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조조가 알려준 경영의 타이밍 감각

by 김재균ㅣ밀리더스

나는 삼국지를 좋아한다. 딥하게 파고든 덕후는 아니지만 주요 장면과 인물의 흐름만으로도 삼국지는 수많은 통찰을 던져준다. 그 중에서도 요즘 자주 떠올리는 말이 하나 있다.

바로 조조의 “쓰기 전엔 의심하고, 쓰고 나면 의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문장은 겉보기에는 인재를 쓰는 데 있어 조심성과 단호함을 동시에 말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조직을 이끄는 리더에게 꼭 필요한 경영 원칙이 담긴 명언이라 생각한다.

조조.png


조직을 운영하다 보면, 매일 수많은 의사결정과 전략적 선택 앞에 놓이게 된다. 이때 리더가 가져야 할 태도는 바로 이 말 속에 있다.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는 의심하되, 결정하고 나면 의심하지 말고 움직이는 것. 의심과 검토는 결정 전에, 믿음과 추진은 결정 후에 시작돼야 한다.

‘쓰기 전엔 의심한다’는 말은 리더에게 주어진 가장 기본적인 책임, 즉 신중함을 의미한다. 우리는 종종 ‘빠르게 결정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중요한 본질을 놓친다. 시장 변화 속도가 빠르다고 해서 판단마저 빨라야 한다는 법은 없다. 오히려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서라도 판단은 신중해야 한다. 의심은 회피가 아니라 확인이다.


조직이 방향을 바꾸려 할 때, 신사업을 구상할 때, 새로운 인재를 채용할 때 리더가 취해야 할 태도는 ‘더 깊이 묻고, 더 넓게 보는 것’이다. 제품을 개발하기 전에는 반드시 시장과 고객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며, 구조를 바꾸기 전에는 팀 내 커뮤니케이션 패턴과 실행 가능성을 분석해야 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리더들이 이 시점을 넘기지 못한 채 결정을 서두르거나, 반대로 영원히 결정하지 못하고 회의 속에 빠져버린다는 데 있다.


결정을 내렸다면 그 이후에는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실행 단계에서 계속해서 흔들리기 시작하면 조직 전체가 함께 흔들리게 된다. “정말 이게 맞나?”,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와 같은 말은 리더의 내면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상 조직에 ‘불안’을 전파하는 신호로 작용한다. 구성원은 리더의 말보다 감정을 먼저 느낀다. 리더가 혼자 흔들리는 순간 팀원들은 중심을 잃고, 전략은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추진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결정한 뒤에는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혼란은 여백에서 생기고, 민첩함은 단호함에서 비롯된다. 조직이 믿고 따라야 할 것은 완벽한 전략이 아니라 일관된 리더의 태도이다. 실행을 결정했다면 그 다음부터는 속도와 피드백 중심의 체계로 돌입해야 한다.


이 문장을 실제 현장에 적용해보면 더 실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신사업을 검토하는 과정에서는 먼저 시장 리서치, 고객 인터뷰, MVP 테스트 등을 거쳐 리스크 요인을 점검한다. 그렇게 수개월 간 치열하게 분석했다면, 결정이 난 후에는 내부 이견을 최소화하고 실행만 바라보는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브랜딩을 리뉴얼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전 고객의 인식을 철저히 분석하고, 브랜드 자산을 점검한 뒤 결정이 되었다면, 그때부터는 디자인, 마케팅, 고객 접점 모두에 일관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채용도 마찬가지다. 이 사람을 뽑기 전까지는 자질, 성장성, 조직 적응력을 모두 살펴야 한다. 그러나 채용이 완료된 뒤에도 계속해서 의심한다면, 그 사람은 조직에서 제 역할을 다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의심은 타이밍의 문제다. 의심이 필요한 시점에 의심하지 않으면 안 되고, 의심이 끝나야 할 시점 이후까지 끌고 가면 조직은 피로해진다.


이 조조의 말은 명언으로 그쳐선 안 된다. 실무와 조직 운영에서 충분히 응용될 수 있는 전략적 도구다. 그것은 결정의 타이밍과 실행의 리듬을 구분 짓는 기준점이며, 리더십의 방향성과도 맞닿아 있다. 대부분의 리더들은 신중함과 결단 사이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다. 빠르기만 한 결정은 실패의 확률을 높이고, 지나치게 느린 결정은 기회를 놓친다. 조조의 말은 이 두 극단의 사이를 정확히 짚는다. 깊게 의심하고, 단호히 믿으라는 것. 그렇게 조직은 흔들리지 않고 전진할 수 있다.


나는 이 말을 개인적으로 이렇게 해석한다. “하기 전에는 신중하게 접근하되, 시작한 이후부터는 고민 말고 바로 행동한다. 늘 다양한 시나리오를 그리고, 이미 결정한 뒤에도 몇 번이고 되묻곤 한다. 그래서 이 말은 내게 명확한 기준이 된다. 지금은 의심할 때인지, 아니면 움직여야 할 때인지를 구분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그 기준은 나뿐 아니라 팀 전체에도 전해진다. 한 번 방향이 정해졌다면 의심하지 말고 밀고 나가자고 말하는 순간, 조직에는 단단한 에너지가 생긴다. 나 자신도 실행력이 붙고, 성과로 이어질 확률이 높아진다.


리더십은 결국 타이밍의 기술이다. 의심은 결정을 더 정밀하게 만들지만, 지나친 의심은 결정 자체를 무력화시킨다. 반대로, 결정 이후에도 흔들리는 모습은 리더십을 약하게 만든다. 따라서 리더는 의심의 깊이와 그 종료 시점을 모두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선택의 갈림길 앞에 선다. 전략, 사람, 시간, 기회… 수많은 변수를 고려하면서도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때마다 나는 이 문장을 떠올린다. “쓰기 전엔 의심하고, 쓰고 나면 의심하지 않는다.” 리더는 생각할 땐 누구보다 날카롭게, 행동할 땐 누구보다 단호해야 한다. 이 단순한 원칙 하나로도 우리는 더 안정적이고 빠른 결정을 할 수 있으며, 조직 전체가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 있다.


지금은 의심할 타이밍인가, 움직일 타이밍인가. 그 판단이 당신의 리더십을 만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창업자의 인간관계, 왜 '불가근 불가원'이 중요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