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요. 조심히 오세요."
상담 시간에 무려 한 시간을 늦어버렸다
몇 년간의 상담을 받으며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항상 조금이라도 일찍 가서 앉아있는 편이었으니까
이날은 회사 인사이동이 있어 이전부서에 인계해 주고 하는 과정에서 예상보다 마무리가 늦어졌다
나만의 업무였다면 일단 접어두고 새벽에 출근을 하든 뭘 어떻게 해서든 제시간에 맞게 상담실에 도착했겠지만
상대방이 엮여 있는 일이라 내 마음대로 자리를 떨치고 나올 수가 없었다. 최대한 노력했지만, 제시간 출발이 불가능하다는 게 명백해진 순간, 긴장과 불안으로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출발 예정 시간 10분 전, 마음이 너무 급해 평소엔 하지 않는 전화를 선생님께 드렸다.
"죄송해요, 선생님. 오늘 늦을 것 같아요. 좀 많이 늦어질 수도 있어요..."
선생님은 괜찮다고 기다리겠다고 하셨다
최대한 빨리 마무리를 하고 회사에서 뛰쳐나왔으나 내비게이션은 도착시간은 1시간이나 늦는다는 걸 확인시켜줄 뿐이었다
가는 도중 생각만큼 속도를 내지 못해 선생님께 다시 전화를 드렸다 도착시간을 말씀드리고 너무 죄송하다고..
"괜찮아요. 조심히 오세요."
선생님은 다시 괜찮다며 조심히 천천히 오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굉장히 안도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고 울었다
눈물 쓱쓱 닦고 빨리 가겠다는 일념으로 최대한 속도를 냈다 그러나 이미 너무 늦어버려 죄송했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맞아주시는 모습에 감사했다
상담실 안에서 선생님은 여느 때처럼 기다리고 계셨고
나도 평소처럼 이야기했다
상담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너무나 살기 싫어서 울면서 횡단보도를 건너고 사람들을 지나 걸었다
'더는 살고 싶지가 않아. 오늘이 마지막 날이었으면 좋겠어'
살기 싫어서인지 못다 한 말이 많아서인지 서운함과 비슷한 무언가가 마음을 할퀴었다
회사일로 늦어놓고 회사일을 떠들고 와버린 바보 같은 나를 향한 것일지도 모른다
실은 그냥 죽고 싶은 것뿐인데
얼마 전부터 새로운 일을 맡게 되면서 모르는 게 있어 전화하고 물어보는 게 너무 민폐인 것 같다고,
상대가 싫어할 것 같아서 못하겠는데(상대방은 좋은 분임 그럼에도) 혼자 다 해보려고 하다 보니 배로 힘이 들고 이런 게 늘 스트레스라고 이야기했다
주변도 잘 도와주고 알려주면서 왜 정작 본인은 도움받는 걸 힘들어하는지 묻는 말에
자동반사적으로 만들어져 재생되는 상대가 싫어하는 표정, 나를 향한 싫은 감정, 그 모든 걸 담은 영상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초년생도 아니고 이젠 꽤나 연차가 있지만 이런 건 시간이 많이 지나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아서
선생님은 연습을 해야 한다며 자신에게 오늘 늦는다고 얘기한 것처럼 죄송해도 해보라고 하셨다
기회로 활용하자고
그래서인 걸까
혼자 고민하다가 답이 안 나와서 물어보고 확인을 했다
업무 때문이라는 핑계를 뒤에 숨겼지만, 여전히 묵직한 죄책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아주 조금은, 나를 옥죄던 그 표정들로부터 가벼워졌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