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현석변호사 Jan 15. 2018

변호사의 덕목

로스쿨창 2018년 1월/2월호 기고 칼럼


로스쿨 재학 시절 까마득한 선배 변호사님께 질문을 던진 경험이 있다. “변호사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은 무엇인가요?” 선배 변호사님은 일말의 고민 없이 변호사의 덕목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세 가지 덕목이란, 첫째는 '지식'이요, 둘째는 '사람에 대한 열정'이며, 셋째는 '정의에 대한 신념'이다.



첫 번째 덕목이 ‘지식’인 이유는, 열정과 신념만으로는 타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변호사의 가치는 지식에서 비롯한다. 부족한 지식으로는 타인에게 충분한 도움을 줄 수 없으며, 잘못된 지식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키기도 한다. 특히 잘못된 지식이 변호사라는 권위에 기대어 전달될 경우 곡학아세의 위험성은 더욱 크다. 그렇다면 변호사가 되고자 하는 자는 올바른 지식의 습득에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지식의 습득’은 시험문제를 맞추는 능력에 한정되지 않는다. 비록 로스쿨 재학기간 동안 가장 큰 목표가 변호사시험에 합격하는 것이라는 점에 반론의 여지가 없겠지만,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였다하더라도 지식의 습득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법률의 해석은 대법원 판례에 의하여 수시로 변경되거나 보충되며, 한 해에도 수 십 개의 법률이 제정되고 있을 뿐 아니라, 로스쿨 재학 중에 학습한 법률 역시 전체 법률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변호사는 직업적 특성상 끊임없이 지식의 전달을 요구받으므로, 이에 부응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지식의 습득을 게을리 하는 것은 곡학아세의 주인공이 되는 지름길이다.



두 번째 덕목이 '사람에 대한 열정'인 이유는, 변호사 업무의 특성상 끊임없이 사람에 대한 실망과 의심을 반복하게 되는데, '사람에 대한 열정' 없이는 건강한 정신으로 변호사 업무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변호사는 의뢰인 인생의 행복한 장면에 등장하기 보다는 불행한 장면에 등장하는 존재다. 인생의 불행한 장면에는 즐거운 자 보다 분노한 자가 많고, 웃는 자보다는 우는 자가 많으며, 정직한 자보다는 거짓된 자가 많다. 이러한 이유로 변호사는 일생동안 분노한 자, 우는 자, 거짓된 자와 함께 살아가며, 이 과정에서 사람에 대한 실망과 의심을 반복하게 된다. 그러나 변호사는 결코 사람에 대한 희망을 잃으면 안된다. 변호사의 도움을 통하여 분쟁과 갈등의 시기를 견뎌내면, 분노한 자 보다는 즐거운 자가 많고, 우는 자보다는 웃는 자가 많으며, 거짓된 자보다는 정직한 자가 많은 ‘인생의 행복한 장면’을 맞이하는 시기가 도래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인간에 대한 실망과 의심을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가더라도, 변호사는 사람에 대한 믿음과 열정으로 그들이 어둠의 시기를 견뎌낼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어 주어야 한다. 무릇 변호사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증명하되, 사람에 대한 믿음과 열정을 놓아서는 안된다.



세 번째 덕목이 '정의에 대한 신념'인 이유는, 변호사는 복잡다단한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과정에서 가치관의 혼란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정의에 대한 신념’ 없이는 삶의 방향성을 잃은 채 말초적 가치의 유혹 속에서 부유(浮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는 다양한 의뢰인과 인생의 한 부분을 공유하는 직업이다. 변호사로서 의뢰인과 상담을 하다보면 그가 살아온 과정, 가치관, 신념, 성공의 비결, 실패의 이유 등에 대하여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게 된다. 이렇게 타인과 가치관을 공유하다보면 문득 본래 가지고 있었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기준에 의문을 던지게 될 뿐 아니라,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의뢰인의 논리를 차용하여 의뢰인을 위한 항변을 개진하다보면 이와 같은 가치관의 혼란은 더욱 커지기도 한다. 무릇 이러한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나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견고한 신념이 필요하다하 것이며,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정의에 대한 신념’이라는 점에 다툼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정의(justice)가 무엇인지 정의(definition)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며 정의(justice)에 대한 정의(definition)가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에 대하여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할 것이나, 적어도 각자가 가진 정의 관념이 각자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기둥이라는 점에 다툼의 여지는 없을 것이다. 변호사로 업무를 수행하다보면 프로페셔널이라는 이유로 양심에 반하는 업무를 수행해야만 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지만, 비록 양심에 반하는 일을 수행하더라도 정의에 대한 신념을 버려서는 안된다. 정체성을 잃는다는 것은 나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는 것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 세 가지 덕목을 모두 충분히 갖추었는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이를 갖추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무릇 나침반을 들고 걸어가는 자는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목적지에 이를 수 있을 것이나, 나침반 없이 걸어가는 자는 그 끝이 어디인지 장담할 수 없다. 인생의 나침반은 각자가 오랜 고민 끝에 가슴 깊이 새겨 넣은 각자의 인생철학이라 할 것인바, 철학에 대한 고민은 아무리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하더라도 아깝지 않다. 부디 로스쿨에 재학 중인 모든 예비 법조인들이 올바른 인생철학을 가짐으로써 현혹되지 않은 인생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정현석 변호사 (법무법인 다우)

연락처 : 02-784-9000

이메일 : resonancelaw@naver.com

매거진의 이전글 감정 소각(燒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