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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Feb 28. 2020

새 장화가 하나도 젖지 않은 날

평화롭던 추석날 우리 집이 뒤집어졌다

 추석 날, 외할머니가 응급실에 실려갔다. 고관절이 골절됐기 때문이다.


다리를 움직일 수 없어 당연히 화장실에도 가지 못했다. 소변줄을 끼우기 전까지 기저귀를 채워놓았다. 잠시도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는 성격의 외할머니는 계속해서 일어나려고 했다. 다리를 다쳤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다. 소변을 봐야겠다고.

 보청기를 잃어버린 할머니 귀 가까이 대고 설명했다. 기저귀를 차고 있으니 그대로 보시면 된다고. 도대체 무슨 말이냐고 했다. 나는 화장실에 가야겠다고. 외할머니 손을 잡고 기저귀를 만지게 하고 수십 번 가족들이 번갈아가며 설명을 했지만 소용없었다. 부들부들 떨며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이냐며. 뭘 잘못했길래 내게 이러냐고 했다 울며불며 고함을 질렀다.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고 꺽꺽 울었다.

 

 지키지 못한 자존심이 눈물을 따라 자글자글한 주름 사이로 번지며 구겨졌다. 빠짝 마르고 주름진 할머니 얼굴은 물기를 쫙 뺀 손수건 같았다.  마른 얼굴이 눈물로 반짝거렸다. 외삼촌은 외할머니가 누워있는 침대와 멀치감치 떨어진 병실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종종 내뱉는 한숨이 듣는 사람 마음을 무겁게 덮었다.

 그 날 외할머니는 외삼촌네와 외할아버지 산소에 갔었다. 외숙모는 산길이 험하니 모시고 가지 말자고 했다. 외삼촌은 괜히 화를 냈다. 엄마가 아버지 보실 일이 얼마나 더 있겠느냐며. 외삼촌 고집에 외할머니를 모시고 갔다.

 

“산소에 간다고 장화까지 하나 사 왔더라고요. “외숙모가 말했다.


외삼촌은 산소까지 이어진 작은 도랑을 새 장화를 신고 외할머니를 업고 건널 생각이었다. 비장의 무기 같은 거였지만 결국 장화는 쓰임새가 없었다. 차에서 내린 외할머니가 몇 초 안되어 고꾸라졌기 때문이었다. 외할머니를 할아버지에게 데려다 주려 찰방찰방 건널 물길을 떠올리며, 신발 가게에서 장화 하나를 달라고 했을 외삼촌의 모습을 나는 자꾸만 상상해보았다.  그날 밤 장화도, 발도 젖지 않은 대신 다른 것들이 자꾸만 젖었다.

 외삼촌은 위태롭게 놓인 커다란 물통 같았다. 툭 치면 쓰러져서 눈물이 콸콸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왜 아흔 노인네를 산소까지 데려가겠다고 바득바득 우겼을까. 그 짧은 순간 왜 할머니를 살피지 못했을까. 하룻밤 새 노인네가 어째 저렇게 되노. 자꾸만 그런 말을 내뱉었다. 감정과 말들이 외삼촌을 가득 채운채 넘실거렸다.
 외할머니가 아프다고 소리를 지를 때마다 외삼촌이 흔들렸고 탄식과 한숨이 자꾸만 흘러넘쳐 외삼촌을 적셔댔다. 외할머니의 손을 묶어놓아야 할지 아닐지에 대해 실랑이가 있었다. 최선의 선택을 찾으려 애썼지만 사실 그런 건 없는 것 같았다.


밤에는 외숙모만 병원에 남겨놓고 집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차가 있었지만 외삼촌은 혼자 걸어가겠다고 했다. 정말이지 좀 걷고 싶다고. 그건 외삼촌에게서 흘러나온, 물기가 서려있는 말이었다. 결국 외삼촌은 그날 밤 집에 돌아오지 않고 병원에서 밤을 지새웠다. 외할머니를 두고 홀로 집으로 돌아올 길은 너무 어둡고 길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야밤에 배가 고팠다. 낮에 먹고 남은 꽃게를 마저 삶아먹기로 했다. 제대로 씹을 수 없는 외할머니를 생각해 외삼촌네가 준비해온 음식이었다. 엄마와 둘이 앉아 며칠 굶은 사람들처럼 게를 먹었다. 할머니 드시기 딱인데 참. 그렇게 말하면서 허겁지겁 남김없이 먹었다.


 다음 날 베란다를 돌아보니 국화꽃 화분 두 개가 있었다. 외할아버지 산소에 가져다 놓으려고 샀다가 외할머니가 그렇게 되는 바람에 그대로 집에 들여온 녀석들이었다. 덕분에 우리 할아버지는 아들이 준비한 국화꽃을 명절에 구경도 못하게 됐다. 하나도 꽃이 피지 않은 화분이었는데 하루 만에 몇 송이가 피어나고 있었다. 가을에 어울리는 짙은 붉은색이었다. 내일이 되면, 모레가 되면 햇빛 잔뜩 머금고 하나둘씩 피어나겠구나 싶었다.

 몇 송이 더 붉게 피어날 무렵 할머니는 수술을 받을 것이다. 꽃들에게 물을 주는 건 원래 외할머니 몫이었다. 잊고서 하루에 두 번씩 물을 줄 때도 있긴 했지만.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지만 내가 물을 잘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외할머니가 돌아오기 전까지. 외할머니가 국화꽃을 가지고서 외할아버지를 마침내 만나러 가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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