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비밀
현재를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듣고 '그럼 현재를 살지, 과거나 미래를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 시간 여행을 하는 소설 속 주인공도 아니고!' 했던 것은 아니다. 현재를 산다는 말의 의미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내가 잘하는 분야가 아니라는 인정도 함께 따라왔다. 과거에 대한 아쉬움과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이 나의 하루를 장식하는 일은 비일비재했으니까. '이렇게 했다면 조금 더 좋았을 걸'과 '이러다가 나빠지면 어떡하지?'가 날실과 씨실처럼 엮인 보자기가 툭하면 현재의 생생함을 덮어버리곤 했다.
'과감함'의 반대편에 있는 어휘들이 나를 수식해주는 삶을 살아왔다. 겁이 많다. 새로운 시도나 모험보다는 익숙하거나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일을 했다. 어떻게 보면 착실하고 어떻게 보면 답답한 생활을 해온 덕분에 내 경험의 스펙트럼은 매우 좁다.
사람들은 새로운 경험을 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곤 한다. 낯선 도시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쓴 책도 종종 접한다. 멋지다는 생각은 들지만 저자의 여정에 나를 넣어보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느껴졌다. 간접체험 와중에도 끼어든 '그건 하지 말았어야지(과거에 대한 아쉬움)'와 '너무 대책 없는 거 아닌가?(미래를 걱정하는 마음)' 때문이리라. 이십 대에도 배낭여행 한번 한 적 없는 나는 낯선 상황을 두려워하는 사십 대가 되었다. 소심한 성정은 여전하며, 시간과 비용의 문제 또한 나를 떠난 적이 없다.
개발자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면서 나는 왜 코딩 공부를 하는 걸까. 맛만 보는 수준으로 공부해서는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을 텐데 말이다. 나는 지금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 위한 자율연수 휴직 중이다. 다시는 오지 않을 금쪽같은 이 시간을 새로운 경험으로 채우고 싶은 욕심이 넘쳐난다. 그런데 평생을 함께해 온 나의 소심함이 최종 결재자 자리를 꿰차고 앉아 있는 것이 문제였다. 일렁이는 마음이 기안자가 되어 열심히 계획서를 작성했지만, 최종 결재자는 들어오는 계획서마다 모두 퇴짜를 놓는다. 이건 위험해서 안 되고, 저건 돈이 많이 들어서 안 되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다. 어지간해서는 결재 도장을 찍어주지 않을 것 같았다. 이 지긋지긋한 소심함 같으니라고.
그때였다. 입이 댓 발 나와 있는 나를 보기가 미안했던지, 소심함이 조심스럽게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제안을 해왔다. 코로나 감염 걱정이 없고 여자 혼자 다니기에 위험하지 않은 여행지가 있다고. 비용 걱정도 없는 곳이니 여기서 한 달 살기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 분명하다고. 그러면서 쭈뼛쭈뼛 리플릿 하나를 꺼내 보였다. 17포인트 정도의 크기에 돋움체로 쓴 '안전한 코딩 나라'라는 글씨가 내 눈에 들어왔다. 소심함이 추천한 여행지의 이름이었다. 소심함의 어이없는 행보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어쩜 추천을 해도. '안전한 코딩 나라'라니. '신기한 한글 나라'의 유사품도 아니고. 쟨 왜 저러고 사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면서 비행기 티켓을 끊는 기분으로 파이썬 강좌를 결제했다.
소심함이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었다. 코딩 나라는 안전했다. 코로나 감염 걱정, 비용 걱정 없이 새로운 경험을 선사했다. 그런데 이렇게나 안전한 코딩 나라에서조차 나는 현재를 온전히 살지 못했다. '과거에 대한 아쉬움(어제 안 빼먹고 했어야 했는데)'과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초보 딱지도 못 떼고 끝나면 어쩌지?)'이 끊임없이 찾아왔다. 이 증상을 낫게 해 줄 약은 어디 없을까. 불치병인 걸까.
'걸어서 세계 속으로'와 같은 프로그램에 스페인 남부가 나오고 있다고 해보자. 카메라 워킹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 레스토랑 앞 입간판이 스쳐 지나간다. 어떤 글자가 적혀있는 것 같지만 내가 그 내용은 알아서 무얼 하랴. 그 글자가 어떤 정보를 담고 있든 나에겐 이국적인 풍경의 일부로서 작용할 뿐인 것을. 우리는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형태의 문자를 접하고 산다. 어떤 문자는 TV 속 안달루시아의 입간판처럼 자신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에 자리하고, 어떤 문자는 꼼꼼하게 읽고 그에 따른 행동까지 동반하기를 기대되는 곳에 자리한다. e알리미를 통해 담임 선생님이 올려주시는 알림장은 후자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알림장을 보긴 한 건지 열심히 놀고만 있는 아이를 보면 속이 터진다. 알림장 속 문자를 '걸어서 세계 속으로' 속 입간판에 적힌 외국어 취급한 것이 틀림없다. 자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로 여긴 것이 아니고서야 어쩜 저렇게 태평할 수가. 알림장에 적힌 준비물과 숙제에 초연한 어린이의 엄마는 투병 중이다.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이 현재를 지배해버리는 병. 비급여 항목일지라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야 좋겠지만 아직 뾰족한 방법 없이 병마와 싸우는 중이다. 그러니 이 상황을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다.
"있잖아. 너는 둘 중에 뭘 고를 거야?"
아이 옆으로 가서 말을 걸었다.
"뭐랑 뭐 중에?"
기대에 찬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니, 짜장면과 짬뽕 중에 선택하라는 말을 기다리는 것이 확실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이 중국집 메뉴 선택처럼 진지하고 심각하게 고뇌해야 하는 문제 만으로 점철된 것은 아니다.
"음... 금요일 오후랑 일요일 오후 중에."
"왜 고르는 건데?"
메뉴 선택보다 존재감이 약한 선택지에 실망한 기색을 보이던 아이가 되물었다.
"나는 금요일 오후를 고를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떤가 궁금해서."
"나도 일요일 오후보다 금요일 오후가 더 좋은데?"
"그래? 엄마는 네가 금요일보다 주말을 더 좋아하는 줄 알았어."
"응, 주말이 더 좋아. 그러니까 금요일 오후가 더 좋지. 금요일 오후가 지나면 토요일, 일요일이 있잖아."
"그거 좀 이상하지 않아? 주말이 좋으면 주말인 일요일 오후가 좋아야지, 왜 평일인 금요일 오후가 좋지?"
현재를 온전히 살지 못하는 엄마는 자신의 병을 아이에게 옮기기라도 하려는 것이었을까. 알림장 보고 숙제하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 '미래에 대한 기대가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프롤로그가 꼭 필요한 건 아니었지만 나는 가끔 필요하지 않은 일에도 에너지를 쏟는다.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고 기대하는 건 행복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야. 주말을 앞둔 금요일 오후처럼 말이야. 우린 하루만 살고 죽는 하루살이가 아니니까. 하지만 내일을 준비한다고 오늘의 즐거움을 완전히 누리지 못하는 건 어리석어. 엄마가 좀 그런 편이지? 월요일에 할 일을 걱정하느라 일요일 오후를 산뜻하게 보내지 못하잖아. 그렇다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쪽으로 너무 갔다 싶으면 저쪽으로 방향을 틀며, 우왕좌왕과 횡설수설을 오갔다. 그 와중에 한 단원의 말미를 장식하는 '생각해 봅시다'에서나 볼법한 질문을 덧붙이다니. 내가 뱉은 말이지만 생경함이 느껴졌다. 아이는 물음에 답하는 빈칸을 채우듯 대답했다.
"맞아. 엄마는 일요일에 걱정하지 말고 좀 놀아. 나처럼 놀 때는 신나게 놀란 말이야."
맞는 말이긴 하지만 알림장 이야기로 마무리 짓고 싶다는 생각에 황급히 말을 이었다.
"그럼, 걱정 없이 신나게 놀다가 알림장에 적힌 숙제를 못한 어린이는 내일 학교에 가서 행복할까?"
그제야 우리의 대화가 향하는 곳을 눈치챈 아이는 허둥지둥 알림장을 확인한다.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다 보면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알고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안다는 느낌만 가지고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학생들에게 설명을 하면 할수록 학생들보다 어쩐지 내 지식이 더 공고해지는 느낌이 드는 이유다. 집에서 아이와 대화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나도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정확하게 모르는 상태에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말을 하는 동안 내 생각이 정리된다. 아이의 대답이 도움이 될 때도 많다.
코딩 나라에서 행복하기 위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월요일 걱정으로 일요일 오후를 가득 채우는 어리석음이 '이걸 배워서 어디에 써먹나'를 되뇌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행복의 비밀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 현재를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자세에 있다. 일요일에는 일요일의 일을 충분히 즐기고, 월요일은 월요일의 일에 충실할 일이다. 일요일 오후에 월요일을 걱정한다고 월요일의 일이 적어지지는 않는다.
코딩 나라 한 달 살기가 치앙마이 한 달 살기보다 재미는 덜할지 몰라도(그걸 말이라고) 새로운 경험 차원에서는 충분히 즐길만하다(제정신인가). 낯선 분야에 대한 호기심이 남아있는 나 자신을 뿌듯하게 여기고 배움의 과정을 누리련다. 한 달 살기가 될지 일 년 살기가 될지 아직은 모른다. 언제가 되었든 코딩 나라를 떠나는 날이 오긴 할 테지만, 떠날 때 떠나더라도 머무는 동안 즐길 거리를 충분히 찾아보련다. 혹시 아는가. 코딩 나라 해변에서 찍은 기념사진 한 장이 새로운 분야의 또 다른 한 달 살기로 연결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