도 어쩔 수가 없다. 그녀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두루마리 휴지와 아이스크림 |

현재 초등학교 6학년인 딸아이에게 졸업장이라고는 유치원 졸업장이 전부다. 국민 공통 기본 교육과정(초1~고1)의 중반을 겨우 넘어선 상태인 것이다. 파이썬 기초 문법 공부도 힘겨워하는 처지에, 초등학교 6학년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공부했는지 안 했는지를 검사해 줄 사람으로 석박사 학위 소지자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초등학생은 바쁜 어른을 종종 이해해주기도 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화장실만 다녀와서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은 상황이라고 해보자. 볼일을 마치고 휴지로 손을 뻗었는데 두루마리 휴지의 볼륨이 많이 쪼그라든 상태인 것이다. 사놓은 휴지가 얼마나 남았나 찾아보니, 이런. 30개들이 포장 비닐 안에 덩그러니 하나만 남아있다. 휴지는 생필품生必品이 아닌가. 반드시 있어야 할 물품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반드시 있어야 할 물품이 바닥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한가하게 공부를 하고 있으면 쓰나. 그건 안 될 일이다. 서둘러 장보기 사이트에 들어가야만 한다. 이건 급한 일이다. 절대 공부하기 싫은 자의 허튼짓이 아니다. 내가 공부를 위해 휴지 구입을 미룬 사이, 가정 내 두루마리 휴지 비축 정도로 소비자 불안 심리를 측정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다면 큰일이 아닌가. 그래서 각종 정부지원금이 그 지표에 따라 산정되기라도 한다면 나는 그깟 코딩 공부 좀 하겠다고 생필품인 휴지 구입을 미루었던 과거의 나를 얼마나 원망하겠느냔 말이다.


휴지로 시작했지만 무료 배송 조건을 무시하면 안 된다. 냉동실에 채워 넣을 다른 품목들까지 구입한다. 그러다 보면 공부를 위해 빼놓은 시간은 이미 훌쩍 지나가버린 뒤일 테다. 구질구질하기 이를 데가 없는 이 이야기를 아이에게 다 늘어놓을 필요도 없다. '오늘 장 보느라 바빠서 공부를 못 했어'라는 한 마디면 충분하니까. 계획한 분량을 실천하지 못한 엄마에게 단호한 한 마디를 던지려던 아이도 두루마리 휴지와 함께 배송된 아이스크림을 보고 한없이 너그러워질지도 모를 일이다.



| 코딩 공부에 아이를 끌어들이다 |

이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도 나는 내 코딩 공부에 아이를 끌어들였다. 공부 계획표를 건넬 때는 사뭇 비장하기까지 했다. 아이 손에 넘기고 있는 것이 코딩 공부 계획표인지 집문서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열심히 해보겠다는 각오로 굳어버린 내 표정에 비해 아이는 상당히 들뜬 모습이었다. 10분이면 끝나는 연산 문제집을 펼쳐놓고도 하기 싫어서 끙끙거리는 아이는 엄마도 곧 그런 모습을 보일 거라고 생각하며 신나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더욱더 비장해졌다.


멈춰 있던 진도가 슬금슬금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아이의 공이 컸다. 아이에게 확인받을 생각을 한 건 잘한 일이었다. 한없이 게을러지다가도 아이가 본다는 생각을 하면 정신을 차리게 된다. 아이의 성장을 위해 쏟아야 하는 시간과 노력이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는 평범한 엄마지만, 돌이켜보면 내 성장에 미친 아이의 영향도 무시할 것이 못 된다. 단순히 먹여 살릴 존재가 있으니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책임감 차원이 아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순간에 아이는 큰 영향을 미쳤다. 내가 아이를 키우는 동안 아이도 나의 성장을 돕고 있었다.


그럼 조금 더 본격적으로 아이를 이용(?)해보면 어떨까. '아이를 이용한다'라니, 신문의 사회면에서나 볼법한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떻게 사람의 탈을 쓰고 이런 짓을!'이라고 분노하게 되는 기사 속에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전과가 없는 사람이다. 국민 정서를 헤치는 기사 속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품어본 적이 없다. 내가 말한 "이용"은 법의 테두리를 안에서 이루어질 것이며 국민 정서뿐만 아니라 아이의 정서에도 해가 되지 않는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다만 아이가 내 계획에 찬성을 할지 그것이 관건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아이에게 다가갔다. 엄마가 무슨 생각으로 다가오는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엄마 계획표 위에 붙일 '참 잘했어요' 스티커를 고르고 있던 아이에게 말이다.


(다음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brett-jordan-Y1uG1DXudUc-unsplash.jpg Photo by Brett Jorda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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