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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석변호사 Mar 09. 2017

2. 유령수술(Ghost surgery)

미국판례를 기초로 살펴보는 유령의사(그림자 의사)의 법적 책임


 최근 일부 성형외과의원 소속 의사가 수술예약 환자에게 자신이 수술을 집도할 것이라 약속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전신마취 상태에 있는 사이 다른 의사에게 수술을 지시한 것이 문제가 되어, 이른바 그림자의사(Shadow doctor 또는 대리수술)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원가의 소식에 따르면, 일부 성형외과의원은 유명의사의 여러 개의 수술일정이 동일한 시간에 잡혀있는 경우도 비일비재 하는 등, 대리수술 문제는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언론을 통하여 이러한 문제가 공론화되자 적지 않은 국민들이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서둘러 수술환자 보호방안 등의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그림자의사 또는 대리수술이 문제되어 대한민국 법원으로부터 사법판단이 이루어진 사례는 없기에, 이러한 행위에 어떠한 법적 책임이 부과되는 지 여부에 관하여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다만, 그림자의사 또는 대리수술에 관한 법적 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미국 법원에 의하여 사법판단이 이루어져 왔을을 뿐 아니라, 이러한 판결을 통하여 유령수술(Ghost Surgery)에 관한 법리가 확고하게 구축되어 있으므로, 미국의 사례를 통하여 법적 책임을 예상해 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하로는 유령수술에 관한 개별 사례를 소개하고, 법원의 사법판단 내용을 살펴보도록 한다.



사례1. Perna v. Pirozzi case     


(사건의 경위) Mr. Perna는 1983년 경 신장질환을 호소하며 세인트조셉병원에 내원하였고, 비뇨기과 전문의 Dr. Pirozzi는 Mr. Perna를 진료한 뒤 신장결석 제거수술을 실시하기로 하였다. 당시 Dr. Pirozzi는 Dr. Del Gaizo 및 Dr. Ciccone 와 함께 수술팀을 구성하여 수술을 실시하고 있었으며, 별도로 환자의 동의를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환자 정보를 공유하고 다른 팀원이 진료한 환자에 대한 수술을 실시해왔다(누가 집도를 할 것인 지는 보통 수술 직전에 결정되었다고 한다). 다만, 환자가 특정 의사를 지목하여 수술을 해줄 것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해당 의사가 수술을 실시하였으나, 이러한 내부사정을 알지 못했던 Mr. Perna는 집도의를 특정하지 아니하였고 이에 따라 실제 수술은 Dr. Del Gaizo 및 Dr. Ciccone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수술이 종료된 후 예후가 좋지 않자 Mr. Perna는 진료기록부를 통하여 Dr. Pirozzi가 아닌 다른 의사에 의하여 수술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Mr. Perna는 Dr.Pirozzi에게 법적 책임을 묻게 되었다.      


(법원의 판단) 본 사건에 관하여 뉴저지 대법원은 “환자의 동의 없이 수술의사가 변경되는 것(non consensual substitution of one surgeon for another)”을 포괄적으로 “유령수술(Ghost Surgery)”이라 정의한 뒤, 수술의사 변경에 대한 동의를 받지 않고 타인에게 수술을 맡긴 의료인은 의료사고에 따른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며, 환자로부터 동의를 전혀 받지 아니하고 수술을 실시한 의료인은 형사상 상해죄로 처벌된다고 판시하였다.           






사례2. Grabowski v. Quigley case     


(사건의 경위) Dr. Quigely는 Mr. Grabowski에게 자신이 요추 수술을 실시할 것임을 약속하였으나, 수술 당일에 개인적인 사유로 수술실에 늦게 도착하고 말았다. 이미 수술준비가 모두 갖추어진 상태였고 더 이상 수술을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한 동료의사 Dr. Bailes는 스스로 Mr. Grabowski에 대한 요추 수술을 실시하였고, Dr. Quigley는 뒤늦게 수술실에 도착하여 부수적인 수술만을 실시하게 되었다. 이에 대하여 Grabowski는 법원에 다음과 같은 소를 제기하였다.           

               

(청구내용) 자신은 Dr. Bailes가 수술을 실시하는데 동의한 바 없으므로, Dr. Bailes는 상해죄로 처벌받아야 하며, Dr. Quigley는 치료위임계약을 위반하여 타인으로 하여금 수술을 실시하게 하였으므로 민사책임을 부담해야 함

(법원의 판단) 본 사건에 관하여 법원은 Dr. Bailes는 의료과실이 있었는 지 여부와 관계없이(추후 수술부위가 자연치유 될 수 있다 하더라도) 상해죄로 처벌받아야 하며, Dr. Quigley는 실제로 환자에게 손해가 발생하였는 지 여부와 관계없이 계약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판시하였다.          






사례3. Taylor v. Albert Einstein Medical center case    

 

소아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아의 부모는 Dr. Wertheimer(순환기내과전문의)가 환아의 스완-간즈(Swan-Ganz) 카테터를 삽입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실제로 이를 삽입한 것은 보조의사(attending doctor)였던 Dr. Trinkaus였다. Dr. Trinkaus는 Dr. Wertheimer의 감독 하에 이를 실시하였으나, 환아의 부모는 이러한 행위가 유령수술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해당 병원을 상대로 소를 제기하였다. 이에 대하여 법원은 앞선 사례와 동일한 이유로 Dr. Trinkaus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인정하였을 뿐 아니라, 병원에 대하여 징벌적 손해배상(punitive damages)을 인정하였다. 이에 따라 병원은 거액의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되었다.    


      




사례4. Dingle v. Belin case     


Ms. Belin은 Mercy Medical center의 의료기사(techinician)로 근무하고 있었으며 자신이 담낭절제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태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다만, Ms. Belin은 Mercy Medical center가 수련병원임을 알고 있었기에, 해당 병원에서 담낭절제술을 받을 경우 담당 교수가 아닌 전공의가 자신의 수술을 집도할 것이라 예상하였다. 이에 Ms. Belin은 집도의인 Dr. Dingle에게 자신에 대한 담낭절제술을 실시할 때 절개, 담낭절제 및 수거절차를 모두 직접 실시할 것을 요구하였고, Dr. Dingle은 이에 동의하였다. 그러나 결국 Dr. Dingle은 대부분의 수술업무를 전공의에게 지시하였고, 자신은 담낭 수거(retraction)작업만 실시하였다. 이에 Ms. Belin은 Dr. Dingle을 상대로 계약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청구하였으며, 법원은 이에 대하여 수술의 성공여부와 관계없이 의료사고로 보아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다.          

 유령수술에 관한 법적 책임론을 바라보는 대부분의 의료인은 아마도 수술 실시 전 환자로부터 위 사례와 같은 수준으로 세부적 동의를 받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또는 이와 같이 사전 동의를 받는 것이 실현 가능한 것인가에 관한 의문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필자가 직접 만나본 중동 지역의 의료인의 진술에 따르면, 그들은 자국 내에서 수술을 실시할 때 수술에 참여하는 개별 의료인의 성명 및 각 의료인의 업무분할에 관한 사항까지 모두 환자에게 사전설명을 한 뒤 동의를 받는다고 하며, 오히려 이러한 동의를 받지 않는 대한민국 의료 문화가 놀랍다는 반응을 보인 바 있다. 아울러 미국 판례를 통해 미루어보면, 유령의사에 관한 법리는 고의적으로 대리수술을 실시하여 환자를 속이는 경우 뿐 아니라 수술에 대한 환자의 동의를 받은 의사가 동의 받은 범위를 넘어서 수술을 실시한 경우까지도 폭 넓게 적용되고 있는 점, 이러한 법리는 1983년부터 현재까지 확고하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대한민국 의료계가 이러한 패러다임의 흐름을 쉽게 거스를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일부 소비자단체가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유령의사 퇴치운동을 하고 있다는데, 혹시라도 일선에서 밤낮을 잊어가며 생명의 최전선을 지키고 있는 의료인들이 이와 같은 패러다임 전환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패러다임 전환의 희생양이 되는 것보다는, 발상을 전환하여 이러한 패러다임의 흐름에 몸을 싣고 적극적으로 환자에 대한 설명 및 사전 동의를 받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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