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플레이에 앱을 등록하려고
"너, 엄마랑 같이 앱 만들기 할래?"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엉뚱한 제안을 하는 엄마를 둔 초등학생은 이런 말을 들어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어디 들어나 봅시다'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볼 뿐이다. 들어줄 마음이 있을 때를 놓치면 안 되니, 나는 얼른 그다음 이야기를 이어갔다.
"엄마가 요즘 코딩 공부를 하잖아. 그런데 지금 하는 건 어려워서 말이야. 너랑 같이 블록 코딩으로 앱 만들기 같은 걸 하고 나면 코딩 공부가 좀 재미있어질 것 같거든."
아이는 딱히 구미가 당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아이가 좋아할 만한 요소를 추가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그럼 회사 역할극 할까? 네가 앱 만드는 회사의 사장님이 되는 거야. 나는 그 회사 직원이고. 그럼 우린 회식도 하게 될걸?"
그제야 아이의 눈빛이 반짝였다.
"내가 사장님이면, 엄마는 뭐 할 거야?"
나는 황급히 회사 직급 순서를 검색해보았다.
"사원, 대리, 과장, 부장... 이런 순서로 높아지는 것 같은데 나는 부장 할게. 부장 시켜줘."
"음... 부장 말고 과장이 좋을 것 같아. 그래야 엄마가 잘했을 때 내가 부장으로 승진시켜줄 수 있지."
일은 시작도 안 했는데 승진 가능성부터 염두에 두는 사장님이라니. 비록 3초 전에 만들어진 아직 이름도 없는 회사지만 이 회사에 충성을 다 하고 싶은 마음이 차올랐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하나 만들어내고 나면 코딩 공부에 재미가 붙지 않을까 싶어서 해본 말이었다. 쉽게 배울 수 있다는 파이썬조차 나에겐 어려우니 초등학생 교육용으로 사용되는 블록 코딩으로 잠시 빠졌다가 다시 돌아오면 어떨까 생각했다. 블록 코딩은 초등학생들도 많이 한다고 하니 자연스럽게 같이 살고 있는 초등학생도 끼우고 싶어 졌고.
아이와 함께 하는 활동이라면 조금 더 책임감을 가지고 끝까지 하게 된다. 중간에 그만두는 일을 막기 위해 사장 자리를 내주면서까지 아이를 끌어들였지만 따지고 보면 나뿐만 아니라 아이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어떤 일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이것저것 경험해보는 여정은 40대인 나보다 10대인 아이에게 더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
회식을 할 거라는 말에 넘어가 엄마와 앱 만들기를 하게 된 아이는 학교에서 스크래치와 엔트리를 경험해본 적이 있다. 학교에서 재미있는 걸 배웠다고 내게 자랑했었다. 당시에는 내가 코딩에 관심이 없었고, 알록달록한 실행 화면이 아이들 장난 같기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파이썬 세상에서 주눅이 들대로 든 나는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겸손한 자세로 블록 코딩 세상을 기웃거리는 처지가 아닌가.
끝없이 길게 이어진 코딩 길. 가볍게 조금만 걷다 올 생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길의 초입에 서 있으니 막막했다. 잠시 철퍼덕 주저앉아 바닥에 작은 그림 하나 끄적이고 나면 새로운 기분으로 발걸음을 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나뭇가지로 그릴까, 돌멩이로 그릴까, 그러다가 집어 든 것이 앱 인벤터였다. 앱 인벤터를 이용하면 쉬운 블록 코딩으로 앱 만들기가 가능하다고 했다. 쉽다고 말하던 파이썬에게 상처받은 적이 있지만 설마 블록 코딩까지 그럴까 싶어 다시 한번 쉽다는 말에 속아보기로 했다.
학교에서 스크래치를 좀 해봤다던 사장님은 예제 두어 개를 실습하더니 앱 인벤터를 만만하게 보기 시작했다. 회식비 결제가 주요 업무인 나는 앱 출시 일정과 회식 날짜를 표시하기 위해 달력을 꺼냈다. 달력에는 방학을 맞이한 사장님의 빼곡한 물놀이 스케줄이 표시되어 있었다. 회식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사장님이 회식 날짜를 확인하다가 부디 앱 만들기 진행상황도 체크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빽빽한 물놀이 일정을 피해 회식 날짜를 정했다.
첫 번째 회식 장소는 중국집이었다. 짬뽕이 먹고 싶다는 사장님의 의견이 반영된 장소였다. 회식은 업무의 연장이라는 말이 있던데 우리는 회식이 업무의 전부가 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어떻게든 일을 진행시켜야겠다는 일념 하에 사장님을 불렀다.
"사장님!"
짬뽕 그릇에 얼굴을 파묻어 정수리만 보이던 사장님이 입술 주변에 벌건 짬뽕 국물을 묻히고 고개를 들었다.
"우리, 앱 만들기 다음 주까지 마치기로 했잖아요."
내 말을 듣긴 한 건지, 사장님은 생글생글 웃으며 주스 타령만 했다.
"과장님, 짬뽕 다 먹고 주스도 사줄 거죠?"
아, 짬뽕과 주스에만 관심이 있는 사장님이라니. 나를 승진시켜주고 싶어 하는 사장님에게 감동했던 마음을 다시 거두어들일까 고민이 되었다.
그래도 우리 사장님이 양심은 있는 사람이었다. 과장의 업무 보고에 귀 기울이는 사장님의 표정이 꽤나 진지했으니까. 자기 용돈으로는 사 먹기 힘든 5500원짜리 주스 덕분이기도 했지만 앱을 완성하면 같은 반 친구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도 한몫한 것 같았다.
우리는 어린이들에게 유명한 책 중 한 권을 골라 그 책에 관련된 활동을 할 수 있는 앱을 만들기로 했다. 앱 인벤터로 구현할 수 있는 기능의 종류를 알아보고, 각각의 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었다. 어린이 눈높이에서 나올 수 있는 퀴즈는 사장님이 맡았고, 나는 기술(?)적인 부분에 조금 더 치중했다. 블록 코딩조차 어렵다면 파이썬은 집어치우자고 마음먹었는데, 다행히 블록 코딩은 감당 가능한 수준이었다.
무릇 회사의 목적은 이윤 추구라지만 우리 회사의 목적은 사장과 과장이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해보는 것이었고, 거기엔 구글 플레이에 앱 등록하기가 포함되어 있었다. 기획 회의(회식) 후 물놀이 일정 때문에 코딩 시작이 늦어지긴 했지만 마음먹고 노트북 앞에 앉으니 진도가 제법 잘 나갔다. 텍스트가 아닌 블록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해도 내가 조립한 코딩 블록으로 '정답이 맞으면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기', '폰을 흔들어 소리 내기', '사물 인식률 나타내기' 등이 구현되니 대단한 기술자라도 된듯한 기분이 들었다.
앱 인벤터는 쉽게 배울 수 있는 만큼 한계가 분명하긴 했다. 단순하고 투박한 우리 앱은 만드는 데 몇 시간 걸리지 않은 실습용 앱이라는 티가 철철 넘쳐흘렀다. 하지만 그게 무슨 대수랴. 아무 명분 없이 먹을 수도 있었던 짬뽕이 회식이라는 이름을 등에 업고 앱 하나를 남기지 않았나.
다만 회사에 충성을 다 하겠다던 나의 마음이 차갑게 식어버린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곧 부장으로 승진을 시켜줄 것 같던 사장님이 나에게 다시 사원부터 시작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망언을 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반찬을 골고루 먹으라는 과장의 말에 협조하지 않고 회식 메뉴로 컵라면을 강력 추천하는 행태를 보였다. 나는 조용히 사직서를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