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간부에게 ‘휴직’은 참 낯선 단어다.
민간에서는 육아, 학업, 요양, 재충전, 심지어 자기 탐색을 위한 휴직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군이라는 조직에서는 휴직이란 일종의 ‘사유화’나 ‘이탈’로 여겨지는 경향이 여전히 강하다. ‘군인이 무슨 휴직이냐’, ‘복귀하고 나면 뒤처질 텐데 왜 쉬려고 하냐’는 말들이, 휴직을 선택하려는 간부의 마음을 가장 먼저 막는다.
대한민국 군대는 여전히 ‘한 번 들어오면 끝까지 버텨야 하는 조직’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다. 복무 중 개인의 삶이나 사정은 조직보다 늘 뒷순위에 놓이고,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제도적 틈은 너무도 협소하다.
그러다 보니, 병가나 경조사 같은 아주 제한적 상황이 아니면 휴직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간부 개인의 삶은 오롯이 ‘희생’ 위에 세워지게 된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일과 삶의 균형, 자기 성찰과 성장의 시간, 가족과의 시간은 더 이상 사치가 아니라 필수 가치다. 민간 대기업뿐만 아니라 공공기관, 심지어 경찰, 소방 등 유사한 특수직역에서도 ‘휴직은 경력의 연속성 안에 포함되는 제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왜 유독 군에서만 그 선택이 어렵고 부담스러울까?
현재 군 간부의 휴직은 군인복무정책규정에 명시되어 있다. 육아휴직, 질병치료, 학업, 간병, 재해 등으로 사유가 제한되고, 그 기간은 대부분 무급이다. 게다가 군의 특성상 복귀 후 인사보직에 불이익을 받거나, 승진 심사에서 감점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실제로 많은 간부들이 육아휴직 후 복귀하더라도 ‘뒤처졌다는 느낌’, ‘주변의 눈초리’, ‘진급 경쟁에서 밀렸다’는 압박을 토로한다.
이러한 현실은 사람 중심 군대를 지향한다는 국가정책 기조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진정한 인재를 유지하고 싶다면, 그들이 필요한 시점에 쉴 수 있도록 허용하고, 그 휴식이 경력의 단절이 아니라, 조직과 다시 연결되는 다리가 되도록 설계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먼저, 휴직 사유의 확대가 필요하다.
지금은 육아, 병가, 가족 간병, 학위 취득 등 매우 제한적인 이유만 휴직 사유로 인정되고 있으며, 대부분은 무급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휴직은 단순히 위급한 상황에서의 ‘일시 정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기 회복, 심리적 안정, 경력 재설계, 심지어 번아웃 예방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으로 기능해야 한다. 경찰이나 교정직 공무원, 소방공무원 등 유사 공직군에서도 '리프레시 휴직제도'를 운영하며, 3개월~1년 단위로 재충전 휴직을 허용하고 있다. 군에서도 단기 리프레시 휴직과 같은 자율 목적형 제도를 도입한다면, 장기복무자의 이탈을 줄이고 조직 충성도를 더욱 높일 수 있다.
두 번째는 유급 또는 부분 유급 휴직제도의 도입이다.
현행 군인의 육아휴직은 최대 3년까지 가능하나, 첫 1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무급이다. 게다가 군은 공무원과 달리 복귀 후 복지 포인트, 승진 점수, 근속 연수 등에서 누락되는 경우가 많아, 실질적인 불이익이 발생한다. 반면 일반 행정공무원은 육아휴직 중에도 각종 복지 혜택이 일부 유지되며, 승진 심사 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휴직보호제도’가 명문화돼 있다.
군 간부에게도 이러한 경제적·심리적 안정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최소 1~3개월의 유급 리프레시 휴직 시범 도입, 이후 성과와 조직 영향 분석을 통해 점진적 확대를 검토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세 번째는 복직 이후 인사·진급의 불이익 방지를 제도화하는 것이다.
많은 간부들이 실제로는 ‘휴직보다는 그냥 버티는 것’을 택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복귀 후 중요한 보직에서 배제되거나, 인사평정상 ‘공백 기간’이 평가에 영향을 줄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부대에서는 휴직 이후 ‘한직성 보직’이 연속되는 사례가 있으며, 해당 간부는 스스로 “재기 불가능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다.
이러한 조직 문화가 지속된다면, 제도가 있어도 ‘쓸 수 없는 제도’가 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에 대해선 「공무원 인사관계법령」에서처럼 ‘휴직자에 대한 보호 규정’을 참고해, 복직 후 보직 안정 보장 기간, 불이익 금지 조항, 경력 연계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 특히 진급심사에서 휴직기간을 감점 요소로 반영하지 않도록 명시할 필요가 있다.
네 번째는 단계적 휴직 구조 도입이다.
현재는 짧은 휴식이 허용되지 않고, 휴직을 택하면 통째로 6개월~1년 단위로 신청해야 한다. 이는 오히려 짧고 효율적인 휴직의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민간 기업에서는 '한 달 재충전 제도', '4주 쉼 제도' 등 다양한 단기 회복형 제도를 운영 중이다.
군에서도 복무 연차가 일정 기간을 초과한 간부에게 ‘1개월 단기 유급휴직’, ‘복무 중 인생정비시간’ 등 선택형 휴직 옵션을 제공한다면, 심리적 탈진이나 자발적 전역을 방지할 수 있다. 특히 사관학교 출신 및 장기복무 간부에게는 복무 리듬을 조절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적 틈이 절실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무리 제도를 고쳐도 문화가 따라오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다.
현재 군은 '충성심', '헌신', '책임감'을 고귀한 가치로 여긴다. 물론 그 자체는 부정할 수 없는 조직의 핵심 철학이다. 그러나 그런 가치가 ‘자신의 삶과 감정을 지우는 것’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군을 병들게 하는 독이 된다.
“군인은 쉬면 안 된다”는 말 대신, “군인이니까 더 잘 쉬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아야 한다. 휴직은 이탈이 아니라 조직과의 건강한 거리두기이자, 더 오래 남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