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트럼프의 '강한 군대' 전략

by 김재균ㅣ밀리더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전쟁 기념일 재구성’ 또한 이와 맞물려 있다. 그는 2025년 들어 11월 11일을 기존의 ‘재향군인의 날(Veterans Day)’이 아닌 ‘1차 세계대전 승리의 날(World War I Victory Day)’로 명명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 날짜는 원래 1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기념하는 ‘정전기념일(Armistice Day)’에서 출발했으나, 1954년 미국 의회는 이 날을 퇴역 군인의 애국심을 기리는 ‘재향군인의 날’로 공식화했다. 트럼프의 이번 선언은 이러한 역사적 전통을 뒤엎고, 군사적 승리 중심의 기억을 강조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트럼프 경례.png


게다가 트럼프는 5월 8일을 ‘2차 세계대전 전승절(Victory in Europe Day)’로 선포하겠다고 밝히며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5월 8일은 1945년 나치 독일의 항복일로 유럽에서는 전승절로 기념되지만, 미국은 그보다 이후인 8월 15일 일본의 항복일을 2차 세계대전의 실질적 종전일로 보고 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이후, 소련이 만주를 점령하고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8월 15일이야말로 전 세계가 진정한 ‘전쟁의 끝’을 맞이한 날이라는 점에서 트럼프의 주장에 대한 반론이 적지 않다. MSNBC의 전 앵커 키스 올버먼은 “2차 세계대전 승전일은 8월 15일이며, 트럼프는 완전히 바보”라고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이러한 역사 재해석 시도는 트럼프가 군사적 영광과 승리를 중심으로 미국의 국가 정체성을 다시 구성하려는 시도와 궤를 같이 한다. 그는 “우리는 두 차례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이를 기념할 줄 아는 지도자가 없었다”며 “미국은 다시 승리를 기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단순히 기억의 방식에 대한 논쟁을 넘어, 미국의 국가 서사를 ‘힘의 역사’로 재정립하려는 정치적 시도라 볼 수 있다.


그는 ‘강한 미국’, ‘승리의 기억’, ‘군사적 영광’을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이는 단지 미국의 보수 정치문화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군사외교 환경에 투영되는 또 하나의 힘의 언어다. 이는 곧, 군사력과 기억, 역사와 기념일이 어떻게 정치의 무대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며, 세계 각국은 이와 같은 흐름에 대한 감시와 대응 전략을 동시에 마련해야 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전승절 제정과 군사 퍼레이드를 추진하는 데는 뚜렷한 정치적, 전략적 의도가 담겨 있다.


첫째, 그는 ‘강한 미국’이라는 국가 이미지를 확립하고자 한다. 이는 단순히 군사력을 과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군은 트럼프 정치철학에서 단순한 방어 조직이 아닌, 국가의 자존심과 주권, 국제적 존재감을 대변하는 도구로 간주된다. 따라서 군사력을 중심으로 국가정체성을 상징화하는 시도는 보수 진영의 애국주의 정서를 자극하고, 이를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정치적 구심점을 만들어내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트럼프는 '강한 지도자는 강한 군대를 가진다'는 메시지를 미국 국민에게 각인시키며, 자신의 지도자적 위상을 강화하고자 한다.


둘째, 트럼프는 미국의 전쟁 기억을 ‘승리’ 중심으로 재구성하고자 한다. 11월 11일 재향군인의 날을 ‘1차 세계대전 전승절’로 대체하겠다는 제안은 그 대표적인 예다. 기존의 기념일이 ‘희생과 봉헌’을 중심으로 한 반면, 트럼프는 ‘승리’와 ‘영광’의 기억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는 미국 역사 내에서 ‘전쟁의 상처’보다는 ‘전쟁의 결과’에 초점을 맞춰 국민 정체성과 애국심을 고취시키려는 정치적 프레임이며, 동시에 보수주의적 ‘영광의 군사문화’를 현대적으로 재정립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셋째, 퍼레이드와 전승절은 트럼프 정치 스타일의 상징이기도 하다. 군악대, 탱크, 전투기 비행 등이 어우러지는 대규모 행사는 단순한 군 기념을 넘어 ‘보여주기식 권력’의 전형적인 형태로 기능한다. 이는 트럼프가 추구하는 ‘강한 리더십의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각인시키는 데 효과적인 수단이며, 대중매체 노출이 많은 선거 국면에서는 유권자들의 감성적 지지를 이끌어내는 선전 도구로 작용한다. 이러한 ‘정치적 연출’은 군의 정치적 중립성과는 별개로, 국민의 시선에서 강한 지도자상을 형성하는 데 유리하게 작동한다.


넷째, 트럼프의 군사 퍼레이드는 국제 사회를 향한 무력 시위의 성격도 내포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각각 열병식이나 국방 전시회를 통해 자국의 군사력과 체제 안정성을 과시하는 것처럼, 미국 역시 대내외적으로 ‘패권국가로서의 존재감’을 재확인하는 상징 행위를 통해 글로벌 파워 경쟁의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미국의 국방력은 단지 전투 수행 능력이 아니라 동맹국의 안보를 보장하는 핵심 자산이기에, 군사 퍼레이드는 국제질서 속 미국의 리더십을 상기시키는 무언의 언어로 기능한다.


마지막으로, 트럼프의 이러한 기념일 재정비와 군사력 강조는 보수주의 문화의 복원 시도와도 연결된다. 그는 엘리트주의를 배격하고, 전통적 애국주의와 군의 역할을 중시하는 대중정서를 자극하여 반엘리트 정치를 강화하고자 한다. 결국 트럼프의 군사 퍼레이드와 전승절 제정은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군사력과 기억, 정치가 교차하는 복합적인 전략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인도, 파키스탄 세계 3차대전 가능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