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장교의 복무는 시작부터 시간과 선택의 제약 속에서 출발한다. 임관과 동시에 ‘단기복무’ 또는 ‘장기복무 후보자’로 분류되고,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의 의무 복무 기간이 부여된다. 이 중 다수는 임관 3년 차에 ‘장기복무’를 지원할 기회를 맞이한다.
하지만 여기서 ‘기회’라는 말은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 실제로는 그 한 번의 선택이 군 생활 전체의 방향과 삶의 구조를 바꾸는 중대한 기로이기 때문이다.
현재 장교 장기복무 선발은 상대평가 중심의 서류평가와 제한된 내부심사로 이뤄진다. 근무평정, 교육 성적, 자격증, 상관 및 동료 평가 등이 반영되지만, 그 과정은 불과 2~3개월 안에 모든 게 결정되는 압축형 구조다.
이 짧은 시간에 한 사람의 10년을 판단하는 구조는 공정성이나 신뢰도 면에서 많은 의문을 낳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제도가 실질적으로 장교들의 진로 결정권을 제한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임관 3년 차에 장기복무를 신청하지 않으면, 이후 기회는 거의 사라진다. 혹여나 신청을 했다가 탈락할 경우, 사실상 전역 외의 선택지는 남지 않는다. 아직 조직에 대한 확신도, 스스로에 대한 정리도 끝나지 않은 시점에 내려야 하는 결정. 그 결과가 10년 이상의 복무로 이어지며, 도중에 생각이 바뀌더라도 쉽게 벗어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가장 억울함을 느끼는 이들은, 이른바 ‘중도 전환자’들이다. 대표적으로 학군장교(ROTC)로 임관한 경우, 초기에는 단기복무자로 시작해 복무 중 장기복무로 전환된다. 그런데 장기 전환 시점부터 다시 10년의 의무복무가 부여되다 보니, 결국 총 복무기간이 13~14년으로 늘어난다. 반면, 육사 출신 장교는 임관과 동시에 장기복무자로 분류되며, 10년을 채우면 자율 전역이 가능하다. 출신과 전환 시점에 따라 차별적인 의무가 발생하는 구조는 형평성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게다가 선발 과정 자체도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대부분의 평가가 지휘관의 근무평정과 교육 성적에 지나치게 의존하며, 평가 기준은 상급자 재량에 맡겨져 있다. 그러다 보니 비공식적인 인간관계나 상관의 주관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다반사다. 일부 장교들은 “실제로 장기복무 대상자는 정해져 있고, 우리는 형식적으로 평가받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심사 과정의 폐쇄성과 형식성이 젊은 장교들에게 불신을 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제도가 조직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장기복무로 선발된 후, 조직에 대한 회의나 개인 진로와의 불일치로 인해 무기력하게 복무하는 간부들이 생겨난다. 자율성이 사라지고, 군이 ‘원하는 사람’을 데려간 것이 아니라 ‘남을 수밖에 없는 사람’을 골랐다는 자조 섞인 비판도 나온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첫째, 장기복무 선발 시기의 유연화가 필요하다. 임관 3년 차를 ‘단일 선발 시점’으로 고정하지 말고, 일정 범위 안에서 본인의 준비가 되었을 때 지원할 수 있도록 열어야 한다. 복무 성향, 가정 상황, 전공 적합성, 장기적 비전 등을 고려한 개인화된 지원 시기가 필요하다.
둘째, 다단계·다각도 평가 방식 도입이다. 단순히 서류심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면접과 역량 중심 평가를 통해 군의 문화, 가치관, 조직적응 능력을 함께 평가해야 한다. ‘사람을 보는 선발’이 아닌 ‘서류만 보는 선발’로는 더 이상 인재를 놓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중도 전환 장교에 대한 복무기간 재조정이 필요하다. 기존의 의무복무 10년 규정을 임관일 기준으로 통합 조정하거나, 전환 시점에서 자율 전역까지의 선택권을 부여해야 한다. 이로써 장기복무가 ‘덫’이 아닌 ‘기회’로 인식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넷째, 선발 과정의 투명성 확보도 중요하다. 장기 선발자와 탈락자의 평가 차이를 공개하거나, 기본적인 피드백 체계를 도입하면, 탈락자 역시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지하고 다음 기회를 준비할 수 있다. 지금은 그저 불투명한 평가 결과만이 남아, 장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다.
장기복무 선발은 조직의 내일을 결정짓는 일이다. 지금처럼 ‘몇 개월의 평가로 10년을 보장받는’ 시스템은 구성원도, 조직도 위험하게 만든다.
선발은 공정해야 하고, 복무는 존중받아야 하며, 결정은 후회 없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숫자로 사람이 채워지는 군대를 원하지 않는다.
진심으로 남고 싶은 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미래지향적인 군 조직을 원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장기복무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10년’에서, ‘진심과 실력을 통해 선택되는 시간’으로 바꾸는 것에서 출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