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군 제도 개선방안에 대하여
누구나 한 번쯤 겪는다.
“팀장님, 예비군훈련이 있어서 하루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예비군? 아직도 가? 요즘 누가 그거 진지하게 생각하냐.”
이 짧은 대화 속에 지금의 예비군훈련이 가진 모든 문제가 응축되어 있다.
국민개병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예비군 제도는 병역의 연장선일 뿐 아니라, 전시 동원 체계를 유지하는 핵심 안전망이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그 안전망을 감당할 수 없는 구조다.
훈련은 강제지만, 참여는 눈치 보이고, 실제 훈련 현장은 낙후된 설비와 형식적인 운영으로 이어지기 일쑤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마음보다, “이틀 날릴 시간”이라는 인식이 먼저 드는 사회. 그 속에서 예비군 제도의 신뢰는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예비군훈련은 법적으로 ‘의무’이지만, 실제로는 많은 예비역들이 참여에 부담을 느낀다.
특히 자영업자, 프리랜서, 중소기업 종사자,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 등은 훈련에 참여할 경우 직접적인 생계 손실을 감당해야 한다.
지금의 훈련보상비는 일일 4만 원 수준으로, 하루 매출이나 급여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금액이다.
게다가 유급휴가 보장 제도는 대부분 사문화되어 있으며, 사업장에 따라 “사실상 불이익 없는 참여”는 불가능하다.
예비군법 제52조는 ‘예비군 훈련 참가를 이유로 해고하거나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이 조항은 예외 조항도 많고 실질적 구속력도 낮다.
현장에서는 “눈에 띄지 않게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간접적 압박이 이뤄지고 있고, 일부 기업은 아예 ‘연차에서 차감’하거나, ‘훈련일 당일 연장 근무 요구’를 관행처럼 시행하고 있다.
결국 훈련을 받지 않는 사람이 더 합리적이라는 이상한 구조가 정착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훈련 여건 자체도 고통스럽다.
한겨울 혹한 속에서 텐트 난방도 없이 대기하거나, 민간에선 보기 어려운 낙후된 식사와 위생 환경, 스마트폰 반입금지로 인한 업무 단절 등은 훈련이 아니라 고행에 가깝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예비군훈련은 국가 안보에 이바지하는 자긍심보다, 감내해야 할 ‘벌칙’에 가깝게 인식되고 있다.
무엇보다 훈련의 실효성도 의문이다.
형식적인 사격, 반복적인 경계근무 시뮬레이션, 오래된 PPT 중심의 강의식 교육은 “이 훈련이 전시에 무슨 도움이 되겠냐”는 회의감을 불러일으킨다.
훈련이 의미 없다는 인식은 참여율을 떨어뜨리고, 이는 다시 제도의 공신력을 약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1. 예비군 유급휴가의 실효성 확보
지금 가장 시급한 문제는 예비군 훈련을 ‘마음 놓고 다녀올 수 있는 환경’조차 마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현행 예비군법 제52조는 명목상 ‘예비군 훈련 참가로 인한 해고, 불이익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현실과 괴리된 이상적 조항에 가깝다.
많은 민간 기업에서는 여전히 예비군 훈련을 무급 처리하거나 연차에서 차감하며, 심지어 휴가 사용을 강요하거나 훈련 당일 퇴근 후 야근을 요구하기도 한다.
실질적인 강제력이나 감독 체계가 미비해 이 법은 사실상 ‘종이 규정’에 머물러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유급휴가 보장 법제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즉,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장에 대해서는 ‘예비군 훈련일 유급 보장’을 의무화하고, 중소기업에는 정부가 일정 비율의 인건비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근로기준법상 연차휴가처럼, 예비군 훈련일이 법적 ‘유급 의무 휴가’로 분류되도록 명확한 법령 개정이 필요하다.
이는 예비군 개인의 참여 여건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주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또한, 사업주 입장에서 예비군 훈련이 인력 운영에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훈련 일정을 3개월 단위로 조기 공지하고, 예비군이 ‘훈련일 선택제’를 활용하여 회사 사정과 조율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
‘불시에 날아오는 훈련통지서’가 아니라, 계획적인 훈련참여가 가능해야 비로소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제도가 된다.
2. 훈련보상비의 현실화와 생계취약계층 예비군 지원
현재의 훈련보상비는 기본훈련 4만 6천 원, 동미참훈련 6만 3천 원 수준이다.
하루 일당이 10만 원이 넘는 자영업자, 일용직,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이 금액은 사실상 훈련참여를 ‘경제적 손실’로 만드는 요인이다.
실제로 일부 생계형 예비군은 훈련날 ‘아파서 못 간다’며 병결을 선택하거나, 일정을 조작해 훈련 회피를 시도하기도 한다.
따라서 훈련보상비는 최소 **당일 최저임금 이상의 수준(2025년 기준 약 10만 원 이상)**으로 조정되어야 하며, 식비·교통비 포함 가산금도 추가 지급해야 한다.
또한 자영업자 예비군을 위해서는 소득 상실분에 대한 정액 지원이나 ‘예비군 생계지원보험제도’ 같은 보완 장치를 도입할 수 있다.
정부는 예비군에게 ‘나라를 지키는 대가’를 정당하게 지급해야 하며, 그 대가는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하는 구조로 설계돼야 한다.
3. 훈련형태의 유연화와 선택권 확대
예비군훈련은 현실적으로 단 한 가지의 고정된 방식만을 강요한다.
지정된 훈련장, 정해진 날짜, 하루 8시간의 고정된 훈련이 유일한 선택지다.
그러나 예비군은 학생, 직장인, 자영업자, 택배기사, 연구자 등 다양한 삶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모든 예비군에게 ‘오전 9시까지 ○○ 훈련장으로 오라’는 식의 일방적 통보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를 위해선 분산형 훈련 방식이 필요하다.
예비군이 온라인 사전학습 + 단축된 현장 실습 훈련의 형태로 훈련을 분할 이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기업체 상근자 예비군의 경우엔 **회사 내 자체 훈련 공간(사내 교육장 등)을 활용한 ‘직장 내 예비군 교육 허용 제도’를 도입하면 접근성이 높아진다.
특히 전국 단위 이동이 잦은 청년층과 프리랜서 예비군에게는
– 주말 훈련 선택
– 거주지 또는 본적지 기준 선택
– 근무지 근접지역 훈련장 지정
등의 지리적·시간적 훈련 선택권 확대 제도가 필요하다.
4. 훈련의 내용과 환경을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
예비군훈련은 단지 ‘시간을 보내는 의무’가 아니다.
그들이 다시 전시 상황에서 소집된다면, 실질적인 전투력 유지와 임무 숙달이 가능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훈련은 너무 낡고 비효율적이다.
훈련장은 노후되고, 비위생적인 시설이 많으며, 식사와 난방·냉방 환경도 최소한의 인권 보장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전국 예비군훈련장을 점검해 시설개보수 예산을 확대하고,
– 스마트 훈련표지판,
– 전자 사격 시뮬레이터,
– AR기반 도시전 훈련 콘텐츠
등을 도입해 훈련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일 필요가 있다.
또한 강의 중심의 이론교육은 지양하고, 모의 훈련, 분대 전술 훈련, 응급처치 실습 등 체험형 프로그램으로 대체해야 한다.
이런 변화는 예비군들이 “내가 훈련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 간다”는 내적 만족감과 국가 기여감을 느끼게 해주는 핵심 포인트가 된다.
예비군은 의무가 아니라, 신뢰로 완성되는 제도다
예비군을 존중하지 않는 국가는 스스로 안보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훈련을 받지 않는 게 더 효율적인 선택이 되는 사회, 훈련장을 오면 무기력함만 느끼는 구조,
직장을 포기해야 겨우 의무를 다할 수 있는 제도는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예비군이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오늘 나라를 지키러 갑니다.”
그리고 사회도, 국가도 그 말에 “잘 다녀오십시오. 우리는 당신을 믿습니다.”라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