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박으로 만들어진 군대
A씨의 범행은 단순한 일탈이나 실수가 아니었다. 그는 2023년 6월부터 2024년 2월까지 광주 북구 일대에서 술을 함께 마신 지인을 상대로 “음주운전을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무려 4,300만 원의 금품을 갈취했다. 해당 행위는 피해자의 불안감을 이용해 금전을 뜯어낸 전형적인 공갈 범죄로, 계획적인 범행의 전형으로 보였다. 이후에도 그의 범죄는 계속됐다. 같은 해 5월에는 해군 모 부대에서 다른 병사에게 “장교를 욕한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겠다”고 위협하며 400만 원을 받아냈고, 이처럼 반복된 협박은 군이라는 폐쇄적이고 위계적인 조직 내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A씨의 행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조사 결과, 그는 2020년부터 2023년 6월까지 약 3년 반 동안 무려 1,518차례에 걸쳐 총 12억 9,000만 원 상당의 온라인 불법 도박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이러한 도박이 이뤄진 장소가 군대 내 생활관이었다는 점이다. 군 복무 중이라는 특수한 신분과 환경에서도 그는 불법 도박에 몰두했고, 조직적이고 습관적인 중독 상태에 가까운 행위를 지속한 것으로 밝혀졌다.
재판을 맡은 김연경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사회와 군에서 만난 피해자들을 상대로 지속적으로 금원을 갈취했고, 피해액 대부분이 회복되지 않았다”며 “특히 군 부대라는 폐쇄적이고 공적인 공간에서까지 상습적으로 도박을 벌인 점은 엄중히 처벌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피해자들이 군대라는 특수한 조직 구조 속에서 저항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었다는 점을 언급하며, 위계질서를 악용한 범행의 위험성에 주목했다.
이번 판결은 단순히 한 명의 병사가 불법 도박에 연루되었다는 점을 넘어, 군 내부에서 벌어지는 불법 행위의 구조적 실태를 드러낸다. 병사들의 여가 환경이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일부는 심리적 해소를 위해 온라인 도박이나 게임, 음란물 등의 유해 콘텐츠에 몰입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방부의 내부 감사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온라인 불법 도박으로 적발된 장병은 100명 이상이며, 이 중 다수가 군 내 생활관이나 행정반 등에서 도박 사이트에 접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일부 병사들은 민간에서 사용하는 VPN(가상 사설망)을 군 내에서 설치해 차단된 사이트에 접근하는 등의 고의적 우회 행위를 벌여왔다.
도박 중독에 빠지는 병사들의 배경에는 단순한 유흥 욕구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군이라는 폐쇄적이고 통제된 공간에서 겪는 스트레스, 고립감, 심리적 허전함 등이 병사들로 하여금 비정상적인 자극을 추구하게 만든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조직적으로 도박이 퍼질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기 쉬우며, 단순히 개인의 도덕성만으로는 이를 막기 어렵다.
A씨의 경우 특히 문제였던 것은 도박 자금의 출처였다. 그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관되게 주변 사람들을 협박하고, 군 내부의 위계를 악용해 타인의 심리적 약점을 파고들었다. 이러한 방식은 군 조직의 공적 신뢰를 훼손함은 물론, 피해자들에게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주었다. 게다가 금품을 갈취당한 병사들이 상급자나 부대 내부에 이를 쉽게 신고하지 못하고 침묵할 수밖에 없는 병영문화의 현실은, 이러한 범죄가 더욱 반복될 수 있는 구조적 요인을 드러낸다.
이번 사건은 군 내부에서의 금품 갈취, 불법 도박 등의 문제가 결코 사소하거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군 사이버 보안 체계 강화, 병사 대상 심리상담 확대, 병영문화 개선, 그리고 신고자 보호 시스템의 실효성 제고 등의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군대 내에서의 인터넷 접속은 일정 부분 통제되고 있으나, 이를 우회하거나 무력화하는 기술적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응을 위해 사설 VPN 감지 시스템, 고위험 사이트 차단 강화, 휴대전화 이용시간 통제 등 기술적 방어 체계의 재정비가 시급하다.
더불어 병사들의 정신건강 관리를 위한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 현재 각 군에는 ‘병영생활전문상담관’이 배치되어 있지만, 상담 수요에 비해 절대적으로 인원이 부족하며, 병사들이 이들을 신뢰하고 접근할 수 있는 환경 또한 부족한 실정이다. 아울러 금품 갈취와 같은 병영 범죄에 대한 익명신고 시스템, 피해자 보호제도 강화 역시 병행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번 사건은 단지 A씨 개인의 일탈이 아닌, 군 조직 전반에 깔린 사각지대와 위계 문화의 허점, 병사들의 여가와 심리 관리 부재 등 구조적인 문제들이 결합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도박보다 더 위험한 것은 ‘무관심’이라는 말이 있다. 만약 A씨의 행동이 초기에 적발되고, 동료 병사들이 그의 협박을 두려워하지 않고 목소리를 냈다면, 이 사건은 예방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제라도 군은 이 사건을 계기로 병영문화의 사각지대를 정비하고, 조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