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별 의료상의 과실 판단기준
장기절제 또는 장기이식 등의 수술을 실시한 후 여타의 사유로 문합부위에서 누공(내용물이 밖으로 유출되는 증상)이 발생할 경우, 복막염과 패혈증 등의 전신성 질환으로 발전하게 되어 때로는 환자가 사망하는 등의 중대한 악결과가 발생하는 사례도 있다.
이 경우 환자 또는 유가족들은 수술 문합부위에서 누공이 발생한 이상 문합 술기상의 과실이 있었거나 혹은 장기절제과정에서 술기상의 과실으로 인접한 장기들을 손상시킨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함에 따라 의료분쟁이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의료분쟁 실무경험에 따르면, 장기절제 후 문합부위에서 누공이 발생하였다 하더라도 의료진의 과실로 평가될 수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구분되므로, 이에 관하여 각 쟁점별 과실판단 기준에 관한 의견을 개진하고자 한다.
수술 후 누공이 발생할 경우에는 해당 누공부위를 파악하기 위하여 시험적 개복술(exploration)을 시행하게 되며 동 수술을 실시함으로써 누공이 발생한 부위를 파악함과 동시에 누공발생부위에 대한 의학적 조치(봉합)를 실시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일단 장기절제 등의 수술 후 누공 의심증상이 발생함에 따라 시험적 개복술을 실시하였다면, 구체적으로 누공이 발생한 부위가 어디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만일 누공발생 부위가 수술부위와 전혀 관계 없는 곳이라면 수술 중 불필요한 외상(trauma)이 발생한 것으로 봄이 상당한바, 수술 술기상의 과실이 인정될 가능성이 비교적 높다고 볼 수 있다.
그에 비하여 누공발생 부위가 수술부위와 일치한다면, 누공이 발생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섣불리 수술상의 과실이 개입되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할 것이므로 다음 각 쟁점에 대하여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만일 수술 중 문합술기상의 과실로 누공이 발생하였다면, 누공에 따른 임상증상이 발생하는 시기는 수술 직후또는 그로부터 2~3일 내인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수술 중 문합부위의 봉합이 너무 느슨하거나 촘촘하지 못해 발생하는 것으로서, 수술일로부터 근접한 시기에 누공이 발생하였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술기가 적절하지 못하였다는 점을 의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비하여 만일 누공발생시기가 수술일로부터 1주일을 경과한 시점이라면, 단순히 문합부위의 봉합에 문제가 있었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문합부위의 봉합은 물리적 고정작용을 제공하는 것으로서, 적어도 수술일로부터 1주일까지 누공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봉합에 따른 물리적 고정이 충분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봉합이 적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수술일로부터 장시간이 경과한 후에 문합부위에 누공이 발생하는 기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창상치유과정(wound healing process)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일단 수술목적에 따라 장기를 절제할 경우 해당 장기에는 불가피한 창상이 발생하게 되는바, 수술 후 절제부위를 물리적으로 봉합하더라도 오로지 봉합(suture)의 고정력에만 의존하여 장기기능회복을 기대할 수는 없다. 봉합된 부위에 창상치유가 이루어져야 비로소 장기의 연속성이 회복됨으로써 기능이 회복되는 것이기 때문이다(봉합은 창상치유를 위한 보조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임. 아래 창상치유과정 참조)
(1) 염증기(inflammatory stage): 창상이 일어난 직후의 변화로 창상이 진피 아래까지 내려가면 진피의 혈관이 손상되어 출혈이 되며 곧 혈소판과 섬유소(fibrin)에 의해 혈액의 응고가 시작됨. 혈관은 더 이상의 출혈을 하지 않기 위해 수축하며 여기에 염증세포(주로 백혈구)가 들어와 창상 조직의 잔해와 박테리아를 포식하는 염증반응이 일어남
(2) 증식기(proliferative stage): 염증반응 이후 섬유모세포(fibroblast)가 증식하고 많은 양의 콜라겐(collagen, 교원질. 아교질)이 창상 부위를 채우고 새로운 혈관이 자라남. 창상 조직은 수축되며 창상 주위부의 표피가 성장하여 창상조직 아래쪽으로 증식됨. 창상조직은 점차 더 수축되며 딱지가 되어 떨어져 나감. 창상부위 아래의 진피부위의 섬유모세포도 증식하여 제I형 콜라젠으로 구성된 아교섬유를 형성함. 이 섬유조직이 정상보다 많아지면 비후성반흔(hypertrophic scar) 또는 켈로이드(keloid) 등이 형성될 수 있음. 증식기는 대체적으로 3주까지 계속됨
(3) 성숙 및 재편기(maturation and remodeling stage): 새로운 콜라젠이 형성되어 진피 아교섬유의 배열이 정상과 같이 회복되고 기능도 정상으로 돌아옴
(창상치유과정.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신경해부학, 조직학 게시판 중 발췌 http://anatomy.yonsei.ac.kr/bbs2004/read.php?name=bbs2001&bbs=histology&page=304&id=1259)
절제된 수술부위를 봉합하면 위와 같은 창상치유과정이 진행되는데, 때로는 환자의 내적소인에 따라 창상치유과정이 지연되는 경우가 있는바, 봉합 당시 예상했던 기간보다 창상치유에 장기간이 소요될 경우 봉합부위에 염증이 지속될 수 있으며, 이러한 상태에서는 작은 물리적 충격에도 문합부위에 누공이 발생하게 된다. 창상치유를 지연시킬 수 있는 환자의 내적 소인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으므로 참고할 만하다.
[창상치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환자의 내적소인의 예]
- 감염 : 창상치유과정 중 염증기가 장기화 되고, 창상부위의 산소분압을 저하시킴
- 당뇨 : 가장 대표적인 요소로서, 국소부위에 허혈증상이 발생할 수 있으며 환부에 영양전달이 저하됨
- 간질환, 신장질환
- 악성종양 : 대사장애로 인하여 환부에 영양공급이 저하됨
위와 같은 의학적 사실들을 종합할 때, 만일 위와 같은 내적 소인이 있는 환자가 장기절제수술을 받은 후 약 1주일이 경과한 후에 수술부위에 누공이 발생하였다면, 수술상의 과실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이는 환자의 내적소인에 의하여 불가피하게 발생한 합병증으로 평가함이 상당하다.
다만, 수술 술기상의 과실이 없었다 하더라도 환자가 누공 의심증상을 호소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담당의료인이 이에 대한 경과관찰을 소홀히 함에따라 환자의 증상이 악화되었다면 다음과 같이 경과관찰상의 과실에 따른 법적책임을 부담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수술이 적절하였는지 여부와 수술 후의 경과관찰이 적절하였는지 여부는 전혀 별개의 쟁점으로서, 비록 수술 후 문합부위에 누공이 발생한 것이 환자의 내적 소인에 의한 불가피한 합병증이었다 하더라도, 그 후의 경과관찰이 부적절함에 따라 환자에게 악결과가 발생하였다면 담당의료인은 이에 대한 법적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특히 수술부위에 누공이 발생할 경우,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수술부위에 삼출물(혈액 또는 농)이 증가하고, 염증반응이 심해지며, 전신성 패혈증 및 패혈성 쇼크 증상 등이 나타나게 되는바, 담당의료인으로서는 해당 환자의 상태를 면밀히 파악하여 환자에게 문합부위의 누공을 의심할 수 있는 임상증상이 나타났다면 신속하게 감별진단조치 또는 시험적 개복술을 통하여 수술부위에 누공이 발생했는지 여부를 파악하고 이에 따른 의학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다만 수술실무적 관점에 비추어 볼 때, 환자의 내적소인에 따라 문합부위에 누공이 발생한 경우에는 다시 봉합을 한다하더라도 또 다시 누공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므로(창상치유과정에 부정적인 내적소인이 여전히 잔존하기 때문), 이 경우 경과관찰상의 과실이 없었다면 해당 환자가 생존할 수 있었겠는가에 관한 법적문제('인과관계'의 문제)가 쟁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요약하면, 장기절제(또는 장기이식) 수술 후 수술부위에 누공이 발생하였다면, 다음과 같은 쟁점을 순서대로 분석해 보고 의료상의 과실이 인정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경우에 한하여 법적대응을 할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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