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아침 공항

변하지 않는 현실에서 변한 것들이 보인다

by 공명김

캐나다 밴쿠버 시간으로 새벽 4시 한국으로 출장을 가는 아버지를 공항에 모셔다 드리기 위해 일찍 일어났다. 내가 눈을 비비고 일어날 때쯤 아버지는 이미 캐리어를 다 닫아놓은 채로 마지막 점검을 하며 내가 어제 사 온 치즈케이크 한 조각을 드시고 계셨다. 아버지는 올해 만으로 70이 되신다. 하지만 아직도 에너제틱하시고 나보다도 활동성이 훨씬 좋으시다. 우스개 소리로 예전에 사주를 보러 갔더니 인생전체가 그냥 역마살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나도 어릴 적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아버지가 정말 자주 출장을 가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집은 일종의 행사 같은 문화가 자리 잡았었다. 아버지가 출장 가실 때마다 온 가족이 출동하여 아버지를 공항에 내려드렸다. 그리고 돌아오실 때 다 같이 가서 배웅하고 식당에 가서 맛있는 음식 먹고 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 김포공항에 정말 자주 갔었다. 그렇게 어렸을 땐 김포공항 가는 것을 마냥 좋아했다. 김포공항의 붐비는 사람들을 보는 게 재밌었고 건물 장식 중에 사각형에 동그란 원이 음각으로 파여있는 특유의 타일들을 보며 독특함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사춘기가 올 때쯤부터는 어느새 아버지를 공항에 모셔다 드리고 돌아오실 때 배웅하는 것을 안 하게 되었다. 학원도 가야 하고 친구들과 놀기도 해야 하고 또 아버지를 어느 시점부터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어 배웅을 하러 가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걸 아쉬워하셨고 난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러고서 어느새 우리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오게 되었다.


아버지의 역마살이 우리 가족에게까지 영향을 끼친 것일까? 아버지가 혼자 떠나는 삶이 싫어 우리 가족을 다 끌고 해외로 나왔으나 아이러니한 것은 우리 가족만 여기 남겨두고 또 다른 나라로 가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그렇게 아버지가 50대 60대가 되어가셨다. 어느새 잘 다녀오라는 인사뒤 공항입구로 향하는 아버지 뒷모습이 쓸쓸해 보이기 시작했지만 또 한편으론 왜 저런 삶을 자꾸 선택하는 걸까 라는 의문도 남기도 했다. 깊은 가정사라 다 털어놓긴 그렇지만 충분히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말이다.


그러고 10년이 더 지나 아버지가 칠순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도 나는 아버지를 새벽에 공항에 내려다 드리고 있다. 달라진 점은 내가 운전을 하고 어머니가 집에서 쉬고 계신다는 점 그리고 오히려 예전보다 공항 입구로 향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가벼워 보이는 모습을 보며 하나 깨닫게 되는 게 있다.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내려놓지 못할 때가 가장 힘들어 보인다는 것이다. 30년 전에 비해 노쇠한 몸을 이끌고 공항으로 향하는 아버지가 더 힘들어 보여야 하는 게 정상인데 더 가벼워 보이는 이유는 뭘까? 아마 아버지도 이번생의 테마를 이제야 받아들이고 계신 거 아닌가 싶다. 나도 요즘 내가 가고 싶은 길로 가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많은 불만이 머리끝까지 차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담담히 공항으로 가는 아버지 모습을 보며 조금은 다르게 삶을 받아들여볼까 하는 용기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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