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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을 떠나는 천재들, 우리는 무엇을 놓쳤는가

사이버전문사관 유출, 이제는 제도로 막아야 한다

by 김재균ㅣ밀리더스

디지털 전장이 국가 안보의 중심으로 부상하면서, 사이버전문사관의 역할은 이제 군사작전의 ‘보이지 않는 최전선’이 되었다. 인공지능, 암호 분석, 해킹 대응, 사이버전술 운영 등 첨단 기술력이 요구되는 이 영역은 더 이상 부가적인 임무가 아니다. 실시간으로 침해되는 국방망, 가상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정보 유출과 교란 시도, 사이버 심리전까지… 이 모든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사이버전문사관은 IT와 군사작전의 경계를 넘나드는 지식전문가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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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너무 쉽게, 너무 많이 떠난다는 것이다.

육군 기준으로 2020년 이후 사이버전문사관의 전역률은 60%를 넘기며, 대다수가 장기복무를 신청하지 않고 복무 5~6년 차에 전역을 택한다. 이는 다른 병과 대비 두 배 이상 높은 수치이며, 사이버 보안의 핵심 중간 간부층이 완전히 비어버리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이들이 군을 떠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공통점은 단 하나다.
“여기서는 더 성장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지적되는 건 경력 관리 시스템의 부재다.
사이버전문사관은 특수병과임에도 불구하고, 보직 순환 체계가 매우 제한적이다. 대부분이 보안실, 정보처리장교, 사이버센터 등의 내부 인트라넷 기반 기술지원 임무에 배정되며, 실제로 전투적 의미의 사이버작전 경험은 쌓기 어렵다. 보직이 고정되다 보니 기술적 성장 곡선이 정체되고, 민간 대비 경쟁력이 약화된다. 반면 대기업 및 보안업계는 최신 AI보안, 클라우드 기반 방어 기술, 양자암호 대응 연구 등에 집중 투자하며, 고급 사이버 인재를 유혹한다.

게다가 군내 교육 시스템은 기술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사이버전문사관을 위한 고급 교육과정은 단기 강의 위주의 내무반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으며, 실제 현업에 적용 가능한 프로젝트 기반 실습이나 외부 연계 석사과정 등은 제한적이다. 대부분의 간부들이 “3년차부터는 스스로 공부하지 않으면 뒤처진다”고 말할 정도다.
학문적으로, 실무적으로 갇혀 있는 체계 속에서 ‘정체성 혼란’이 발생하는 것이다.

보상 체계 역시 이탈을 유도하는 또 다른 요인이다.


사이버전문사관은 국가 사이버보안의 핵심 인재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병과 장교와 동일한 급여·보상 체계를 따른다. 이는 명백한 직무 가치를 반영하지 못하는 구조다. 민간에서 5년차 보안 엔지니어는 연 8,000만 원~1억 원의 연봉을 받을 수 있으며, 자기개발비와 프로젝트 인센티브, 재택 근무 등 근무조건의 유연성도 보장된다. 반면 군은 주말에도 긴급 대응 근무가 잦고, 정보유출 위험을 이유로 외부활동 제한, 노트북 반입 금지, 기술 세미나 참여 제약 등 각종 ‘보안 통제’가 일상화되어 있다.

결국, 떠나는 것이 이들의 잘못이 아닌, 남아 있을 이유를 주지 못한 조직의 책임이 된다.


그렇다면 해결방안은 무엇이 있을까?

1. 기술 중심 경력 설계와 이중 보직제 도입

사이버전문사관의 경력을 단순히 ‘정보 병과의 하위개념’으로 보지 말고, 전문직군 기반의 직렬체계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정보장교’와 ‘사이버전문사관’이 동일한 경로를 걷게 되며, 중령 이상 진급 시에는 정보 병과 통합 선발로 인해 승진 기회조차 희박해진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선 ‘이중보직제’(Dual Track System)를 도입해야 한다. 기술전문보직-지휘보직을 병행할 수 있도록 하고, 일정 수준 이상 실무경력이 쌓이면, 지휘보직이 아닌 기술직렬 고속승진 트랙도 마련해야 한다.


2. 보직 순환 및 외부 파견 프로그램의 제도화

국방부-국정원-국방과학연구소-정보사령부 등 기술기관 간 보직 순환제를 의무화하면, 인재들이 지루함을 느끼기보다 더 다양한 작전 환경과 기술 스펙트럼을 경험할 수 있다.
특히 복무 중 박사과정 연계 장기교육, AI·정보보안 대학원 파견제도, 민간 해커톤 참여 허용 등 외부 개방형 학습환경이 병행돼야 한다. 지금은 국방망 외부에 접속조차 어려운 환경에서, 민간 기술 트렌드를 따라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3. 직무가치 반영 특별수당 및 비급여 혜택 도입

‘군인 보수규정’의 개정을 통해 사이버 병과에 한정된 ‘기술가산급’을 신설하고, 정보작전 참여 시에는 추가 임무수당이 지급되도록 해야 한다. 이 외에도 자기계발비, 민간 자격증 취득지원비, 외부 세미나 등록비 등 간접 복지 혜택 강화를 통해 비급여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또한, 일정 기준 이상 성과를 달성한 인원에게는 주 1회 원격 근무 또는 업무 탄력운영 시간을 허용하는 것도 실질적인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4. 전역 후 경력 연계 및 사이버예비군 제도 도입

사이버전문사관이 군에서 5년 이상 복무한 경우, 전역 후 국가기관 사이버보안직 경력 가산점 부여, 공공기관 전직 지원 연계 플랫폼 구축, 사이버보안 스타트업 창업 지원 프로그램 등으로 복무경력의 사회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
또한 전역자 중 일정 자격을 갖춘 인원을 대상으로 ‘사이버예비군’ 제도를 신설해, 비상시 군 통신망 보안 자문, 공격 대응 훈련 등에 참여하게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예비역 활용이 아니라 지식기반 안보자산의 순환 활용 체계 구축이기도 하다.


이제는 “충성심으로 남아달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이들은 군인인 동시에 기술인이고, 전문가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상명하복이 아니라 기술에 대한 이해와 성장의 기회다.
더 이상 ‘떠나지 않도록 묶어두는 방식’이 아닌, 기꺼이 남고 싶은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조직이 그들의 미래를 설계해 줄 수 있어야, 그들도 자신의 청춘을 기꺼이 바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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