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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 군인 전역 명령

이제 시작이다

by 김재균ㅣ밀리더스

2025년 5월 8일, 미국 국방부는 트랜스젠더임을 자진신고한 군인 약 1,000명을 즉시 전역시키는 명령을 공식화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서명한 각서에는 "개인의 성별과 일치하지 않는 거짓된 성 정체성을 표명하는 것은 군 복무에 필요한 엄격한 기준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명백한 문장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조치는 단순히 의료나 조직 효율성의 차원이 아니라, 미국이 군 조직 내에서 성 정체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정책 변화로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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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결정은 미국 연방 대법원이 5월 6일, 트랜스젠더 군 복무 제한에 대해 정부의 자율적 결정 권한을 인정한 직후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그 정치적 맥락이 더욱 뚜렷하다. 헤그세스 장관은 해당 각서에서 성 위화감(gender dysphoria) 진단을 받은 사람, 과거에 진단받은 병력이 있는 사람, 혹은 현재 증상을 보이는 군인 모두가 자진 전역을 선택할 수 있으며, 일정한 전역 보상도 제공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군은 정체성 실험의 장이 아니라, 철저한 임무 중심 조직”이라며 트랜스젠더 복무가 군 기강과 전투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단언했다.


이러한 조치는 트럼프 행정부의 군 내 정체성 정책 기조와 완전히 일치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중에도 트랜스젠더 복무를 제한하고자 했으며, 이를 통해 군의 ‘보수적 복원’을 시도해왔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 잠시 철회되었던 트랜스젠더 복무 금지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과 함께 다시 강화되는 모습이다. 이는 단지 성소수자 정책의 변화가 아니라, 미국 안보 정책의 우선순위가 어디에 놓이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이번 조치는 전격적으로 시행되었지만, 그 준비와 실행은 매우 구체적이고 단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우선, 성 위화감을 자진 신고한 약 1,000명의 군인은 즉각 전역 조치 대상이 되며, 이는 전역 수당 및 일정한 의료 보장을 포함한 '보상성 자진 전역' 형태로 추진된다. 이어서 국방부는 현역 부대 군인에게는 다음 달 6일까지, 예비군 부대 군인에게는 7월 7일까지 자진 전역 신고 기한을 부여했다. 이 시한 이후에도 성 위화감 관련 병력에 대해서는 과거의 의료기록, 심리상담 기록, 복무 중 증언 등을 통해 식별 절차를 시행하며, 강제 전역 조치에 돌입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 대변인 션 파넬은 성명을 통해 “국가안보와 군의 작전 효과성, 전투력 유지라는 본연의 사명을 고려할 때, 성 정체성 불일치는 조직의 일관성과 목표 달성에 심각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그는 “현재 성 위화감 진단을 받은 현역, 주방위군, 예비군을 포함하면 최소 4,240명에 이르며, 이는 더 많을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자진 전역 인원을 넘는 규모로, 향후 수천 명에 달하는 추가 전역 조치가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AP통신은 2015년부터 2024년까지 미국 국방부가 트랜스젠더 군인을 위해 지출한 심리치료, 호르몬 요법, 성전환 수술, 관련 의료 및 상담 비용이 약 5,200만 달러(한화 약 730억 원)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이와 같은 재정적 부담 역시 트랜스젠더 복무 제한의 또 다른 명분으로 작용하고 있다. 즉, 복무 기회 제공이라는 인권적 관점이 아닌, 비용 대비 효과라는 행정적 논리로 트랜스젠더 군인의 존재 자체를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조치는 단순히 미국 국방 정책의 일부로만 보기는 어렵다. 그것은 미국 사회 전반에서 진행 중인 성 정체성에 대한 인식 충돌, 보수-진보 이념 대립, 문화적 전통과 인권 간 갈등의 집약된 표현이기도 하다. 트랜스젠더 군인에 대한 전역 조치는 단지 성소수자의 군 복무 문제를 넘어, ‘국가가 어떤 정체성을 인정하고 어떤 정체성을 거부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피트 헤그세스 장관은 이미 여군의 전투병과 기준을 남성과 동일하게 상향하고, 군내 페미니즘 교육 폐지, 장성 수 감축 등 일련의 ‘보수적 군 개혁’을 단행해왔다. 그는 '군은 전투 조직이며, 사회적 다양성을 실험할 공간이 아니다'라는 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으며, 이번 조치는 이러한 기조의 상징적 조치다. 그에게 트랜스젠더 군인은 능력 이전에 기준 밖의 존재이며, 전장에서의 혼란 요소로 간주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이 미국의 민주주의, 포용성, 인권 가치와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은 즉각 반발하며 “성 정체성을 이유로 군 복무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자 헌법적 권리 침해”라고 성명을 냈다. 바이든 시절 시행되었던 ‘모든 성 정체성의 복무 권한 인정’ 정책은 폐기되었고, 이는 미국의 대외적 이미지와 국제 인권 감시 기준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캐나다, 영국, 이스라엘, 스웨덴, 호주 등은 트랜스젠더 군 복무를 공식 허용하고 있으며, 복무 중 성전환 과정도 국가가 의료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성 정체성보다 능력 중심의 선발 기준이 강조되며, 조직 적응력과 성실성이 주요 평가 요소가 된다. 미국이 이와 정반대의 길을 걷는 지금, 국제 사회에서는 오히려 ‘자유민주주의 국가 중 가장 후퇴한 사례’로 지적되고 있는 실정이다.


향후 이 사안은 미국의 내정 문제를 넘어서, 외교 및 국제 군사 협력 관계에서도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나토(NATO) 내 협력, 연합훈련 등에서 다양한 국가의 군인이 한데 어우러져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트랜스젠더 전역 정책은 ‘동맹국의 신뢰를 약화시키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이 사안은 2026년 미국 중간선거, 2028년 대선에서도 주요 이슈로 재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우리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군이란 무엇인가? 강함은 무엇이며, 그 강함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트랜스젠더 군인을 배제함으로써 얻는 '기강'은, 과연 군 전체의 전투력을 높이는 결정인가? 아니면,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국가 조직의 일체감을 유지하려는 무리수에 불과한 것인가?

군은 강해야 한다. 그러나 그 강함이 누군가의 존재를 부정하는 데서 비롯되어서는 안 된다. 정체성은 흠이 아니며, 군인은 오직 임무 완수 능력과 책임감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트랜스젠더 군인 전역 조치는 단지 하나의 행정 명령이 아니라, 미국이 ‘누구를 군인으로 인정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던지는, 시대착오적인 답변일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차별이 아니라, 기준의 재설정이다. 그것은 트랜스젠더 군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 군 전체가 더 단단하고 포용력 있는 조직으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미국은 다시 한번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군의 강함은 배제에서 오는가, 아니면 다양성 속에서의 일치에서 오는가.


한편, 대한민국 역시 트랜스젠더에 대한 군 복무 기회나 제도적 지원이 현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성 정체성이나 성전환 여부가 징병제하에서 군 복무 가능성과 직결되며, 트랜스젠더 개인은 병역 기피자, 면제자, 정신질환자라는 낙인 속에서 복무 여부조차 온전히 판단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최근 사회적 인식 변화와 인권 담론의 확산 속에서, 우리 역시 '군 복무의 자격'이 무엇에 근거해야 하는지를 다시 고민해야 할 시점에 도달해 있다.


단지 생물학적 성에 기반한 이분법적 기준이 아니라, 책임감과 임무 수행 능력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병역 판별 기준의 정립이 요구된다. 이는 단지 소수자를 위한 논의가 아니라, 대한민국 군이 더 강하고 열린 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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