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현석변호사 Jan 17. 2020

식도락 유감

자유 이면의 그늘에 대한 배려



오전 재판을 마치고 오후에 강남구청에서 자문회의가 있어서 청담동으로 넘어왔다. 배가 고파서 두리번 거리던 중에 눈에 띄는 식당이 있어서 들어와봤더니 수요미식회에 출연한 식당이라네. 점심특선이 고추짜장이라길래 시켜먹어보았는데 그리 특별한 맛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짜장면을 먹는동안 재즈 음악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좋았음.


그나저나 메뉴판에 인상적인 문구가 있었는데,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가 당신이 누구인지를 결정합니다(대략 이런 내용이었음)."   


 이러한 슬로건은 흔히 사치품(럭셔리) 산업에서 주로 통용되는 것이었던 점에 비추어 보면, 어느덧 외식산업이 점점 사치화 되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사람들은 SNS를 통해 내가 얼마나 맛있고 예쁜 음식을 먹었는지 등을 표현하고 이에 호응하는 반응들을 통해 만족감을 느끼는 점에서, 럭셔리 산업이 유지되는 메커니즘과 유사한 점이 있기 때문.


 한편, 럭셔리 산업은 필연적으로 사회적 박탈감을 유발하기 마련인데, 그런 점에서 한 때 유행했던 식도락 프로그램을 보며 불편함을 느꼈던 것이 사실이다. 한끼 식사에 수만원짜리 음식을 먹으며 화려한 언어들로 맛을 표현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유희의 수단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음식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생존을 위한 식량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선변호활동을 통해 만났던 70대 노인은 한달에 30만원 가량의 생계비를 지급받아 그 중 10만원을 주택임대료로 지출하고 나머지 20만원으로 하루에 두끼를 먹으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몸져 누워있는 그 노인이 식도락방송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지 상상해보면 착찹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식도락을 즐기는 행위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누릴수 있는 기본권이기에 그 자체가 잘 못되었다고 볼 수 없겠지만, 이를 통해 상처받을 수 있는 누군가를 위한 배려의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고 본다.


 부디 우리 사회가 "당신이 먹는 것이 시래기국이라 하더라도 당신은 소중하다."는 메세지를 전달할 수 있는 사회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주저리주저리 읊어버리고 말았네.


 시간 다 됐다. 


 이제 회의 들어가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얼마나 더 죽어야 하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